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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행>
▲ 책겉그림 <뜨거운 여행>
ⓒ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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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취를 따라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오래 전에 패어 희미해진 바퀴 자국과 한때 살았었음을 강변하는 낡은 흑백 사진 몇 장을 증거물 삼아 누군가의 자취를 좇는다는 것은, 길을 새로 내는 것보다 어렵다. 좇는 자는 먼저 지나간 사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먼저 지나간 자는 자유롭고, 좇는 자는 그 흔적에 갇혀야 하기 때문이다."(77쪽)

이는 프레시안의 시사만화가 손문상과 젊은 박세열 기자가 함께 쓴 <뜨거운 여행>에 나오는 한 토막 글귀다. 코르도바의 체 게바라 박물관 앞에서 읊조린 뜨거운 고백록이기도 하다. 그것은 둘만이 하는 고백이 아니다. 이 땅에 혁명자로 산 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자들의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 둘은 체 게바라의 출생지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쿠바에 이르는 70일간의 남미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체 게바라가 의대재학 시절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배낭여행하며 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따른 여행길이기도 하다.

첫 출발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들은 뜻밖에 귀한 선물 하나를 얻는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온 모랄레스 콜롬비아 대통령을 바로 앞에서 한 컷 찍을 수 있는 행운이다. 그 모랄레스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톡톡히 본 정치인이라 한다. 그들이 선동하는 '반미'란 체 게바라가 미국을 상대로 쿠바에서 이뤄낸 혁명과 맞아떨어지는 이유란다.

칠레의 로스앙렐레스 시내. 그곳은 젊은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가 그들의 애마 포데로사 오토바이와 결별한 이후 첫 '무전여행'을 시작한 곳. 손문상과 박세열도 그곳의 소방서를 찾아가 며칠을 묵는다. 놀랍게도 체 게바라, 그러니까 젊은 날의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봤다는 레예스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런데 그가 겨우 예순 살이라니. 아마도 그 여행을 즐겁게 해 준 할아버지였지 싶다.

칠레의 사막 끝과 페루 사막의 시작점을 알리는 국경 도시 아리카. 칠레에 미국 문화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면 페루는 유럽의 향취가 배어있는 곳이라 한다. 그 중간에 낀 아리카는 그만큼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헌데 그곳 너머의 페루는 미국과 맺은 FTA로 몸살을 앓고 있고, 오성 호텔을 위해 마추픽추를 팔아먹은 '알란 가르시아 정부'를 상대로 각종 현수막이 나부껴 있다 한다. 젊은 에르네스토였다면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취했을까?

젊은 에르네스토가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로 성장한 지점은 아마존이라 한다. 그들 두 사람도 그 게바라를 뒤좇기 위해 안데스를 넘어 아마존의 푸칼파에 이르고, 그곳에서 산 파블로 한센인 마을로 들어서려 한다. 그런데 꽁 대신 닭이라고 근처의 수영장 딸린 숙소에 몸을 눕혀야만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통제돼 있는 까닭이었다. 대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는 아마존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으로 자족해야 했다.

카리브 해의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있는 환상의 섬 쿠바. 그들이 이번 여행의 종착지로 삼은 곳이다. 체 게바라가 피텔 카스트로와 손잡고 혁명을 완수한 곳인 까닭이다. 그들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혁명광장'을 비롯하여 체 게바라가 혁명을 완수한 '산타클라라' 도시, 그리고 피델의 게릴라 산채가 있는 시에라 마에스트에 오른다. 그곳에서 체 게바라가 썼던 나무로 된 수술대도 만져본다. 모두가 체 게바라의 혁명 동선을 따른 셈이다.

"이 여행을 마치고 2008년 4월,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수염은 5센티미터쯤 자라 있었다. 분명한 변화였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변화가 무색할 정도로 한국은 많이 변해 있었다. 며칠 뒤 한미 쇠고기 협정이 타결됐고,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손 선배와 나는 그 해 여름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 인파 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다. 그때, 그 순간, 어디쯤에서 손 선배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1월에 시작한 남미 여행이 이제야 끝난 것 같다'고."(에필로그)

여행은 장소를 따라 움직이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묘미는 그곳에서 얻는 성찰에 있다. 이들의 남미 여행도 혁명 박물관에 박제된 체 게바라를 찾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체 게바라가 실현한 혁명의 완성들을 우리시대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것을 성찰하는 게 진정한 묘미였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 땅에선 한미쇠고기 협정으로 인한 촛불 시위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쪼록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두 사람이 체 게바라의 추억과 꿈과 혁명을 완성한 남미 곳곳을 따라 오늘 우리 시대에는 무엇을 혁명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만 우리사회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는 체 게바라식만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칠레에서 만난 한 젊은이가 이야기한 바 있듯이, 하나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다양한 방식들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여행 - 체 게바라로 난 길, 시사만화가 손문상과 박세열 기자의 좌충우돌 70여 일 남미 여행기

박세열.손문상 지음, 텍스트(2010)


태그:#체 게바라, #손문상 , #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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