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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북부지역 첫 소아과 개원의 '임남재 선생'

 

경기도 인천시 시절부터,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이르기까지 꼬박 40년을 부평서초등학교 입구에서 부평구와 계양구, 서구, 강화, 부천 지역의 아이들을 돌보았던 '임소아과(원장 임남재ㆍ73ㆍ사진)'가 지난 8월 14일 마지막 진료를 끝으로 병원문을 닫았다.

 

1971년 8월 1일에 문을 열었으니 꼬박 40년 세월을 지역과 함께 했다. 당시 진료를 받았던 아이들이 이젠 50을 훌쩍 넘겼건만, 14일 마지막 진료를 받던 아이는 이 노신사가 자신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진료한 사실을 알기나 할까?

 

임남재 원장이 병원 문을 닫기로 하면서 임소아과는 이제 역사 속에 남게 됐다. 임소아과는 부평의 첫 소아과였으며, 임 원장이 개원할 당시 부평은 인천시 북구로 지금의 부평ㆍ계양ㆍ서구가 하나의 행정구역인 인구 9만명의 도시였으며, 당시 계양지역은 의사가 한 명도 없어 '무의촌'이라 불렸다.

 

소아과가 하나밖에 없다보니 부평뿐 아니라, 계양ㆍ서구 심지어는 강화, 부천에서도 부평을 찾아왔다. 지금은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예방접종 확대 실시 등 의료혜택 범위가 넓어져 소아질환이 사라졌지만, 그때 만해도 태어나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소아과는 매우 중요한 의료시설이었고, 임남재 원장은 그 시절 단 한 명밖에 없던 의사였다.

 

부평과 계양에서 태어나 불혹을 넘긴 이 중 임소아과를 안 거친 이가 있을까? 70년대를 이곳에서 보냈던 이들은 임소아과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부평 만해도 서초등학교ㆍ동초등학교ㆍ산곡초등학교 등 몇 학교 안 되던 시절, 임 선생은 아파서 병원을 찾던 이 지역 아이들을 두루두루 어루만졌다.

 

"병원 그만둬도 '의사'로써 할 일 있을 것"

 

그래서 임 원장의 퇴임을 바라보는 지역 사람들의 시선에는 각별한 애정이 담겨있다.

 

부평사랑회 홍영복(53) 회장은 "40년 세월이다. 한 세대가 돌고도 남은 세월이니 단순히 병원 하나가 문을 닫는 게 아니다. 임소아과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임 원장님의 그간 노고와 진료에 감사하는 한편 문을 닫게 된 것을 다들 아쉬워한다. 아마도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움은 바로 임 원장님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고 전했다.

 

임 원장은 병원을 그만 두었지만 의사를 그만 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의사로서 할 일이 아직 더 남아있다는 게 임 원장의 생각이고, 그 할일을 찾아나서겠다고 했다.

 

임 원장은 "개원의로서 역할은 이제 정리했다. 이제 여기서(=임소아과)는 진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자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진료행위나 투약 등을 하려면 개원의가 되거나 병원에 몸담고 있어야 하기에, 의료행위에 제한이 있으나 찾아보면 방법이 전혀 없을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임 원장이 내다보는 미래는 바로 의료봉사활동이다. 40년 동안 지역에서 의사로 있으면서 진료를 해준 것도 맞지만, 역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어 임 원장도 살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보답을 의료봉사활동으로 지역에 환원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병원을 그만뒀으니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생각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임 원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동료 의사들도 모아볼 참이란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지역아동센터 같은 곳의 주치의를 자처하겠다는 것이 임 원장의 바람이다.

 

임 원장은 "전보다 소아과를 찾는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살기 나아진 게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의료혜택이 더욱 넓어져야 하듯이, 그에 맞춰 내 몫도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화되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지역아동센터 순회 진료와 건강 상담, 예방의학 강의 같은 활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지역발전 동력"

 

지역의 몇 안 되는 의사여서 그랬겠지만, 임 원장은 40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의사 외에도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펼쳤다. 물론 이 활동들 역시 의사라고 하는 신분에서 출발한 것이다.

 

부평구의사회 회장과 인천의사회 회장을 역임했고, 개원의 인천협의회 회장을 맡아 의료인으로서 외부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소아과 의사로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후원회 설립을 주도하고 후원회장을 8년간 맡아 희귀질환 연구와 가난한 어린이의 진료비 지원에 힘을 보탰다.

 

임 원장의 활동은 훗날 인천적십자회 회장으로 이어졌다. 이 역시 올해 8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임기가 끝나는 와중에도 그는 인도적 차원의 남북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며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이번에 인천시와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 함경지방에 식량지원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밖에도 부평청년회의소 회장을 맡았고, 부평구민주평통자문회의 회장, 부평구구정발전자문위원장, 인천지검 구속적부심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부평의제21 실천협의회 상임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활동만큼이나 다양한 정치인들과 각 계층의 사람들이 임 원장을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힘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임 원장은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라 어느 사회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주장이라 하더라도 지역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의견이라고 믿고 이를 조율할 수 있어야한다. 덮어놓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살아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엄혹했던 70년대 군부독재시절, 이 시대 후배 언론인의 표상이자 진보석학 이신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임 원장의 생각이 꼭 리영희 선생의 뜻과 같을 순 없으나, 임 원장은 진보와 보수 모두 공존하는 질서이기에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고 했다.  

 

임 원장은 "사상과 이념에 따라 진보적 입장도 있고 보수적 입장도 있다. 어떤 입장이라도 지역에 살면 지역 사람이 돼야하고, 나라에 살면 나라사람이 돼야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하듯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 진보와 보수간 갈등이 있지만 둘 다 공동체가 붕괴되기를 바라진 않기에, 지역과 사회의 동량으로 삼자"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임남재, #임소아과의원, #부평, #의사,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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