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겉그림 〈좌우파사전〉
책겉그림〈좌우파사전〉 ⓒ 위즈덤하우스

어젯밤에는 경기도 곤지암 리조트에서 날밤을 세웠다. 나를 비롯해 목사들 몇이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가지 의제가 있었다. 이른바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라든지, 목회세습이나 재정권 독식, 그리고 노후대책 등이 그것이었다.

 

물론 하나의 시선만 있었던 게 아니다. 빨주노초파남보 같은 여러 생각의 빛깔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대개 진보와 보수 쪽으로 나뉘는 양상이었다. 이미 교회의 정치체제에 몸담고 있는 목사는 보수 쪽에 서 있었고, 아직 그 속에 들어가지 않는 새파란 목사는 진보 쪽에 있었다.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코드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좀 더 고상한 표현 같고, 더 원색적으로는 좌파니 우파니 하며 구분한다. 언론에서 더 부채질하는 책임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려면 그만큼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싸움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 적당히 넘어가면 물에 물 타듯 술에 술 타듯 두루뭉술할뿐 실질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우리사회 곳곳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말 보다 좌파와 우파라는 원색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그것은 구갑우 외 13인이 쓴 <좌우파사전>(위즈덤하우스)에서 밝히는 바이기도 하다. 이 책은 좌파와 우파가 무엇인지, 그리고 첫 번째 의제인 국민주권과 대의제에서부터 마지막 고교평준화와 학교 다양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22가지 의제를 설정하여 다룬다. 나이든 사람에서부터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접근하고 있다.

 

우파의 출발점과 좌파의 출발점은 뭘까? 이 책은 우파가 현존하는 순기능을 옹호하는 측면에 서 있는데 반해 좌파는 지속적인 평등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우파의 순기능이란 국가 발전과 동력 확보이고, 좌파의 지속 평등이란 분배와 복지측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 구분을 생각하니, 어젯밤에 했던 교회의 정치의제가 생각났다. 그곳에 참여한 새파란 목사들은 지방회가 개척교회를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현재 지방회에 몸담고 있는 나이든 목사님은 그건 개별적인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양쪽 다 타당한 논지였다.

 

이 책은 통일의 관점을 그렇게 구별하고 있다. 우파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고, 좌파는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다는 것. 노동자 문제도 우파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에 맡기길 바라고, 좌파는 정부와 법이 제도적으로 규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우파는 경제발전에, 좌파는 분배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가 공부만 잘하면 대학도 가고 출세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은 초기 우파적인 성공 신화일뿐 좌파적 평등주의는 아니다. 좌파적 평등주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288쪽)

 

이는 업적주의와 사회불평등에 관한 좌우파의 견해차다. 옛날에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교수 집안에 교수 나오고, 의사 집안에 의사 나올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틀을 깰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기술자나 장인들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가능하다. 그들도 대학교수나 의사들처럼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학력주의나 무한경쟁사회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깥은 사회가 올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나도 좌파목사쯤 될까?

 

영어공용화와 몰입교육에 대해서도 이 책은 견해차를 일깨운다. 우파는 영어공용화가 국가경쟁력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좌파는 그런 근거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영어몰입교육에 대해서도 우파는 그것이 호랑이에 독수리의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지만 좌파는 영어 격차만 더 커질 뿐이고 교육 경쟁력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이병민 교수는 다른 관점으로 그 논쟁을 환기시킨다. 이른바 역사적인 실험 이전의 사회적인 흐름을 진단하는 것이 그것이란다. 옛날에 중국의 한자가 유입되고, 일본의 언어가 우리를 지배했을 때에도 우리 한글은 여전히 견고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영어가 아무리 흔들어대도 우리 언어는 뿌리가 깊숙이 박힐 것이란 이야기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자니 어젯밤에 이야기했던 대형교회와 개척교회에 관한 논쟁이 떠오른다. 우파적인 시각에 있는 목사들은 개척교회들이 죽기 살기로 전도해서 교회를 가득 채워야 하고, 좌파적인 시각에 있는 목사들은 대형교회들이 몇몇 성도들을 개척교회에 보내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야 서로가 사는 길임을 밝혔다. 나는 죽기 살기로 전도하는 길만이 개척교회가 살 길이라 생각하니, 여기엔 우파목사쯤 되는 걸까?

 

어찌됐든 이 책은 좌파와 우파의 시각을 정확하게 진단해 주는 처방전 같다. 아울러 나 스스로도 우파적인 시각에 서 있는 듯하나 때론 좌파적인 입장에 서 있었고, 또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여러 사실들을 일깨워 준다. 더욱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의제에 관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앞으로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내다볼 수 있도록 귀한 나침반을 제공해 준다.

 

요즘 우리사회의 고민은 소통의 부재다. 그 때문에 좌우 대립이 더 극심하다. 아무쪼록 어젯밤에 했던 우리 일행처럼, 우리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좌우파의 시각들을 서로가 알아 진정한 대화의 길을 열어나간다면 소통의 길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우리사회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데 대단히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좌우파 사전 -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

구갑우 외 13인, 위즈덤하우스(2010)


#좌우파사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