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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내가 벌려 놓은 일을 후회하고 있다. 수업 준비는 물론이고 3학년 1학기 학생부 마감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 평가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수시 전형에 대비해 아이들과 상담을 해야 하고 그리고 추천서도 써야 한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우리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땀 흘린 논문 편집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이 일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런데 또 올해 초에 이 강좌를 개설하여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한 학기 동안 토론을 하며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나의 무지함을 자책하기도 했다. 지난해 후회를 잊고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우둔함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논문 쓰기> 수업에는 이러한 나의 우둔함을 유혹하는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한 것이 "자기의 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생각하더라도 겉모습의 화려함에 유혹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제시해 준 길, TV 드라마 주인공의 화려한 모습에서, 또는 언론에서 소개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맞춰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있다. 이 새로움이 존중받고 있기에 다양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남과 같아지려 하지 말고 "남과 다름"을 추구해야 한다. 남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남과 다른 삶. 그래서 자신의 삶이 값지다는 것을 알고, 그 삶을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이것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었다.

그런데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행운이 찾아 왔다. 북경한국국제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대학을 진학하지만 그래도 한국에 있는 아이들보다는 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은 덜하다. 그리고 북경한국국제학교에는 논술 수업이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 시간을 통해 <논문 쓰기> 수업을 해보았다. 시작할 때는 과연 이 아이들이 나의 의도대로 따라 와 줄까 걱정 반 기대 반에서 출발을 하였는데 그 결과는 정말 의외로 좋았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고 그것에 쏟는 열정, 모든 과목을 제쳐두고 논문에만 전념하는 친구가 때론 어리석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흥미라는 것을 알고 부러웠다. 관심과 흥미 있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일까? 아직은 전문가가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논문을 썼다. (2005학년도 북경한국국제학교 2학년 이영아)

북경한국국제학교 신문에 소개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함에 잠시나마 빠졌다. 하지만 다음해 한국으로 돌아와 복직하면서 입시에 매달려 수능 문제를 풀고 대학을 안내하면서 그때의 행복함은 잊고 있었다.

<함께여는 국어교육>(68호)에 나의 이 수업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글을 뒤적거리니 가려움에 온몸이 근질거린다. 입시에 정신없이 쫓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감히 <논문 쓰기> 강좌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아이들을 유혹을 했다.

"수시 전형에 포트폴리오로 제출할 수도 있고 논술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주위에 있는 선생님들은 주말마다 고생한다면 나를 위로했지만 사실 나는 그 고생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이 발표하면, 나는 지적하고 아이들은 답변하는 긴장감이 좋았고, 자기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이 아름다웠다.

그 즐거움을 빼앗길까봐 아무도 몰래 나홀로 누렸다. 지난해 우리 학교 대입 성적은 전년도 대비하여 괄목할 정도로 좋았다. 진학 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터라 어깨가 으쓱해진 적도 있었지만, 논문 쓰기에 참여한 한 학생이 쓴 논문 후기를 읽으면서 지난해를 정말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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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레 농업이 나의 꿈이 되어버렸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꿈이라곤 없던 내게, 지루한 나날들을 죽은 듯 보내오던 내게 '목표'가 생긴 것이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내 꿈을 찾았고, 지금은 나만의 방식으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지난 2년보다 더 알차고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9학년도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한시현)

이 학생은 지금 부산대학교 농업경제학과에 다니고 있다. '곡물 무기화에 대비한 실질적 방안 연구'라는 논문을 쓴 학생이다. 이 학생이 자기 길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논문 수업하는 내내 차갑게 지적만 하였는데에도 이 학생은 참고 버티며 끝끝내 논문을 완성하였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의 길을 찾았다. 올해 또 다시 이 강좌를 개설한 것도 이러한 학생이 나오길 바라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수업을 나 못지않게 즐기고 있는 학생이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물론 그냥 공부하는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때도 있지만 논문 쓰기는 모든 과정에 내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창조의 재미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일 하나는 하고 있구나'라는 뿌듯함도 느꼈다. 또, 언젠가부터 꿈이 없어져 특정한 일에 몰두한 기억이 오래되었던 나였지만 이번 논문 쓰기 활동에는 정말로 열정을 쏟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논문 생각을 끊을 수 없었고 힘들고 지쳐서 보기도 싫다가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내 치열한 고민에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것 같다. (2010학년도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김동언)

학교 교육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 길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남과 다른 나만의 값어치를 발견할 때 그 과정은 비록 힘들지라도 행복함을 느낀다. <논문 쓰기> 수업도 그 길을 제시하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나를 유혹하는 매력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숨 쉬며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에 있었다. 지금 시간에 쫓겨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내년에 또 어디선가 아이들과 함께 헤매며 길 찾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태그:#교육, #논문 쓰기, #자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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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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