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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캐슬린 스티븐스는 주한미국대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오늘날 한반도 정세와 한미동맹의 굴절되고 왜곡된 현실을 새삼 떠올렸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모든 책임을 북한과 이란에게 떠넘기면서 궁색한 변명과 자기 방어 그리고 일방주의로 일관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스 대사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필자의 반박 역시 대사 개인이 아닌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임을 밝혀둔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석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심심치 않게 표출하곤 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그 누구보다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고, 또 힘을 보탠 사람들도 적지 않다.

 

파국의 책임이 북한에게만 있는가?

 

스티븐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것(9·19 공동성명과 그 이후의 진전)을 토대로 상황을 더 진전시키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는데, "평양은 대화보다는 미사일과 핵실험 같은 도발행위로 반응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작년 봄 대북 강경기조로 돌아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부연하자면,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후인 2009년 스티븐 보즈워스를 대북특사로 파견하기로 하고 평양에 이를 제안했는데,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4월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작년 5월 초 국무부를 방문해 한반도 정책 담당 관리를 만났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취임 한 달 만에 대북특사를 보내기로 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큰 결단이었는데, 북한의 행동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보다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이해를 요한다. 미국이 대북 특사 파견을 타진한 2009년 2월 말-3월 초는 북한이 강력히 반발했던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를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은 유엔군(미군)과의 장성급 회담을 통해 이 훈련의 취소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일축했다. 더구나 이때를 전후해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군 수뇌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의 투입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북한 사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북한이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에 임한 전례가 없고, 또 한미 양국이 거론해온 '북한 급변사태론' 및 한미연합군 투입 계획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 왔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했다'는 실망감을 토로하기 전에 미국 스스로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문해야 했던 것이다.

 

미국이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로 규정한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2호' 발사에도 과잉대응한 것이 아닌지 반문해보기 바란다. 미국의 정보기관도 인정한 것처럼, 북한이 쏘아올린 것은 분명 소형 위성을 지구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한 '우주발사체'였다. 물론 이는 얼마든지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다. 그러나 위성은 어디까지나 위성이다. 미국이 보다 지혜로웠다면, 북한의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 유감을 표명하면서 대북 협상에 미사일 문제도 포함시켰어야 했다. 북한 역시 미사일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 역시 북한이 로켓을 쏘지 않기를 바랐고, 또 그래야 한다는 글을 여러 차례에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나로호' 사례가 보여주듯 많은 나라들은 위성 발사를 과학기술 선진화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1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재추대하기로 했고, 또한 '2012년 강성대국론'을 선포한 북한으로서는 위성 발사의 '내부적 목적'이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은 북한의 위성 발사를 역지사지의 관점이 아니라, '미국의 관심 끌기'라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용'이라든지,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는 식의 일방적 해석에 매몰돼, 이 사안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했다. 스티븐스 대사도 잘 알고 있듯이 어떤 나라가 위성을 발사했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란이 두 달전 위성을 발사했을 때에도, 미국은 외교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서 자제했다.

 

'정당한 주권 행사가 유린되었다'고 판단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말았고, 미국은 고강도의 대북제재가 담긴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로 맞섰다. 북한의 행동에도 아쉽고 비판받아야 할 점이 분명 있었지만, 이렇게 상황 악화를 초래한 책임에는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한 미국의 과잉대응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대화를 거부하는가?

 

 

오늘날의 상황도 대단히 안타깝다. 스티븐스 대사는 "우리는 제재를 위한 제재, 처벌을 위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선택해야 한다. 자국 주민들과 동북아시아의 상황, 미래를 위해 북한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선택이라는 것은, 2005년에 (9·19공동성명에서) 했던 약속과 대화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필자는 이 말을 고스란히 미국에게 돌려주고 싶다. 오늘날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천안함 사태에 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도 6자회담을 빨리 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에게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었던 한미 양국은 오히려 6자회담 재개의 조건을 내걸면서 사실상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내건 조건에는 온도 차이가 있지만,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행동과 비핵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46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사태는 분명 비극적인 일이었고, 북한의 소행이 맞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북한도 발뺌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 제시와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한미 양국이 주도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의혹과 의문점이 제기된 상태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관계를 재설정(reset)했다고 자부한, 그리고 7명의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해 조사를 벌인 러시아조차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에 강한 의구심을 밝힌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미 양국은 재조사를 촉구하는 국내외 일각의 요구를 묵살하고 무력시위와 제재에만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설득하고 확인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현실도 어처구니없는 태도이다. 미국에게 반문하고 싶다. 6자회담을 열기 위해 북한이 보여주어야 할 '비핵화 의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재개를 의미하고 북한이 그럴 의사가 있다면, 미국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계획인 2·13 합의와 10·3 합의에 명시된 약속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할 의사가 있는가? 6자회담을 열지 않고서도 장외(場外)에도 도대체 이러한 합의를 어떻게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외교를 대외정책의 선봉(vanguard)"으로 삼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의 다짐은 어디로 가고, 또 다시 일방주의로 회귀하려고 하는가?

 

한미동맹 최선? 그런데 냉전으로!

 

스티븐스 대사는 또한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폭넓고 심화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이 강화되었다는 것에는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배경과 목적은 큰 걱정거리이다. 이명박-오바마 시대에 한미동맹이 강화된 결정적 배경은 '공동의 적'인 북한을 함께 비난하고 대북강경책에 몰두해온 데에 있다.

 

전형적인 '냉전형' 동맹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냉전은 끝났다"고 했는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또 다시 냉전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미중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동북아 신냉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김대중-클린턴 때에는 이렇지 않았다. 대북 억제는 튼튼히 하면서도 '한반도 탈냉전'을 향해 함께 손잡고자 했다. 이를 일시에 뒤집은 부시 행정부도 말기에는 달라졌다. 2005년 이후 노무현-부시는 한미동맹의 목적이 한반도의 불안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그런데 부시의 일방주의를 강력히 비난했고, "냉전은 끝났다"고 했던 오바마 행정부 들어, 한미동맹의 어느 문서에서도 '평화체제'나 '탈냉전'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미래지향성은 상실하고, 냉전 시대로 회귀했다는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란 문제에 대한 정책과 태도도 극히 유감이다. 비전문가인 필자도 이란 핵문제의 민감성과 파장을 알고 있고, 이에 따라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간절히 염원한다. 그러나 오늘날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는 "최고위급 외교를 통한 해결"이라는 공언은 온데간데없고, 이란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만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한국 등 일부 국가들에게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를 넘어선 독자적인 제재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안보리 결의안 1929호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유엔에도 제재 이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미국의 요구는 이를 넘어선 제재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다.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줄서기를 강요한 부시 행정부 때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여기서 미국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란 제재를 통해 정말 핵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가?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맹방인 터키조차도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확대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제재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북핵 문제가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란에 대해서도 1929호 이전에도 3차례의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있었고 미국은 독자적인 제재도 해왔다. 그런데 이란 핵문제가 해결되고 있는가? 이번에도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에 실패한다면, 그 다음 미국이 꺼내들 카드는 무엇인가?

 

분명 미국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 5월 합의된 이란-브라질-터키 사이의 '3자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불충한 것이 있었더라도 이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유엔 안보리 제재와 독자적인 제재를 부과한 데 이어,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도 추가적인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고, 일방주의가 아닌 '국제협력'을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이란은 최근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취해야 할 선택은 자명한 것 아니겠는가? 한국 등 동맹·우방국들을 상대로 이란 제재와 압박에 기울이고 있는 외교력을 이란과의 대화와 협상으로 전환한다면,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는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태그:#스티븐스, #오바마, #북한, #이란,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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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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