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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국세청장이 퇴임하던 지난해 1월 19일. 이날 안원구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국세청 감찰팀 직원들에 의해 11시간 동안 붙잡혀 있었다. 비슷한 시각 C건설에도 감찰팀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C건설은 안 국장의 부인 홍혜경씨가 운영하는 가인갤러리에서 25억원어치의 미술품을 구입한 업체였다.

국세청 감찰팀 직원들이 C건설에 요구한 것은 '미술품 강매 확인서'였다. 이들은 안 국장이 '국세청 국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사도록 C건설에 강요했다고 보고 관련서류들의 제출을 요구했다.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 오마이뉴스
그런데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여러 건의 녹취록에 따르면, 국세청은 이렇게 안 국장의 비위사실을 잡아내기 위해 '특별세무조사'나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민간기업들을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당시 안 국장이 국세청으로부터 사퇴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헤아린다면 국세청이 내부 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당하게 민간기업들에 조세권을 행사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안 국장도 지난해 주호영 특임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세청 감찰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특별세무조사 운운하며 압박을 가하며 거짓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국세청 감찰라인에 있었던 국세청의 한 현직간부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안 전 국장의 미술품 강매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했을 뿐이지 미술품 강매를 인정하라고 강요하거나 특별세무조사, 검찰 수사 등을 언급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편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들에는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안 전 국장,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 민간기업 사장들이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국세청 감찰팀의 목표는 안 국장이 사퇴하는 것"

국세청은 '청장 직속 특별감찰팀'을 만들었던 한상률 청장 시절부터 안 전 국장의 주변을 내사했다. 이것은 안 전 국장을 사퇴시키기 위한 은밀한 조치였다. 내사 대상은 안 전 국장의 가족과 사업하는 친구, 부인 홍씨가 운영하는 갤러리 등이었다.

국세청 감찰팀의 '활동'은 한 청장의 사퇴 이후 본격화돼 안 전 국장이 구속되기 전인 지난해 9월까지 계속됐다. 감찰팀은 안 전 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와 거래한 5개 업체에 집중했다. 특히 가인갤러리로부터 조형물(25억원)과 이응로 화백의 그림 한 점(2800만원)을 구입했던 C건설이 주요 표적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C건설의 배아무개 회장은 홍혜경 대표에게 "국세청 감찰직원이 찾아와 '안 국장의 부인이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그림을 강매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써 달라고 했다"며 "저번에는 서울지방청에서 직원이 나와 조사를 했는데 이번 건은 저번 건과 다르게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미술품을 강매해서 샀다고) 인정하라는 거죠. 인정을 안 하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는 거고. 자기들이 조사하다가 안 되면 (검찰에) 넘길 수도 있고. 그렇게 압박을 하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죠."

배 회장은 또 "정의도 좋은데 나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받으면 안 된다"며 "우리같이 사업하는 사람이 국가하고 싸운다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일"이라고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배 회장은 이어 "(국세청 감찰팀의) 목적은 안 국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것 같다"며 "우리가 보기에 다른 '어떤 힘'이 있으니까 안 국장이 지금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고 말했다.

배○○ 회장 "어쨌든 국가기관에서 하는 것을 기업이 견딜 수 있겠어요. 못 견디지."
홍혜경 대표 "못 견디시면 허위사실을 얘기하실 건가요? 그렇게 해도 문제죠."
배○○ 회장 "휴~(한숨). 지금 안 국장이 던지고 있는 승부수(사퇴 거부)가 주변과 본인을 위해 맞는 것인지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또한 녹취록에 따르면, C건설의 박아무개 사장도 "(국세청 감찰팀의 조사는) 안원구 국장한테 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이라며 "(미술품을) 구입하게 된 된 동기나 배경을 하루종일 강도높게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박 사장은 "혹시나 그런 것(미술품을 강매한 일)이 있다면 (사실확인서를) 써내라는 건데, 우리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것인데 그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녹취록의 일부 대목이다.

"자기들(감찰팀)이 생각했던 부분과 불일치하니까 우리를 설득하는 부분이 있었죠. 그런데 '우리는 아니다'라고 얘기했어요. 다른 분들도 조사한다는 뉘앙스를 주니까 다른 업체들도 우리처럼 집요하게 할 것 같아요. 집요하게 하고 있어 많은 분들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이제 피곤할 것 같으니까 마무리될 수 있도록 '단도리'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
안원구 국세청 전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 ⓒ 남소연

"'회사가 공중분해되지 않겠느냐?' 등 갖은 협박을 했다"

또한 안 전 국장 부부와 가까운 김아무개 B시행사(건설업) 사장도 국세청 감찰팀의 '압박'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 회사 장부 10년치를 (국세청) 감찰에서 다 가지고 갔다"며 "(심지어) 퇴직한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제 행적을 조사하고 다닌다"고 호소했다. 역시 녹취록의 관련 대화 내용이다.

김△△ 사장 "제가 잘못한 것만 처벌받으면 되는데 법인의 10년 전 걸 다 뒤지고 있어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법인 있겠어요?"
홍혜경 대표 "안 국장의 비리를 만들어서 얘기해 달라는 거죠?"
김△△ 사장 "예. 뻔한 거 아니겠어요?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안 국장이 도움을 줬고, 그것에 대한 대가로 내가 그림을 사주고, A회사를 인수해주고….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할 것 아닙니까?"

