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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더, 올해가 더, 그리고 내년이 더! 폭염과 호우 등 이상기후가 이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 이면엔 화석에너지를 실컷 낭비하고 있는 '에너지맹' 인류가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지난 백 만 년 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을 넘지 않았다. 18세기 산업혁명기 이후 인간이 화석연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급격히 증가, 현재 380ppm을 넘고 있다. 어느덧 화석연료는 세계 연료사용량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와 에어컨, 자동차, 플라스틱을 쓰는 만큼 지구는 뜨거워진다.

 

사람이나 동물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흔적을 말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용어다. 500ml 생수 한 병을 생산, 유통, 소비, 폐기하는 과정에서 약 10.6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한국에서 1년 동안 생산, 소비되는 플라스틱 생수병은 약 9억 개다. 9억 개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지구온난화의 길을 걸은 셈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보자는 청소년들이 전북 무주군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이하 푸른꿈학교)에 모였다. (주)아베다가 후원하고 녹색연합이 진행한 이번 에너지캠프는 8월 9일~11일 동안 사람과 자연이 만드는 에너지로만 생활하며, 한국의 평균 1인당 하루 이산화탄소 배출량(27kg)의 10%만 배출하는 것을 기조로 했다. 프로그램은 바이오가스·바이오디젤 만들기, 재생에너지설비 활용하기, earth hour(지구촌 불끄기), 나무 심기 등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는 체험 등으로 구성했다.

 

내가 쓰는 에너지는 내가 만든다

10일 점심께 학교에 들어서자 작은 원두막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가마솥에선 갓 지은 밥 향기가 피어올랐다.

 

"원래 태양열조리기로 밥을 하려 했는데 비가 와서요."

 

아궁이에서 구운 옥수수를 까먹던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을 펼쳐놓고 신나게 뜨끈한 밥을 퍼 담는다.

 

"밥만 먹어도 맛있다."


전날 참가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주군 안성터미널에 도착했고, 바이오디젤을 넣은 경운기와 자전거로 학교까지 왔다. 학교 탐방 후 영화보기, 잠자리 복불복 게임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쉼터 공간의 전기는 참가자들이 자전거발전기를 직접 돌려 만들었다.

 

그 외 조명도 직접 손으로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자가발전랜턴을 사용했다. 둘 다 발전기 안에 코일을 넣고 자석을 회전시켜 전기를 만드는 원리다. 밥은 자전거 발전기에 연결한 전기밥솥을 연결하거나 태양열조리기로 지어 먹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태양열 오븐은 두 시간 반 정도면 밥을 지을 수 있다.

 
제일 난감한(?) 규칙은 물이다. 참가자들에게는 각자 생활용수 40ℓ(UN이 지정한 1인당 필수 물 사용량)와 식수 1.5ℓ가 주어졌다. 2박 3일 동안 목욕부터 화장실까지 모두 이 물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인천에서 온 송예지(16) 양은 "모기랑 더운 거 빼면 괜찮다"며 재미있어 했다.
 
"집에선 물을 막 쓰는데 여기서 줄여 써 보니까 평소에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써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전날 밤에 영화를 봤는데, 딴 건 힘들어도 일단은 플라스틱 용기에 든 과자는 나도 줄여야겠다는 생각 들었어요."

 

경운기에 쓰인 학생들이 만든 바이오디젤

 

 

이런 '불편한' 캠프를 기획, 진행한 건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지난 3월부터 에너지에 대한 토론과 프로그램 회의를 하며 캠프를 준비했다. 참가자들 역시 13~19세 청소년들로 제한했다.

 

"지금 입시교육을 받으면서는 경쟁하고 냉소하는 걸 익히게 돼요. 그런데 생태를 배우면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거든요. 생태뿐 아니라 청소년 간의 연대도 고민하고 싶어요."

 

홍보팀장 권우현(17) 군의 설명이다.


점심식사 후엔 바이오디젤 만들기 실습이다. "증류수로 세척한 다음에 섞어주시면 돼요." 진행을 맡은 김건우(18) 군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폐식용유에 수산화칼륨 소량을 넣어 글리세롤을 제거하고 에탄올과 섞어서 바이오디젤을 얻는 과정이다. 불투명한 액체와 반투명한 오렌지색 디젤로 분리되는 비커 안에 참가자들의 눈이 고정된다. 어느 모둠의 액체 색이 더 진한지 견주어 보기도 한다. 이 바이오디젤은 학생들이 타고 온 학교 경운기에 쓰였다(국내법상 디젤엔진 차는 주행이 금지되어 있다). 이 디젤 1.5ℓ면 10㎞를 달릴 수 있다고.

 

건우 군은 가르치는 동시에 배우는 게 즐겁다며, 나중엔 '에너지 진단'이라는 지역 전력조사도 배워서 해 보고 싶단다.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니, 혹시 에너지를 절약할 획기적인 실천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가 일러준 답은 의외로(?) 사소했다.

 

"음… 안 쓰는 코드 뽑는 거요. 특히 가전제품. 계기전력이란 게 있어서 꽂아놓기만 해도 전력을 꽤 소비하거든요. 이거 빼면 에너지도 아끼고 전기료도 절약되죠."

