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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토론이 열리고 있는 모악산 유스호스텔 3층 별관 풍경.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토론이 열리고 있는 모악산 유스호스텔 3층 별관 풍경. ⓒ 조종안

 

한국동인지문학 아카데미가 주관하고, 전라북도·전북문인협회가 후원하는 제8회 전북문학연수회가 28일(토) 오후 2시부터 29일 오전 12까지 전북 김제시 금산사 유스호스텔 3층 별관에서 남녀 문인 1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장대비가 내리는 28일 오후 2시 한국동인지문학 광주본부장 이명란 교수 사회로 시작한 연수회는 김한창 대표 개회사, 이동희 전북문인협회 회장의 축사, 허소라 교수의 격려사에 이어 오후 2시 30분부터 오하근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의 문학 강연(주제: 아마추어 문학의 새로운 지평과 수준 향상을 위한 과제)이 있었다.

 

신인은 보다 엄격한 잣대로 추천해야

 

오하근 교수의 강연에 이어 최영 시인이 진행하는 문학토론이 시작되었는데, 정희수 (사) 한국 녹색문학아카데미 회장은 '지금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란 제하의 주제발표에서 참다운 문학으로서의 고양된 문학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문학을 하는 이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금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란 제하의 주제발표를 하는 정희수 (사) 한국 녹색문학아카데미 회장
‘지금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란 제하의 주제발표를 하는 정희수 (사) 한국 녹색문학아카데미 회장 ⓒ 조종안

시인으로 활동하는 정 회장은 아마추어 작가를 뛰어넘는 프로페셔널한 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저 그림이 나인데, 내가 죽은 후에는 내가 저 그림이 되겠구나!'라는 서산대사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기 진정성을 나타내고 날마다 자기 정리를 해보자는 것.

 

이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적빈을 감내하며 본능과 닿아 있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문인들의 정신자세가 되어야 한다며 '좋은 글은 궁핍에서 나올 수 있다'는 구양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사상 유례없는 문인 양산시대를 맞아 매년 500여 명의 신인이 탄생하고 있는 요즈음 등단하면 청년은 1명이고 9명은 직장에서 은퇴한 분들이라며 8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전북 문인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는 문예지를 창간하고자 하는 이의 능력을 따져 출판 허가를 내주고, 운영상태 등을 수시로 파악하여 공시하는 제도. 둘째, 일정 기간 수준급의 문학작품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편집하여 출판한 문예지에 신인 추천권을 주고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추천위원회를 조직하여 투명하게 추천하는 방법. 셋째, 신인에게 연수 등을 통해 필력을 육성하도록 지원하며, 1년에 수준급의 작품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는 신인은 일정기한 동안 기회를 주어 연수를 받게 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정 회장은 후진을 양성하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면서 신인 등단은 더욱 엄격한 잣대로 필력과 인성, 장래성을 보고 추천했으면 좋겠다며 자신도 별로 뛰어나지 못하지만, 함께 글 쓰는 한 동료 또는 후배의 고언이라 여기고 잠시 귀 기울여주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함께 가는 길의 아름다움'

 

 ‘함께 가는 길의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반론을 펼치는 정군수 전주문인협회 회장
‘함께 가는 길의 아름다움’이란 주제로 반론을 펼치는 정군수 전주문인협회 회장 ⓒ 조종안

반론에 나선 정군수 시인(전주문협 회장)은 "문학은 개인적인 실천이나 활동을 넘어 상대방과 의사를 소통하는 행위"라며 '함께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화두로 제시했다.

 

정 시인은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남이 겪은 일을 자신의 경험으로 끌어들여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 활동은 작가와 독자와의 대화이기 때문이라는 것.

 

발제자가 '지금 한국 문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21세기 한국문학의 유례없는 문인 양산의 시대를 걱정하면서 통계수치를 통해 낱낱이 예를 들며 풍요 속의 빈곤을 우려하고 있는데,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온몸으로 걱정하는 발제자의 말을 부정하려니까 함께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좀 민망하지만, 반대 토론자이기 때문에 나름의 반론을 제시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 시인은 먼저 '프로문학'과 '아마추어 문학' 한계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만약 어느 문인에게 "당신은 아마추어 작가입니까? 프로작가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프로작가입니다"라고 떳떳하게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정 시인은 "제가 질문을 받았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선뜻 '프로작가'라고 대답을 못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누가 '당신은 아마추어 작가시군요!'라고 한다면 분기탱천은 못해도 죽을 맛일 것이다"라고 해서 조용하던 토론장에 웃음이 터지기도.  

