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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량도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상도와 마주하고 있는 하도(사진 오른쪽)가 보인다.  
사량도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상도와 마주하고 있는 하도(사진 오른쪽)가 보인다.   ⓒ 김연옥

섬은 뭍에 사는 내게는 늘 낭만적인 곳이다. 바다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팔자 늘어진 소리한다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다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나는 날이면 까칠한 일상이 주는 우울을 털고 어느새 삶의 유쾌함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지난 25일 산 드림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사량도 상도 종주 산행을 나섰다. 사량이란 섬 이름에는 뱀에 얽힌 여러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사 박문수가 고성 문수암에서 이 섬을 바라보니 마주하고 있는 상도와 하도의 모습이 짝짓기 직전의 뱀의 형상이라 '뱀 사(蛇)' 자를 써서 '사량도'라 했다는 흥미로운 설도 있다.

상도와 하도 사이를 흐르는 동강의 물길이 마치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 하여 예전에는 사량으로 불렸는데, 이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배를 타고 떠나는 것만으로도 마음 설레는 일인데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수직으로 늘어진 줄사다리나 경사가 심한 철계단을 내려오는 등 스릴 넘치는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사량도, 그래서 나는 이곳을 '달콤한 꿈의 섬'이라 부른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연지봉 정상. 이 산을 옥녀봉이라 하는 산객들도 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연지봉 정상. 이 산을 옥녀봉이라 하는 산객들도 있다. ⓒ 김연옥

우리 일행은 산악회 버스로 아침 6시 50분에 마산서 출발하여 8시 40분께 용암포(경남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 내렸다. 여기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내지마을(경남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는 이곳 내지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지리산 정상에 오른 뒤 길게 뻗어 있는 불모산 달바위, 가마봉, 연지봉, 옥녀봉으로 능선을 타서 금평리 진촌마을로 하산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 황인숙의 '말의 힘'

지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사량도 산행이다. 사량도에 올 때마다 이상스레 황인숙 시인의 '말의 힘'이 떠오른다. 시의 경쾌한 느낌 때문인지 걸음걸이도 절로 경쾌해졌다. 그렇게 25분 남짓 걸었을까, 섬과 섬을 다섯 개의 다리로 잇는 아름다운 창선-삼천포대교와 삼천포화력발전소가 아스라이 보였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에서. 본디 맑은 날이면 지리산이 보인다 해서 지리망산이라 부르다 언제부터인가 줄여서 지리산이라 한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에서. 본디 맑은 날이면 지리산이 보인다 해서 지리망산이라 부르다 언제부터인가 줄여서 지리산이라 한다. ⓒ 김연옥

 불모산 달바위에서.
불모산 달바위에서. ⓒ 김연옥

 가마봉 정상으로 오르는 로프 구간에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재미있다.
가마봉 정상으로 오르는 로프 구간에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재미있다. ⓒ 김연옥

오전 10시 30분께 지리산(397.8m) 정상에 이르렀다. 본디 맑은 날이면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란 이름으로 부르다 언제부터인가 줄여서 지리산이라 한다. 정상 풍경을 몇 장 디카에 담은 후  햇빛 부스러기 곱게 내려앉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는 계속 걸어갔다. 산행 길에는 세로로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칼날 같이 날카로운 형상의 독특한 돌들이 쉽게 눈에 띄는데 매우 인상 깊다.

불모산 달바위(400m)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40분께. 우리는 달바위에서 내려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호박잎쌈으로 맛있는 점심을 했다. 가마봉(303m)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로프 구간이 있다. 위험스레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퍽 재미있는데, 이때부터 사실 스릴 만점인 사량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 또한 경사가 상당히 급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스릴을 원하지 않는 산객들을 위해 위험한 구간마다 우회로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으로 경사가 심해 조심해야 한다.
가마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으로 경사가 심해 조심해야 한다. ⓒ 김연옥

  
  ⓒ 김연옥

사량도 옥녀봉(261m)은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옛날에 아버지와 단둘이 외딴집에서 살고 있던 옥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욕정에 눈이 멀어 그녀를 범하려 하자 옥녀봉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런데 옥녀봉에는 번듯한 정상 표지석이 없다. 옥녀봉의 기가 너무 세어서 마을 주민들이 표지석을 세우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래서 옥녀봉 위치를 두고 사람들 말이 제각각이다. 옥녀봉이라 적힌 표지판이 있는 곳을 당연히 옥녀봉으로 받아들이는 산객이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연지봉(295m)을 옥녀봉으로 생각하는 산객들도 적잖다. 어쩌면 사량도 산행에서 가장 위험스러워 보이는 연지봉이 가슴 아픈 옥녀봉의 전설과 왠지 잘 어울린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 김연옥

  
  ⓒ 김연옥

 연지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객들. 수직으로 축 늘어진 줄사다리를 조심조심 딛고 내려와야 한다.
연지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객들. 수직으로 축 늘어진 줄사다리를 조심조심 딛고 내려와야 한다. ⓒ 김연옥

사량도 첫 산행 때 로프를 꽉 움켜잡고 거의 수직으로 깎아 세운 듯한 연지봉 절벽을 오르면서 다리가 몹시 후들후들 떨렸던 일이 기억 난다. 더욱이 연지봉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이 자꾸 떨려 혼났다. 남들에게 들킬세라 씩씩하려고 애써면서 축 늘어진 줄사다리를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디뎌야 했던, 주눅 든 내 모습을 지금도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사량도 상도 종주 산행은 5시간 남짓 하면 마칠 수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배들이 오가는 파란 바다를 내려다보며 환상의 섬, 사량도에서 스릴 넘치는 산행을 한번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남해고속도로 사천 I.C→ 삼천포 시내→ 고성 상족암 방면(77번 국도)→ 맥점포 방면(1010번 지방도)→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 용암포(뉴다리호 선착장)→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 내지마을. (카페리 여객터미널 용암포 055-673-0529)



#사량도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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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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