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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학습시리즈로 잘 알려진 'Why? 세계사' 시리즈
어린이 학습시리즈로 잘 알려진 'Why? 세계사' 시리즈 ⓒ 예림당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치고 예림당에서 나온 'Why? 시리즈'를 안 가지고 계신 분은 없을 것이다. 학습만화로 대히트를 친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 학습만화는 봇물처럼 출판되었고, 현재 출판시장에서 학습만화는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녀 셋을 키우다 보니 'Why?시리즈'가 20여 권 책꽂이에 빼곡하다. 간혹, 머리도 식히고 이전에 배웠던 것을 상기할 때 편안하게 읽기에 좋아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종종 이 책들을 들춰본다. 내용도 잘 정리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서 'Why?'시리즈가 나오면 대체로 사보는 편이다. 최근에 그 시리즈물 중에 '세계사"와 관련된 것들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리즈물 중 <현대 사회의 변화>를 구입했고,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가 읽기 전에 내가 먼저 읽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을 후, 나는 막내에게 그 책을 읽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곳곳에 개념정리가 잘못되어 있고, 특정 이데올로기와 국가를 미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객관성을 유지해야할 학습만화가 객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자.

 

17쪽 /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17쪽 /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 예림당

 

무엇이 문제처럼 보이는가? 지도의 제목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고 달려있다. 반대되는 혹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 같은데 과연,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고, 공산주의의 반대말이 민주주의인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가 되어야 맞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를 추구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다를 뿐이고, 현대사에서 두 체제가 경쟁하면서 자본주의 방식이 우세를 보이고, 공산주의 방식이 열세를 보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을 대립의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69쪽 / 소련의 붉은 군대 이미지처리에 있어서도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69쪽 / 소련의 붉은 군대이미지처리에 있어서도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 예림당

 

소련의 '붉은 군대' 이미지 작업이나 공산권 지도자들에 대한 이미지 처리도 부정적으로 그려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미국과 대립각에 서 있는 인물들은 모두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

 

만화에서 이미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캐릭터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를 보면서 자동으로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한 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 전체에 미국과 대립각에 서 있던 인물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처리되어 있다.

 

18쪽 / 삽화 그리스 공산당 정권이 정권을 잡는 것과 민주주의를 버리는 것이 동일시 되고 있다.
18쪽 / 삽화그리스 공산당 정권이 정권을 잡는 것과 민주주의를 버리는 것이 동일시 되고 있다. ⓒ 예림당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으면 곧 민주주의를 버리는 것이고, 그리스가 끝장난다는 식의 내용은 전혀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르다. 일부의 나라에서는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했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가 모두 민주주의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반대의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라고 표현해야 할 것을 '민주주의'라고 표현함으로서 학습만화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24쪽 / 나토에 대한 설명 자유를 짓밟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나토를 만들었다는 설명 속에서 미국은 마치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처럼 인식하게 한다.
24쪽 / 나토에 대한 설명자유를 짓밟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나토를 만들었다는 설명 속에서 미국은 마치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처럼 인식하게 한다. ⓒ 예림당

 

나토에 대한 설명을 보자. '자유를 짓밟는 소련을 두고 볼 수 없어서' 결성되었다고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버럭 성질을 낸다. 그러면 뭔가? 자본주의 노선을 걸어가는 미국은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이며 민주주의 국가이며 공산주의 노선을 걸어가던 소련은 자유를 짓밟는 나라라는 것인가? 이렇게 한 일면을 강조하면서, 단어에 대한 개념정리가 안 되어 있을 때 심각하게 내용이 왜곡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152쪽 / 아라크전쟁의 목적 이라크전쟁의 목적이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있다고 평가한다.
152쪽 / 아라크전쟁의 목적이라크전쟁의 목적이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있다고 평가한다. ⓒ 예림당

 

이라크 전쟁도 보자. 결국 이라크 전쟁의 목적은 '이라크의 무기를 없애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있었다'고 명시함으로, 현대사에서 이미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조차도 왜곡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책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 학습만화를 보면 자칫 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막내에게 이 책은 보지 말라고 했다.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했다. 3판이 나올 때에는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에 문제가 있으니 수정해서 개정판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미 자신들도 편집회의를 통해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등등의 개념들에 대해 논의했고, 감수도 마쳤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 출판했다는 것이다.

 

학습만화는 아주 간결하게 그림과 지문을 통해서 핵심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그림 한 컷, 지문 하나도 무척이나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을 수 있으며, 개념 하나를 잘못 사용하면 독자들을 큰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Why? 세계사 시리즈 -현대 사회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 편집자들이 다시 한 번 이 책을 숙고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고, 잘못된 개념들을 바로잡아 출판해야 할 것이다.


#학습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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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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