  

정 시인은 독자들의 시각을 바로잡아줘야 할 문인들조차 '프로문학'이니 '아마추어 문학'이니 하는 국적도 없이 생겨난 조어들을 유행어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데에부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굳이 '프로문학'과 '아마추어문학'을 고집한다면, 자신은 우리 이름인 '갈대 문학'이나 '억새 문학'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갈대는 물가에 살고 억새는 산기슭에 사는 것이 보통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어느날 전북 순창에 있는 적성강을 걷다가 갈대와 억새가 함께 뿌리를 얽고 살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면서 갈대꽃과 억새꽃을 구분하지 못하고, 갈대를 억새라 하고, 억새를 갈대라 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게 바로 우리 삶이구나!" 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정 시인은 끝으로 글쓰기가 좀 서툴다 하여, 표현이 좀 부족하다 하여, 그리고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이 등단한 동인지를 깎아내리고 아마추어 작가로 매도하는 일은 문인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의 자세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청(靑)은 람(藍)에서 취하였지만, 람보다 뛰어나다'

 

  낭랑한 목소리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소개하며 긍정토론을 벌이는 조미애 전북풍물시동인 회장
낭랑한 목소리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소개하며 긍정토론을 벌이는 조미애 전북풍물시동인 회장 ⓒ 조종안

긍정 토론에 나선 조미애 전북풍물시동인 회장은 사실 프로니 아마추어니 하는 것을 논하는 자체가 공허한 일이라며, 한 편의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부터 그는 프로라고 정의를 내렸다.

 

조 회장은 글 아닌 글을 쓰면서도 문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드러내려 하는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이라며 '프로'와 '아마추어 문학'의 개념을 정리한 오하근 교수의 강연문 일부를 떠올렸다. 

 

"'문학'은 문(글)에 대한 학문이 아니고 시·소설 등 창작을 가리킨다··. 이런 창작물에 '학'을 붙인 것은 그것이 고도의 전문적인 것을 암시하는 지도 모른다··. '학'은 전문인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아마추어 문학'이란 원래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아마추어'가 '솜씨 서툰 사람'을 뜻한다면 문학도 수용할 것이다. '그는 아마추어 문인이다'는 말은 '아직 솜씨가 서툰 문인'이라기보다 '등단하지 않는 문인'을 가리킬 것이다. 등단하면 이미 프로가 되는 것이 문단이다. 그러므로 '등단했지만, 아직 글이 서툰 문인'을 가리키는 용어를 조어한다면 '아마추어적 문인'으로 '-적'을 부가시켜야 할 것이다."

 

조 회장은 '등단하면 이미 프로가 되는 것이 문단이다'는 대목을 주목한다며 등단은 했으되 글이 서툴고 자질도 부족한 문인들이 성찰하지 못하고 문인임을 더욱 내세움으로써 '펜이 칼보다 더 무섭다'를 실천하려는 진정한 문인들을 욕되게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문예지가 경영난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문단 장사를 하는 것이나, 문인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사람을 문인으로 만드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강물이 흐르며 정화되듯 시간에 의지하고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허무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조 회장은 전북 문단의 문제는 곧 한국 문단의 문제라면서, 전북문인협회에 등록된 회원이 760명 정도인데, 670통 내외 우편물이 회원에게 발송되고 있으며 회원의 37% 정도가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문예지에서 양산한 문인들로 발생한 '아마추어 문학'에 대한 우려는 오래 전부터 한국 문단의 심각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 회장은 '청(靑)은 람(藍)에서 취하였지만, 람보다 뛰어나다'는 순자(荀子)의 근학(勤學)편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문인들이여! 청이 람에서 나왔으되 람보다 나음이니, 한 편의 글로 이 땅에 우뚝 서서 역사에 오직 그대의 글을 남기라!"라는 권언으로 토론을 마쳤다.  

 

행사를 주최·주관한 한국동인지문학아카데미 김한창 대표는 전북 문학의 수준 향상을 위한 토론회를 가져오면서 문학을 새로운 각도로 탐색하고, 탐구하여 외면할 수 없는 난제를 함께 극복하고자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북 임실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 대표는 우리 자신의 문학적 소치와 자양분을 얻어내고자 고명하신 전문가들을 모셨다며 고르지 못한 일기에도 성황을 이루어 토론에 직접 참여하고 경청해준 회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인지문학#제8회 전북문학연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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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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