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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인정 판결을 내린 후 불법 파견 철폐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노동부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울산지역 대기업의 위장하도급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석연치 않은 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면죄부를 위한 조사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울산지부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등에 따르면 최근 금속노조는 "공정하고 엄정한 조사를 위해 공동조사를 하자"고 노동부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노동부는 또 민주노동당 김경득 동구의회 의원이 요청한 현장조사 참관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재 민주노총에는 노동부 조사를 앞두고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서 '원청 관리자의 작업지시를 중단시켰다' '원청 하청 혼재 생산체계를 변화시켰다' '산재자 휴직자를 대체하던 하청노동자를 복귀시켜 노동부의 조사에 대비하고 있다' '하청업체의 말맞추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 야당은 9일 오후 2시 고용노동부울산지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노동부 조사가 또다시 대기업의 위장하도급에 면죄부를 주는 눈가림식 조사, 꿰맞추기식 조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며 "노동부가 이번 현장조사를 엄중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만약 노동부가 대법의 판결 취지를 부정하고 또다시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조사를 실시한다면 강력한 규탄 투쟁 및 법적 대응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이창규 국장은 "7월 22일 대법원 판결 후 노동부는 대기업들이 자동차, 조선, 전자, 철강 산업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주는 사내하청을 통해 이윤을 확대해 왔음을 인정했기에 현장조사를 하려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또다시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면죄부 조사 의혹, 왜 나왔나? 

 

대법원 판결로 하청 철폐에 대한 목소리가 높여지면서 노동부가 현장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왜 면죄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을까.

 

우선 노동부가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대해 느닷없이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여기다 더해 노동계는 지난 2008년 대법원 판결로 원청으로 복귀한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의 사례가 있는 현대미포조선을 이번 조사대상에서 빠뜨렸다는 점도 의문점으로 든다.

 

노동부가 이번 조사에서 불법 하도급이 있는 전체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것과, 현장 조사시 불법파견의 판정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에서 "불법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축소하기 위해서도, 대기업의 불법을 엄단함으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동부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운을 뗐다.

 

이들은 그러면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불법파견 진정 사건에서 보듯 지방노동위원회가 불법파견으로 판정해도 중앙노동위, 지방법원, 고등법원에서 뒤집는 등 그동안 노동부와 사법부는 대기업의 위장하도급 불법파견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에 바빴다"고 성토했다. 그동안의 사례가 있어 노동자들은 노동부와 사법부의 사용자 편향에 따른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번 7·22 대법원 판결은 잘못된 노동부의 판정과 하급심의 판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며 그동안의 잘못을 시정하고 바로잡으라는 질타"라며 "노동부는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부는 이번 대법 판결을 계기로 엄중하고 객관적인 잣대와 기준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해 대기업의 불법적인 위장하도급 관행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이에 따라 사내하청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돕기 활발

 

7·22 대법 판결 후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이 대거 하청노조에 가입하고 있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정규직화 요구가 거세다. 하지만 올해 3월 비슷한 대법원 판결이 난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자의 움직임이 덜하고 지역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대자동차가 컨베이어시스템에 의해 정규직과 하청이 동시에 같은 현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정규직화에 대한 증거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조선 업체는 일의 특성상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 때문에 자역계의 관심도가 현대자동차에 비해 덜하고, 강성의 노무관리에 따른 해고 불안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9일 기자회견에는 이런 점을 감안,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를 돕기 위한 현대중공업 소재 동구지역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도 현대자동차와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원청 하청 노동자가 같은 생산공정에 종사하며, 협력업체가 고유의 기술이나 자본 생산시설 투입이 없다는 점을 든다. 

 

특히 하청 관리자가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더라도 도급인인 현대중공업 사측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고 사실상 현대중공업이 현장을 통제하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와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것.

 

민주노총 울산본부 이창규 국장은 "현대중공업 원청은 정규직 뿐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 에 대하여도 근로시간·작업량 등 구체적인 근로조건 등을 결정한다"며 "원청이 사내협력업체를 통해 하청 노동자 근태 등을 파악하고 관리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에서 제기한 유형의 위장하도급 형태를 띠고 있어 현대중공업도 불법파견으로 판정되어야 한다는 것.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최근 '원청 관리자의 작업지시를 중단시켰다' '원청 하청 혼재 생산체계를 변화시켰다' 등의 제보를 민주노총에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불 수 있다.

 

이창규 국장은 "노동부 조사 전부터 벌써 이렇게 조치가 된다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왜 하청노동자를 양산하나

 

하청노동자가 대거 양산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가 기점이 됐다. 외환위기 2년 전인 1996년 당시 민자당 김영삼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완화, 제조업에 파견노동 확대 등의 파견법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파견법 개악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민주노총이 총파업으로 맞서자 이 법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이후 대기업에서는 사내하청이라는 명목의 불법파견이 확대됐고 하청노동자가 대대적으로 확산됐다. 

 

7월 22일 대법원이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인정 판결을 내린 현대자동차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 간접부서 중심이던 사내하청이 직접 생산현장인 컨베이어라인으로 확대됐다. 또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1990년대 중반 6000여 명이던 사내하청노동자가 현재 2만 여명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하청노동자 양산은 대기업이 노동자의 생계와 삶보다는 기업의 이윤창출을 우선하고, 그 이윤창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한다는 경영이념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노동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편 9일 기자회견에는 울산지역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동구주민회, 울산여성회동구지부,희망법률원, 민주노총울산본부, 금속노조울산지부, 현중사내하청지회, 현중청년노동자회,현중전진하는노동자회, 미포조포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대중공업 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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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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