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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괴롭다. 우리가 왜 굶어야 되는데!"

지난 8일 방송된 <KBS>의 주말 '야생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는 실내에서 잠을 자기 위해 저녁을 먹지 못하고 배고픔에 울부짖는 '돼랑이' 강호동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평소 즐기던 제육볶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먹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그의 상태를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육봉 강호동 선생'으로 묘사한 자막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보는 사람은 즐겁겠지만 당사자에게 지독한 배고픔은 곧 공포가 되기도 한다. '배가 비어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밥 먹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강호동을 보니 문득 책 한 권이 떠오른다.

'야생 버라이어티'에 걸맞는 '주워먹기' 학습서랄까. '잡초를 요리하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은 들판, 숲과 늪, 길가에 자라는 여러 종류의 식용 식물들과 그 요리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48년 역사를 가진 '잡초 요리책'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 시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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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펴면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이 가진 의외로 장구한 역사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의 탄생은 극심한 가뭄이 기승을 부리던 193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인 유엘 기번스는 그 시기를 뉴멕시코 산간지역에서 보내며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야생 먹을거리를 찾는 방법을 배웠고, 야생 식물의 채취와 요리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모아 1962년에 이 책을 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책에 실린 정보들이 지난 40여 년간 독자들에 의해 충분히 검증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은 출간 시기가 1960년대 자연으로 회귀를 꿈꿨던 미국의 히피 운동과 맞물리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자연 속의 생활을 꿈꿨던 숱한 사람들이 이 책에 나와 있는 식물 구별 요령과 요리법을 따랐다.

자작나무로 맥주를 만들 수 있으며 그 맛이 의외로 괜찮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의 내용을 활자 그대로 믿어도 좋다는 얘기다. 유엘 기번스는 "자작나무 잔가지와 수액, 꿀, 식빵 한 조각과 약간의 이스트로 일주일 만에 맥주를 만들 수 있다"며 자작나무 맥주의 요리법을 소개하면서 "이 음료를 어린이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고 진지하게 덧붙이고 있다.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에는 자작나무 맥주 이외에도 도토리 케이크, 딸기 술, 뚱딴지 파이, 창포 샐러드, 양파 크림스프, 호두 피클 등의 창의적인 요리들이 등장한다. 요리의 핵심 재료인 식물에 대한 충실한 묘사와 함께 각각의 요리법들이 매우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조금 길고 어렵다 싶은 요리에는 삽화가 반드시 곁들여져 있다.

족두리풀 위장약, 치커리 안약 만들기

몇몇 요리에는 저자의 특별한 비법이 추가되기도 한다. 저자는 민들레를 커피처럼 먹으며 각종 약초를 꺾어 호어하운드로는 기침약, 하마멜리스로는 근육통 약, 치커리로는 안약을 만드는 재주를 보여준다.

"민들레의 뿌리는 야생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커피 대용품이다. 민들레 뿌리를 오븐에 넣고 뿌리의 속살이 검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4시간가량 돌린다. 부러뜨리면 톡 끊어질 정도로 바싹 구운 민들레 뿌리를 갈아서 커피처럼 사용한다. 다만 맛이 진하므로 한 번에 사용하는 양을 커피보다 약간 줄이는 게 좋다. 설탕이나 크림을 타서 마실 수도 있고, 그냥 마실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족두리풀 뿌리로는 위장약을 만들 수 있다. 이 식물은 의학적으로 헛배가 부른 증세를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족두리풀) 뿌리를 씻어서 작은 조각으로 썬다. 뿌리 조각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천천히 말랑말랑하게 익을 때까지 삶아준다.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 설탕을 족두리풀 뿌리 분량과 같이 넣고 30분간 더 삶은 다음에 국물을 따라낸다. 설탕 조림이 된 뿌리도, 따라낸 시럽도 모두 약으로 쓴다."

산에 갈 때마다 유독 옻이 올라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을 써 봐도 좋겠다. 기번스는 옻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이른 봄에 돋아나는 옻나무 잎을 새싹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잎의 성장 속도에 따라 3주 정도만 먹어 나가면 옻이 오르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 안에 숨겨진 '주워먹기' 본능을 따라서

"한 시간쯤 산책에 나섰다. 집에서 800미터를 채 가지 않고서도 나는 식품으로 유용한 식물을 무려 예순 가지도 넘게 찾아내고 식별해서 기록할 수 있었다. 이들 중 몇 가지는 두 군데 이상을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책 속에서 그려지는 저자 유엘 기번스는 야생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내 요리하는 것을 유난히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의 옮긴이는 이러한 성향이 기번스만의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야생에서 푸성귀나 열매를 채취하며 느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즐거움'에 대한 이유로 먼 선조들로부터 각인된 '채취본능'을 꼽았다. 남자들이 등산을 하다가 밤송이를 발견하면 먹을 생각이 없으면서도 양 발을 이용해 밤송이를 까며 즐거워하는 행동 등은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야생을 향한 본능 중 하나라는 얘기다.

발끝에 채이던 풀이 훌륭한 식재료로 변할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과 인공적인 일상에 대한 저항이 가져다주는 행복감. 굳이 야외에 나가지 않고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을 읽는 것만으로도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올 여름, 캠핑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이 책을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야생 버라이어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 유엘 기번스 저 / 이순우 역 / 시골생활(도솔) / 2010-08-05 / 1만8000원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 잡초를 요리하다

유엘 기번스 지음, 이순우 옮김, 시골생활(도솔)(2010)


태그:#야생,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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