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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IMF 위기로 인해 급격하게 늘었던 노숙자. 지금도 이들이 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역, 용산역, 수원역 등 큰 역이 있는 도시에서는 어김없이 노숙자를 볼 수 있지만 유독 익산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아니 10여 년 전에 그 누군가가 노숙자를 돌본 뒤부터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본 기자는 3년 전에 익산역에서는 노숙자가 눈에 띄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익산시나 또는 철도관계자들이 다른 곳으로 보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2년 전, 손철호(55세)씨가 매일 밤 12시에 익산역을 찾아 노숙자를 데려다가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취재에 나섰지만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알리고 싶지도 않고 만약에 알려진 뒤, 이곳 저곳에서 도와주겠다고 생색내는 사람들로부터 시달릴 것(?)"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참으로 이상했다. 많이 알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니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손씨는 "물론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것이다"면서도 "하지만 순수한 도움이 변질돼 오히려 노숙자들이 불편해 하고 세상에 알려지면 또 다른 곳으로 숨어 지낼 수 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취재에 나서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지켜보며 설득해 나갔다. 그런 지 벌써 2년이 됐다. 이제 그의 선행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밝혀보기로 한다.

 

10년 전, 어느 추운 날 손씨는 익산역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몇 명의 노숙자들이 난방이 되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신문을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손씨는 노숙자들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익산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화동에 방 10개짜리 건물을 얻었다. 그리고 매일 밤 12시쯤 익산역을 찾아 신문을 덮고 있는 노숙자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숙자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를 했지만 잘 곳이 없던 이들은 그저 손씨가 가자는 데로 따라갔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따뜻한 방과 먹을 것이 있었다.

 

이렇게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손씨를 기다리는(?) 상황까지 됐다. 그는 중앙동에 8개짜리 방이 있는 건물을 또 얻었다.

 

올해로 벌써 10년. 손씨는 노숙자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면서 직업도 알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 그의 손을 거쳐 나간 노숙자만 해도 1년에 약 1000여 명. 이들에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고 사회에 나가 자립할 수 있도록 큰 힘을 주고 있다. 이제는 몇 명의 노숙자만 남아 있지만 손씨는 지금도 매일 밤 12시면 찾아 나서고 있다.

 

이렇게 노숙자를 돌보던 중 평화동과 중앙동, 송학동 등에 독거어르신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손씨는 7년 전부터는 익산역 광장에서 자장면을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로 제공했다.

 

하지만 이내 곧 쫓겨나야만 했다. 소문을 듣고 어르신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100여 명 이상 찾아와 복잡해진 탓이었다. 그래서 중앙동에 있던 노숙자 숙소 1층 식당을 또 얻었다. 그곳에서 노숙자들의 식사제공은 물론 독거어르신들에게 무료 식사 제공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손철호씨는 이 많은 비용을 어디서 만들까?

 

익산 대학로에서 손씨의 부인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손씨의 말을 들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식당에서 일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일부 돈을 몰래 꺼내와 이들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척하지만 아마 부인도 알고 있으면서 그냥 모른 척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그는 수줍게 웃고 만다.

 

이제는 노숙자들이 찾아와 그에게 비용을 준다고 한다. 손씨로부터 신세를 진 노숙자들 중 일부는 그를 찾아와 큰소리치며 벌었던 돈을 일부 주고 간다는 것이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그들이 이제는 손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도울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계속 하게 된다"고 말하는 손철호씨.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지내는 것 같았다. 또한 봉사를 하더라도 사진을 찍기 위한 봉사는 거절한다.

 

그는 어깨 너머로 배운 색소폰 연주자다. 광장에 홀로 앉아 색소폰을 연주하고 음악을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노숙자들이나 독거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보는 것이 최대의 희망(?)이라며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다.

 

한 달 전에 새롭게 문을 연 식당을 홀로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안쓰럽다. 또한 음식값도 터무니없이 싸다. 왜? 자립해 돈을 벌고 있는 노숙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당당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더 나아가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손철호씨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힘들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늘 행복하다고 하는 손씨의 미소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빛도, 이름도 없이 봉사활동을 펼친 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기에는 사실 역부족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음에도 자신이 좋아 선행을 펼치고 있는 손철호씨를 2년간의 설득 끝에 쓰게 된 이 글이 새삼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한편, 손씨는 내달 23일(토)에는 노숙자들과 독거어르신들을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인근에 있는 웅포 곰개나루터로 데려가 바비큐파티를 열고 공연을 펼쳐 줄 계획이다. 그곳에서 손씨의 멋진 색소폰 연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행사에 <익산시민뉴스>가 기꺼이 후원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익산시민뉴스


태그:#손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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