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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심취한 북경의 20대 여성들 -북경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노트북을 열어 각종 인터넷 오락물에 심취한 북경의 패셔너블한 20대 여성들 !  2008 북경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은 성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심취한 북경의 20대 여성들-북경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노트북을 열어 각종 인터넷 오락물에 심취한 북경의 패셔너블한 20대 여성들 ! 2008 북경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은 성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 박태상

2006년에 연변을 여행한 후 다시 4년 만에 연길공항을 찾았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중국은 5년 만에 강산이 변한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그만큼 급격하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의 변모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북경과 상해 등 대도시를 방문할 때 보게 되는 새롭게 들어서는 높은 주상복합빌딩을 통해서다. 요즈음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서부지역 개발에 쏟아 넣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국가 경제력은 대단하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라는 미국에서 출발된 국제금융위기 속에서도 중국은 연평균 두 자리 수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2010년 1·2분기 경제성장률이 10~11%대를 기록하는 등 중국 경제는 순항 중이다. 하지만 올 초 3200 선이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2600대에 머물고 있다. <중앙일보> 경제면을 살펴보면, 7월 이후 저점을 찍은 듯해도 아직 연초 이후 마이너스 수익률(-17.97%)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중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시장 비중이 큰 대형 국유기업 주식과 은행주가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광주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올 중국 경제는 9.84%의 성장이 예측된다고 한다.


하지만 연변지방의 중심도시인 연길공항에 내렸을 때 깜짝 놀랐다. 북경 국제공항과 달리 10여 년째 변함이 없이 작은 농촌지역의 공항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길공항을 입국하거나 출국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외모를 살펴보아도 얼굴이 새까맣게 탄 것을 볼 때 농촌지역의 농부이거나 아낙네의 모습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동북삼성의 다른 공항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동북 3성 등 외곽지역의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까지 중국 중앙정부의 투자여력이 못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에 비해 북경공항은 5년이 다르게 변모되어 있었다. 2005년 2월 제2회 세계한국학대회에 주제논문 발제를 위해 방문했을 때의 북경공항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북경을 상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북경올림픽 개최를 기점으로 중국은 무섭게 변하고 있었다.

 

10년 전이나 현재나 전혀 변화가 없는 낙후된 연길공항의 모습 -북경공항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나드는 중국여행객들의 옷차림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10년 전이나 현재나 전혀 변화가 없는 낙후된 연길공항의 모습-북경공항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나드는 중국여행객들의 옷차림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 박태상

북경의 수도공항 제3터미널  - 면적으로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의 약 2배정도라고 하며, 건설되자 말자 ‘세계 10대 건축물’로 선정되어 중국의 국력을 다시금 인식시켜 주었다.
북경의 수도공항 제3터미널 - 면적으로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의 약 2배정도라고 하며, 건설되자 말자 ‘세계 10대 건축물’로 선정되어 중국의 국력을 다시금 인식시켜 주었다. ⓒ 박태상

우선 북경공항은 깔끔하고 세련되게 유럽의 어느 국제공항 못지않게 현대식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공항 바닥에 아무렇게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2010년의 북경공항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공항 규모도 인천국제공항의 2배 정도로 대단히 큰 규모로 지었고 인천공항과 마찬가지로 국제선과 국내선 사이를 무인 경전철로 연결하고 있어 최첨단방식으로 공항이 운용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유럽이나 미국국제공항과 달리 공안(우리나라의 경찰)에 의해 인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공안이 청소차 같은 동력차를 타고 공항 청사 안을 움직일 때는 일사분란하게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켰으나 공안이 지나가고 나면 인민들이 흐트러져서 무질서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 북경공항 대합실의 20대 여성들은 패션감 각을 뽐내는 옷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몰두하고 있었다. 옆에서 살짝 보니 우리의 네이트온이나 트위터 같은 커뮤니티에서 채팅과 연예계 소식 등을 검색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분명 북경은 세계로 도약하고 있었다.