김 사장은 이어 "저한테 '회사가 공중분해되지 않겠느냐, 대충 얘기를 해주면 당신 회사를 잘 봐주겠다' 등 갖은 협박을 했다"며 "작년(2008년) 연말에 감찰이 와서 4시간 동안 조사했는데 우리 상속세를 조사했던 사람을 데리고 와서 반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국세청 감찰팀은 "안 국장 부인에게서 그림을 구입한 건 나중에라도 세무조사와 관련해 안 국장의 덕을 보려고 그냥 사준 것이라는 정도의 확인서를 써 달라"며 "확인서만 쓰면 앞으로 세무조사 때 괴롭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특히 김 사장은 "압박 받는 건 허병익 차장 시절에는 오히려 조용했고 이현동 (국세청 차장) 시절에는 파 뒤지고 했다"며 "사실은 제가 죽을 것 같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다음은 녹취록의 관련 대목이다.

"온 데 다 뒤져가지고 나하고 관계된 사람들 다 영창에 집어넣는다고 겁주고…. 이게 검찰까지 간다고 보고 모든 서류를 챙겨놓으려고 하는 거예요. 어느 누구든 국가기관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 구석으로 몰아세워서 밀어붙이면 견뎌내는 사람이 없어요. 그쪽(감찰팀)에서는 거짓이라도 받아내고 싶을 테니까 그렇게 조사하잖아요. 국세청이 아니라 검찰에서 불러가지고 조사하면 더 겁나잖아요."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 ⓒ 뉴시스
흥미로운 사실은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이 취임하고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으로 승진한 이후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감찰팀의 압박이 더욱 거세졌다는 점이다. 다음은 녹취록에서 김 사장이 홍씨에게 압박감을 토로한 대목이다.

"올해 초에도 국세청에서 나와 네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말할 게 있어야 하지요. 그때 다 충분히 설명해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새로 (백용호) 국세청장이 온 후 또다시 시작한 겁니다. 이번에는 더 심하게 하는 것 같아요. 청장이 바뀌고 나서 더해요. 최근 한 달은 말도 못하게 집요해요. 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미 시나리오를 다 짜놨더군요."

특히 김 사장은 "이건은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아니다"며 "국세청, 청와대, 검찰의 암묵적인 동의 없이 진행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홍승면)는 안 전 국장이 미술품을 강매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는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미술품을 산 민간기업들이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샀거나, 미술품을 팔아 얻은 이익은 안 전 국장이 아닌 부인에게 귀속된다는 것 등이 무죄 판결의 이유였다. 

한편 안 전 국장을 표적감찰하고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현동 국세청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는 26일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안 전 국장의 증인 채택을 계속 거부하고 있어 '표적감찰-사퇴 압박' 의혹이 제대로 파헤쳐질지 의문이다.  

"억울하더라도 피해 보는 사업자 위해 사퇴해 달라"
다음은 지난해 안원구 전 국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주호영 특임장관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동향(대구) 출신인 주 장관은 2008년 초 안 전 국장을 대통령직 인수위 파견자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ㅇ불법적 행태 자행(직위 이용한 강매라는 확인서 요구 2009.1∼현재)

국세청 감찰에서 배우자가 운영하는 화랑의 거의 모든 거래처들을 찾아가 안원구 국장이 직위를 이용하여 그림을 강매하였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고 강요함.

- 국세청 직원들은 거래처 사장들에게 "확인서를 써주지 않으면 특별세무조사를 하고 다른 문제점을 가지고 회사를 공중분해시키겠다"는 협박까지 하였음. 그러나 국세청 직원들은 확인서를 받는 데 실패하였음. 거래처 사장들은 없는 사실을 있다고 거짓으로 확인서를 써줄 수 없다며 협박을 견뎌내고 있는 것임.

- 국세청 감찰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특별세무조사를 운운하며 압박을 가하여 거짓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임.

- 국세청 감찰은 거래처로부터 확인서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협박과 회유를 자행하고 있음. 9개월이 넘게 협박과 회유가 계속되자 거래처 사장들이 저의 부인에게 "국가가 나서서 나가라고 하는데 억울하더라도 죄없이 피해 보는 사업자를 위해 사퇴를 해줄 수는 없느냐"고 하소연을 해옴.

<월간조선> 미보도, "국세청 국장 몰아내기 위해 민간기업 협박한 저승사자들"
국세청이 민간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을 때인 지난해 9월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는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국세청의 탈법행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다. 부제에는 '현직 국세청 국장 몰아내기 위해 민간기업 집요하게 협박'이라는 문구가 달렸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도되지 않은 이 기사에서 백 기자는 민간기업들을 압박한 국세청 감찰팀 직원들을 "저승사자"에 비유하며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할 국세청이 내부 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기업체에 위력을 가한다면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백 기자는 "국세청이 미국 파견 대상자인 안 국장을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무조건 사퇴만 종용하고 있으며, 안 국장 스스로 사퇴하지 않자 민간기업을 협박해 몰아내려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며 "이 일에 관여된 조직은 국세청 본청뿐만 아니라 서울지방청까지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 기자는 "특히 문제 삼을 대목은 국세청이 민간기업을 협박한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국세청은 <월간조선> 보도를 막기 위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물론이고 현직 세무공무원인 백 기자의 고향 선배까지 동원했다. 백 기자는 국세청의 한 과장이 자신을 협박한 발언을 이렇게 전했다.

"<월간조선>에 기사가 나가면 안 국장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 우리 내부의 일이니 우리에게 맡겨 달라. 기사가 나가면 <월간조선>에도 좋을 게 없다."

국세청의 '저승사자'들은 안 전 국장을 국세청에서 몰아내기 위해 안씨 부인 회사와 거래한 민간기업만 협박한 것이 아니라 이를 보도하려는 언론사와 기자까지 '협박'한 것이다.


#안원구#표적감찰#이현동#허병익#백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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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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