로컬에너지와 로컬푸드의 만남

 

캠프 프로그램 중 우현 군은 '학교 탐방'을 추천한다. "학교에 생태적인 시스템들이 잘 돼 있거든요." 숲으로 둘러싸인 학교 건물 지붕 위엔 태양열판과 풍력에너지판이 설치돼 있다. 쉼터 앞에 설치된 자전거발전기는 시간당 200W가 생산된다. 자전거 페달을 1시간 정도 밟으면 선풍기 한 대를 4시간 동안 돌릴 수 있고, 1인용 전기장판을 1시간 정도 켤 수 있다.


도서관 옥상엔 흙을 깔고 풀과 꽃을 심었다. 열이 흡수돼 도서관 안에는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원해진다고. 그뿐 아니다. "잘 들어보면 곳곳에서 물소리가 들리죠?" 지하수와 학교 안 폐수가 여학생 기숙사 앞 습지로 흘러드는 소리다. 습지의 수생식물 등을 통해 정화된 물은 지방 하천으로 흘러간다. 모두 교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한 쪽에는 농장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생태농업반, 노작반이 정규 과목으로 있어 학생과 선생님들이 직접 채소를 기르고 잔반으로 소, 닭, 돼지를 키운다. 작물은 급식실에서 쓰거나 학생들이 나눠 갖는다. 그 외 식재료는 학교 아랫마을 유기농지에서 수급해온다. 푸드 마일리지 0㎞인 셈이다.


환경과 배움이 갖춰져 있다 해도 삶을 당장 바꾸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에도 학교에서 컵라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학교에 '소비 없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과자나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 1회용품 같은 걸 안 쓰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엔 컵라면 소비가 확 늘어서 문제가 됐어요. 경각심이 떨어진 거죠. 지하수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데 학교 안에서도 물을 아꼈으면 좋겠어요."

여건이 갖춰진 학교 안에서도 그런데, 도시에선 더 어렵지 않을까?

 

"도시라서 실천이 어렵다는 건 핑계인 거 같아요. 에너지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차로 이동하는 거리의 50%는 사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요. 그런데 그냥 차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거죠. 플라스틱 이용도 마찬가지고."

 

물론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현 군도 집에 가면 인스턴트를 많이 먹는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학교에서의 배움과 각성은 그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뭐든 신경 쓰게 돼요. 목욕할 때 비누칠하는 중엔 물을 잠근다던가, 지렁이 상자를 들여다 음식쓰레기를 처리해 보자고 부모님과 같이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그의 실천 제안 역시 사소했다.

 

"조금씩만 덜 쓰고 조금씩만 불편했으면 좋겠어요. 분리수거 같은, 작은 것부터 실천을 모색했으면 해요. 개인들뿐 아니라 국가기관에서도 먼저 실천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다음에 홍보도 하고. 그렇게 모두 조금씩만 바꿔나가도 큰 변화를 이룰 거 같거든요."

학교를 통해 지역까지 바꾼다

 

푸른꿈학교는 지난 99년 문을 열어 에너지 교육, 생태농업 교육 등을 진행해 왔다. 녹색연합은 2008년 이곳에 '숲과바람과태양의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500W 풍력, 태양광, 200W 자전거발전기를 지원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안기술센터가 보급한 '중간기술'로 만든 재생가능에너지설비를 학교에 지원하는 것으로, 학교가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에너지 교육에 활용하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만큼 선정기준은 설비를 활용한 교육방안과 학교 구성원들의 의지다. 설비 역시 해당 학교 교사들이 직접 제작해야 한다. 올해까지 총 12개 학교가 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다.


 

"당면한 목표는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거고, 최종적으로는 학교가 중심이 되어 해당 지역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확산시키는 겁니다. 국내에서 참고하는 모델로는 홍성의 풀무고등학교가 있죠. 학교가 곧 마을이라는 기조로 학교 중심으로 유기농, 태양광, 유기농법 교육 등을 마을에 제공하죠."

 

엽집(30)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활동가의 설명이다. 이번 캠프 역시 '숲과바람과태양의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캠프를 학생들이 진행하도록 제안한 이가 그다.

 

"학생들이 스스로 진행을 맡으면서 능동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되길 바랐어요. 또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활용하고 싶었고요. 회의를 같이 하면서 느낀 게 우리 안에 전문가주의가 너무 많다는 거였어요. 기후변화 부분은 전문영역으로 여겨져서 소수 전문가의 주장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여지를 주고 같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훨씬 다양한 생각과 기획이 나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또 많이 배우고. 10번 특강보다 한 번 실천이 좋은 거죠."

 

역시 '실천' 얘기다. 내친 김에 실천방안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사소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이요. 캠프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 쓰게끔 하니까 한 명이 하루에 20ℓ도 다 못 쓰더라고요. 샤워기를 쓰면 이 물의 몇 배는 쓰거든요. 물을 퍼 쓰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거 같아요."

 

그의 옆에서 한 모둠이 쓰레기를 이용해 미술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손을 통해 페트병, 우산, 컴퓨터가 꽃과 변신 로봇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기획단이 모여 벌써 내년 캠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어떤 획기적인 논의나 방법은 여기 없었다. 그러나 작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삶의 자세를 바꾸려는 실천이 있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1)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혹은 적정기술(AppropriateTechnology)이란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개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을 일컫는다. 인간이 대규모 자본의 기술로부터 소외, 종속되지 않고 생태적이고 해당 지역에 적합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세상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동세상, #대안에너지,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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