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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지난 7월 1일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발효된 이후 이란제재의 동참 논쟁은 국제사회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최대 현안으로 등장했다. 8월 2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주한 이란 대사나 현지 정부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을 비난하는 것을 외교적 결례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언론 플레이를 먼저 시작한 것은 한국 정부였다.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비확산 및 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6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란 핵협력 커넥션 그리고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의 핵확산 및 테러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이후 이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모함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 대사는 6일부터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대이란제재 움직임에 대해서 경고했고 9일 모함마드 레자 라히미 제1부통령은 한국 상품 불매운동을 거론했다. 또한 9월 5일 라민 메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에 제재를 가하는 국가 클럽에 가세하는 나라에 대해서 이란의 높은 잠재력을 활용하는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이란제재는 한국과 이란의 관계에서 심각한 외교 위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9월 8일 한국 정부는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 이행 관련 정부 발표문'이란 이름으로 이란제재조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멜라트 은행을 포함한 단체 102개와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고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을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방침을 내렸다. 또한 제재 대상이 아닌 이란기관과 금융 거래 때 사전허가제(4만 유로 이상)와 사전신고제(1만 유로 이상)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제재조치는 유엔안보리의 대이란제재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향후 이란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추진하는 이란제재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란제재의 정치적 목적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이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Ⅱ. 이란제재의 정치적 목적

 

오바마 행정부는 5월 27일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향후 안보 및 대외정책의 기본 방침을 제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소프트 파워, 동맹 강화 및 국제협력을 강조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와 차별성을 부각시켰지만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표방했다. 미국의 이란제재는 이란을 고립화시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

 

미국의 이란제재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의 에너지 패권전략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란이 이번 제재로 핵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이번 제재는 일종의 에너지 게임으로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국가 이란을 봉쇄시켜 미국 중심의 에너지 패권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페르시아만은 세계 원유매장량의 2/3 이상, 카스피해는 1/5 이상이 매장되어 있어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또한 천연가스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란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2위이고 2025년까지 세계 제2의 가스 수출국을 목표로 유럽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번 제재를 통해 이를 저지하려고 한다. 또한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이란제재 결의안에 찬성한 이유는 천연가스 수출경쟁국으로 이란의 유럽 진출을 막고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독점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이란제재는 다양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번 제재는 지역적, 국제적 동맹을 강화시켜 이란에 대한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까지 유엔 안보리의 이란제재 결의안은 4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4차 결의안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3차례에 걸친 결의안은 만장일치(2006년과 2007년은 만장일치, 2008년은 인도네시아가 기권했지만 14개국이 찬성)였지만 이번 결의안에서는 브라질과 터키가 반대했고 레바논이 기권했다.

 

1996년 미국의 이란제재법(ISA)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제재 대상이 되는 제3국 기업의 2,000만 달러 이상의 에너지 부문 투자활동이 20여 건에 달하지만 아직까지 제재가 가해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것은 이란제재법이 미국법의 치외법적인 성격이 있다는 비판에 대한 조치이고 향후 이란을 제재하기 위한 다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이란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에너지 분야에 대한 참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유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에 대해 미국시장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압박을 강행하면서 많은 국가들로 하여금 이 정책의 수용을 강요하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특별보좌관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이란제재에 대한 동참을 강요했다. 미국은 이란 봉쇄정책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려고 한다.

 

둘째, 이번 제재는 이란경제를 약화시켜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국의 이란제재는 이란의 심각한 에너지구조를 겨냥한 것이다. 이란은 세계 2위의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5위의 원유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유시설 미비로 가솔린 40%를 수입하고 있다. 이란제재의 1차적 목적은 이란을 압박해 서방과의 핵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다.

 

7월 27일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라마단 이후 9월 서방국가들과 핵협상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일 요미우리 신문과의 단독회견에서 8월 하순 또는 9월 초에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재개될 핵협상에서 어떠한 합의가 도출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란의 조건 없는 복귀 용의는 이번 제재의 가시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성공적인 외교 전술이지만 향후 이란과 서구의 관계는 불신이 확산되고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이번 제재는 미국의 중간 선거를 위한 국내 정치용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란에 대한 강경 노선을 표방해 미국의 보수파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이란의 핵 문제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2012년 재선을 대비한 일종의 선거 전략이다.