 

북경국제공항의 질서를 잡는데 일조를 하는 중국공안  -  공항 청사를 15분 간격으로 남녀공안(우리나라의 경찰)이 교대로 돌면서 공항을 이용하는 중국여행객들의 무질서함을 무언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잠시 짬을 내서 남친(?)으로 생각되는 사람과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깜찍한 모습의 중국의 여성공안 모습 !
북경국제공항의 질서를 잡는데 일조를 하는 중국공안 - 공항 청사를 15분 간격으로 남녀공안(우리나라의 경찰)이 교대로 돌면서 공항을 이용하는 중국여행객들의 무질서함을 무언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잠시 짬을 내서 남친(?)으로 생각되는 사람과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깜찍한 모습의 중국의 여성공안 모습 ! ⓒ 박태상

빗길 운전으로 아찔했던 백두산 천지 가는 길

 

5년 사이에 백두산 천지의 간판은 사라진 채 장백산만이 도처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동북공정으로 빚어진 한중간의 갈등이 피부로 느껴졌으며 항일투쟁을 하던 북간도에서의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엿볼 수 없어 애잔한 슬픔이 마음 한 구석에 스며들었다.
5년 사이에 백두산 천지의 간판은 사라진 채 장백산만이 도처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동북공정으로 빚어진 한중간의 갈등이 피부로 느껴졌으며 항일투쟁을 하던 북간도에서의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엿볼 수 없어 애잔한 슬픔이 마음 한 구석에 스며들었다. ⓒ 박태상

북경에서 하루 밤을 숙박하고 바로 아침 북경공항 국내선을 통해 연길공항에 도착해서 백두산 천지를 향해 나아갔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니 5년 사이에 크게 바뀐 것이 두 가지 눈에 띄었다. 바로 '천지'라는 한자로 된 현판이 '장백산'으로 바뀌어 있었고 전에는 주로 한국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백두산에 요즈음은 중국 한족들 관광객들이 무척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7~8년 사이에 동북공정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의 우울한 마음을 반영하는 듯 날씨도 찌뿌드드한 것이 곧 비가 올 듯한 분위기였다. 결국 가이드에 의해 일정이 바뀌어 오전에 장백폭포를 먼저 탐방하고 오후에 날이 개이면 백두산에 올라서 천지를 찾아가기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패착이었다. 점차 날씨는 더욱 악화되어 장백폭포를 내려올 때쯤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불길한 기분을 가눌 수 없었다. 장백폭포를 보고 하산한 후 2팀으로 나누어 각각 주변 산책을 하는 팀과 장백폭포 온천탕을 방문하는 팀으로 구분하였다. 5년 전에는 일정에 쫓겨 가보지 못한 백두산 온천탕을 들어갔다. 20년 전 한국에 처음 사우나탕 붐이 일었을 때 정도의 소규모의 열탕과 온탕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멀리 장백폭포가 바라다 보이는 야외온천이 인기였다.

 

예전에는 백두산 '천지'가 강조되었는데~~  아~~ 옛날이여!!!
예전에는 백두산 '천지'가 강조되었는데~~ 아~~ 옛날이여!!! ⓒ 박태상
장백폭포의 대장관  - 5 ~ 6년 전과 달라진 모습은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개칭하면서 중국 한족들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중국 내국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장백폭포의 대장관 - 5 ~ 6년 전과 달라진 모습은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개칭하면서 중국 한족들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중국 내국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 박태상

점심식사를 마치고 백두선 천지로 향하는 자동차를 탔다. 크게 4~5명 정도가 타는 일제 소형 도요타 SUV와 10명 정도가 타는 중형 벤츠버스로 나뉘어 올라탔다.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가파른 백두산 산길을 따라 난폭하게 젊은 운전사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하고 있었다. 마음은 가뿐하였지만 빗길 운전 사고에 대한 대비책이 없어 보였고 안전벨트마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마음 한켠에서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서 문자메시지가 온 일행을 통해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 청주에서 온 백두산여행팀이 탄 10인승 버스가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져 1명이 숨지고 3~4명이 중경상을 입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으로 일행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중국 현지 TV방송에는 사고 방송뉴스가 안 나온 듯이 보였다. 공산당 정부의 언론통제 탓인가 아니면 워낙 많은 14억 인구로 인해 1~2명 사망소식은 크게 다뤄지지 않는 것일까? 

