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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에게도 안기려 하지 않던 패왕(가명)이가 쉼터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최소한 명절 전에는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겠거니 하고 기대했었다. 눈물, 콧물 흘리며 밤늦게 찾아와서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지는 않더라도 전화라도 한 통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헛물만 켰다.

패왕이는 이제 이십개월된 아이로 부모는 둘 다 베트남 국적의 사람이다.  패왕이가 쉼터에 오게 된 계기는 체류기간을 넘긴 아빠 응우엔 반틴이 출입국 단속에 걸려 강제 출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응우엔 반틴은 이주노동을 하던 중, 같은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고 패왕이를 낳았다. 그런데 응우엔 반틴이 출입국에 잡히고 난 후 패왕이 엄마가 사라졌다.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다.

패왕이 엄마가 사라진 것이 도망간 것인지, 출입국에 발각될 경우 자신 역시 강제 출국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은 것인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패왕의 보호자인 아빠, 응우엔 반틴이 출입국 단속에 걸리면서 아이가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패왕 엄마의 행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의 배우자로 입국했던 패왕 엄마는 입국 후 얼마되지 않아 가출한 후 패왕이 아빠를 만나 살림을 차렸고, 패왕이 출산 후에 역시 가출한 적이 있다 했다. 그렇다고 이십개월 밖에 안 된 어린 패왕이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차디찬 외국인 보호소에서 지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응우엔 반틴은 아들인 그런 패왕이 핑계를 대며 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보호 일시 해제'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반면 출입국은 응우엔 반틴을 강제 출국시키기 전까지 패왕이를 쉼터에 부탁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8일 일이었다.

패왕이가 출입국 직원의 품에 안겨 쉼터를 오던 날, 언제 정이 들었는지 출입국 직원의 품에서 내려놓으려 하자 악을 쓰며 울어대서 걱정이 여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패왕이는 출입국 직원들이 쉼터를 나가자마자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울음을 그쳤다.

생면부지의 어린 아이를 안으며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식사와 잠자는 문제였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패왕이는 음식 투정이 심하지 않았고, 엄마, 아빠와 떼어져 있는 아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잠도 잘 잤다. 덕택에 비록 며칠이지만, 녀석과 정이 들고 말았다. 그렇다고 마냥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에게는 누가 뭐래도 부모가 최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쉼터에서 이주여성들과 같이 식사하고 있는 패왕
▲ 쉼터에서 식사 중인 패왕 쉼터에서 이주여성들과 같이 식사하고 있는 패왕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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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탄할 사실은 패왕이를 맡으며, 다음날 아니면 최소한 추석 명절 때까지는 연락이 올 거라고 기대했던 패왕이 엄마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출입국에선 패왕이를 쉼터에 맡겼다는 사실을 응우엔 반틴에게 전달했고,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남겼다고 했다. 피붙이가 어디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당연히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직접 연락처를 받은 아빠인 응우엔 반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야 고작 한 번 전화가 왔을 뿐, 아이 엄마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핏줄을 떼어놓고 전화 한 통 없는 것이 하도 이상하여, 패왕이 부모가 진짜 베트남인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친자 여부에 대해 의심을 했던 것은, 천륜을 배반한 패왕이 엄마의 행태에도 있지만, 최근에 경험한 베트남 대사관의 여권 발급 과정에서의 비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다.

쉼터에 온 지 한 달 보름이 넘고 있는 이십개월된 베트남 국적 여아, 빈이 이야기다. 빈이 엄마인 응니는 현재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는데, 아기를 출산한 후, 베트남에 보내려고 베트남 대사관에 여권 발급을 문의했을 때 600만원을 요구받고 포기한 바 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출입국 단속에 걸리면서 빈이가 쉼터에 오게 되었다. 응니는 출입국 단속에 걸리자마자, 출입국을 통해 빈이의 여권 발급을 대사관에 신청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속하게 여권이 발급되는 것은 아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매번 발급을 거부한다. 처음에는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모녀의 DNA 검사 결과서를 가져 와라 하더니, 그 다음에는 병원 출생 신고서와 산모 수첩, 결혼증명서를 갖고 오라는 등의 요구로 여권 발급을 질질 끌기만 한다. 그래도 산모들은 노골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뇌물을 요구하면서 여권 발급을 해 주지 않는 자국 대사관을 상대하기에는 대한민국 출입국이 낫다는 판단을 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 베트남인들이 강제 출국되는 사람을 통해 아기를 보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아기를 출입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출입국에서는 패왕이 아빠의 경우, 출생신고서 등을 통해 단속 당시부터 친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그 무정함에 엄마라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어 씁쓸하기만 하다. 패왕 엄마가 남편을 버린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의지할 곳 없는 어린 피붙이까지 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다 보면 현대판 뺑덕어멈이 따로 없다.

엄마라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엄마를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를 의심해야 하는 것이 어린 패왕에게 닥친 현실이다. 고아도 아닌데.

덧붙이는 글 | 패왕이는 여권이 발급되는대로 베트남으로 출국하게 된다.



태그:#고아, #베트남, #부모, #엄마,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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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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