 

이란제재의 결과는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 아시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먼저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이란제재에는 찬성했지만 미국의 이란제재에 대해서는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이란의 최대 교역국이고 2004년 이후 이란의 에너지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활적인 에너지 안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란은 중국의 3번째 원유공급국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국가이다. 또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이란제재에서 최대 수혜국이 되고 있다. 한국 건설업체들이 이란 플랜트 시장에서 철수할 경우, 중국이 대부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터키는 유엔 안보리 이란제재 결의안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미국의 이란제재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전통적인 친미국가 터키는 2000년 이후 유럽연합의 가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기존의 일방적인 친서구 정책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07년 총선 승리 이후 신중동정책을 표방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시켰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의 이란제재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란과 에너지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이란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남아시아 국가로 공급하기 위해 2천 6백 km에 이르는 송유관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1989년 이란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미국의 반대와 인도-파키스탄 분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7년 11월 10일 이란과 파키스탄은 IPI 파이프라인, 소위 평화파이프라인 협정에 합의하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지난 6월 14일 이란은 파키스탄에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70억 달러 규모의 '평화 가스관' 협약을 최종 승인했다. 이 가스관은 길이 1,000㎞ 규모로 약 907㎞는 이미 완공되었고 2015년 말부터 가스 수출이 시작된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이란제재에 동참하면서 이란의 보복이 예상되고 있다. 이란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국 상품에 대한 과대한 관세 부과조치 등이 예상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란이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Ⅲ. 대이란 정책 방향

 

앞으로 제3의 중동붐은 이란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의 대이란 외교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주 이란 한국대사관에는 이란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란은 중동국가 가운데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4대 원유 공급국이다. 이란은 막대한 천연 자원 뿐만 아니라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란의 인적 자원은 약 7,500만 명 정도로 현재 중동에서는 두 번째로 인구가 많고 20대와 30대가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젊은 나라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란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장기적인 이란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또한 구체적인 중단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민, 관, 학계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구성되어 이란 외교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란과의 관계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의 전담 부서나 통합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현재 다양한 기관에서 이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많은 한계와 문제점이 존재한다.

 

2013년 제11대 이란 대선과 2014년 전문가회의 선거는 향후 이란 정치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전문가회의는 국민들이 선출하는 86명의 고위성직자로 구성된 기구로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고 해임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임기는 8년이다. 따라서 2013년과 2014년을 대비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문화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과 이란의 관계에서 문화외교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이란에서는 새로운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2007년 대장금은 약 90%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문화외교는 본질적으로 쌍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역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이란을 소개하는 문화사업도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2008년 '페르시아문명전'은 매우 의미 있는 문화 사업이다. 한국과 이란 간의 문화 교류는 전시 행사 위주의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과 방향 속에서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셋째, 이란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중동사태가 발생했을 때마다 매번 언급되는 내용이 중동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중동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교관 채용방식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외무 고시로 채용하는 현행 제도에서 각 지역별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외교관으로 선발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2년마다 실시되는 순환 근무도 심각한 문제이다. 해당 외교관이 현지 정보를 파악할 시점에 또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전담제로 운영되어야 한다.

 

2005년 10월 17일 이란 정부는 한국산 제품의 수입에 대해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이것은 9월 2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결의안에 한국이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한국이 이와 같은 조치에 대해서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주요 요인은 대이란 정책의 부재와 이란 인적 네트워크의 미비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이란정책은 인적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흔히 "중동 장사는 안면장사이다"라는 말이 있다. 중동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효율적이고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것은 이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코리아연구원(원장 박순성)은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 부문에서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을 제시합니다. 홈페이지 및 전화(02-733-3348, knsi@knsi.org)로 코리아연구원 후원이 가능하며, 후원회비 및 기부금은 기획재정부의 공익성기부금으로 인정되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란제재#멜라트은행#코리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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