'백두산 미인송'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

 

버스에서 급하게 촬영한 백두산 미인송 - 소나무는 잎이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푸른 솔 즉 청송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줄기가 붉어 적송이라고도 불린다. 백두산 미인송에는 청년 송풍과 처녀 라월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있다.
버스에서 급하게 촬영한 백두산 미인송- 소나무는 잎이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푸른 솔 즉 청송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줄기가 붉어 적송이라고도 불린다. 백두산 미인송에는 청년 송풍과 처녀 라월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있다. ⓒ 박태상
최근 백두산 종주 트래킹 코스도 개발되어 자연을 즐기는 매니아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맹자가 태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느꼈다는 고사를 통해 누구나 명산을 오르고 싶은 충동이 있다. 북한과 중국이 국경지대에 자리 잡은 백두산은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에 속하고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놓여있다. 지금까지 백두산관광은 주로 북파지구에서 토요타 SUV를 타고 오르는 코스였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1998년부터 서파(중국 말로 波는 언덕이라는 의미) 쪽의 백두산 트래킹 코스와 남파 쪽의 등산로 3곳을 모두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두산 종주 트래킹은 서파에서 올라 북파로 하산하는 약 13km의 코스에서 이루어진다. 백두산의 주봉은 장군봉으로 높이가 2750m이다. 백두산은 2500m이상 봉우리만 16개를 지니고 있다. 그중 트래킹코스는 마천우-청석봉 -백운봉-녹명봉-용문봉을 오르게 되며 광활한 초원지대에서 야생화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08년 KBS TV의 1박2일팀도 백두산 종주 트래킹에 참여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북파의 인접도시인 이도백하에서 백두산으로 접어드는 양편 길에는 '백두산 미인송'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두산에만 자라는 미인송에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송풍라월'이란 말은 원래 솔가지 사이에 부는 바람과 덩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의미하지만, 사실은 백두산 북쪽 안도현 부흥 이도백하 마을 어귀에 얽힌 사랑의 전설을 뜻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이 마을 청춘총각과 처녀였는데, 라월을 짝사랑하는 마을 이장 구호가 늘 라월의 미모를 탐했다. 두 사람은 장차 부부가 되자는 언약을 맺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두 사람은 부자인 구호로부터 빌린 곡식과 빚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결국 구호의 농간에 의해 송풍은 빚을 갚기 위해 성을 쌓는 부역을 떠나게 되었다.

 

구호는 중매꾼을 보내 라월에게 구호의 첩이 되라고 강권을 했지만, 라월은 1년을 버텼다. 하지만 1년 후 다른 부역꾼은 돌아왔지만, 송풍은 성을 쌓다가 큰 상처를 입어 바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구호의 강권을 못이긴 라월은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하고는 백하강 기슭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송풍과 영혼결혼식을 올리고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택했다.

 

이후 라월의 무덤에 미인송이 한 그루 자라났고 3년 후 돌아온 송풍은 미인송을 끌어안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 뒤 미인송은 크게 자라났고 주렁주렁 맺힌 솔방울이 맺히고 솔씨가 바람을 따라 흩어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이후 마을에서는 송풍의 피는 미인송의 몸이 되었고, 푸른 잎은 라월의 사랑이라는 전설이 퍼져나갔다. 백두산 진입로에 미인송이 많은 이유는 바로 송풍과 라월의 생전에 못 이룬 사랑의 위력 때문인 것이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다. 민족의 고유 신화와 바람결과도 같은 아름다운 전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 숨쉬고 있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은 8월 22일부터 8월 28일까지 다녀왔습니다.

몇 년전 평양에서 북한 안내원이 한국의 5대 명산으로 금강산, 설악산, 한라산, 묘향산, 구월산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백두산이 빠져 고개를 꺄우뚱했다. 그런데 이어서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행에서 백두산은 한민족의 영산임을 확인했다. 


#북경, 연변, 백두산탐방기#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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