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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두 주인공, 이승기와 신민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두 주인공, 이승기와 신민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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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손'과 '마이너스의 손'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여기 한 사람, 아니 실은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처럼 붙어 다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홍자매(홍정은·홍미란)'가 그들이다. <쾌걸춘향> <쾌도홍길동> <마이걸>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등 쓰는 작품마다 화제를 일으키며 방송가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인 홍자매. 이들을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대한민국 대표 CF퀸 신민아가 있다. 아름다운 외모와 신이 내린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인 이 매력 넘치는 여배우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대중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될 만한 대표작 하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드라마에서는 그나마 <때려>나 <마왕>같은,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나름의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영화로 눈길을 돌리면 그마저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만다. <10억>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키친> <고고70> <무림여대생>. <야수와 미녀> 등 최근 몇 년간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의 대부분이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손을 대기만 하면 무엇이든 화제작으로 만들어버리는 홍자매와 손을 대는 족족 흥행 실패작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민아.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으니, 바로 전작 <찬란한 유산>을 통해 무려 47%라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만끽한 이승기다. 홍자매가 극본을 쓰고 신민아, 이승기가 주연을 맡은 SBS 새 수목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이하 <여친구>)가 흥미로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구미호에 대한 기존 통념 배제한 <여친구>

<여친구>는 구미호에 대한 기종 통념을 배제했다.
 <여친구>는 구미호에 대한 기종 통념을 배제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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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부모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차대웅(이승기 분)은 부동산 부자인 할아버지의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며 배우를 꿈꾸는 철딱서니 없는 대학생이다. 그런 그를 이제 '인간' 만들겠다며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 보내 다시 대입을 치르게 하려는 할아버지의 계획은 대웅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도망치며 수포로 끝나고, 대웅은 시골길을 헤매다 한 스님을 만나 외딴 절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 절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었으니, 바로 삼신할머니가 족자 속 그림에 가둔 구미호(신민아 분)가 있었던 것. 당연한 수순으로 대웅은 구미호를 그림 속에서 꺼내주게 되고, 자신을 구해준 대웅이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하자 구미호는 자신의 능력의 원천인 구슬을 대웅의 몸에 넣어줘 그를 살리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구미호는 대웅으로부터 구슬을 돌려받을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기로 한다.

홍자매는 극의 초반에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말한다. 구미호가 사람의 간을 파먹는다는 통설은 사실 구미호의 미모를 시기한 이들이 지어낸 허튼소리에 불과하고, 실제 구미호는 인간들과 함께 인간세계에서 살고 싶어 하는 귀엽고 어여쁜 여우일 뿐이라고. 그리하여 지금까지 <전설의 고향> 등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한(恨)의 정서'로 대변되는 구미호는 <여친구>엔 없다.

구미호는 무려 500년 동안이나 그림 안에 갇혀 있었지만 그로 인해 삼신할머니에게 원한을 품는다거나, 복수를 꿈꾼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그동안 못 먹은 쇠고기를 배불리 먹으면 그만인, 대웅과 흡사한 수준의 철딱서니다. 철저한 러블리, 큐티 스타일의 신개념 구미호. 이는 홍자매가 전작 <미남이시네요>에서 아이돌의 판타지만 빌려와 핑크빛 아이돌 로맨스를 그린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을 통해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홍자매'식 패턴

철딱서니 없는 대웅을 '인간' 만들겠다며 벼르고 있는 할아버지.
 철딱서니 없는 대웅을 '인간' 만들겠다며 벼르고 있는 할아버지.
ⓒ SBS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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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이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점 역시 홍자매의 전작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 홍자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 부모가 살아있지 않거나, 존재한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남은 고아였고, 황태경은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일찍부터 독립해야만 했다. <마이걸>에서 주유린은 아버지가 있지만 애물단지로 딸에게 도움이 안 되며, 설공찬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이처럼 홍자매의 작품 속에서 대개의 남녀 주인공들은 부모가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하며, 그렇게 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딘가 결여된, 완전하지 않은 인간으로 자라난다. <여친구>에서의 대웅 역시 조실부모한 처지가 딱해 할아버지가 오냐오냐하며 키운 탓에 제대로 된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친구들 물주 노릇이나 하는 철딱서니일 뿐이다.

구미호는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날고기를 먹지 않고, 대웅이 인간도 아닌 자신과 친구가 되어주며 자신에게 '미호'라는 이름을 지어주자 뛸 듯이 기뻐한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구미호와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대웅의 만남은 어딘가 결여된 상태의 두 남녀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키워가며 그 사랑으로 인해 비로소 각자가 하나의 성숙한 주체로 성장한다는 홍자매의 작법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다.

이는 홍자매가 다른 스타일에 대한 도전이나 변신을 꾀하기보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홍자매의 유쾌하고 상큼, 발랄한 이야기는 <쾌걸춘향>부터 <미남이시네요>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시청자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여친구>는 신민아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을까?

바로 옆 채널에선 <제빵왕 김탁구>가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목드라마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상황. 그러나 홍자매에게 이런 일은 이미 익숙하다. <미남이시네요>는 <아이리스>를 상대했고, <쾌도 홍길동>은 <뉴하트>를 상대했다. 절대적인 1인자와의 싸움에서도 기죽지 않고 시청자를 끌어 모아 마니아층을 형성하여 언제나 10% 중반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홍자매의 전공이다.

강력한 경쟁상대로 인해, 홍자매와 신민아, 그리고 이승기의 만남은 이미 뚜껑을 열어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는 승패가 결정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에도 신민아는 흥행 성공의 패를 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신혜가 그랬고, 한예슬이 그랬으며, 이다해가 그랬듯, 홍자매 작품 속 여주인공들은 시청률과 무관하게 언제나 대중의 머릿속에 그들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이번에는, 신민아의 차례다.


태그:#구미호, #홍자매, #신민아, #이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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