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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

 

무전기 너머로 나이 40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 세 명의 어설픈 합창이 들린다. 씩씩, 발랄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 소리는 무전기에서 마이크를 타고 다시 스피커를 통해 여주 장승공원 안으로 울려 퍼졌지만, 벌떡 일어선 사람들은 남한강 한복판에 우뚝 솟은 이포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이포보 위에서 세 개의 빛이 흔들린다.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부르던 사람들의 손에 들린 촛불도 조금씩 흔들린다. 그렇게 이포보 위에 있는 세 명의 답가를 들으며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열린, 그들을 위한 '사랑의 콘서트'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4대강 사업 중단과 국민적 검증기구 구성을 요구하며 이포보에 오른 지 17일째였다.

 

이포보와 장수공원 간에 이원생중계로 진행된 '사랑의 콘서트'

 

지난 7일 오후 8시 20분경, 환경운동연합 측이 예고한 대로 이포보와 여주 장수공원이 무전기로 연결됐다. 이날 장수공원에서 열린 '사랑해요,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촛불문화제는 이포보와 함께 '이원생중계'로 진행된 것이다. 아니, 무전 내용을 엿듣고 있을 경찰이나 4대강 사업 관계자들까지 포함하면 '삼원생중계'가 이뤄진 셈이다. 이날 문화제에는 아이를 업고 나온 주부들을 비롯해 대학생, 환경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포보 위에 있는 박평수(51)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무전기를 통해 "거기 어린이들이 많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만 해도, 이들이 준비한 노래가 격한 투쟁가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박평수 집행위원장은 "어른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다 보니, 어린이들이 지루할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했다"며 동요인 '새싹들이다'를 부르기 시작했다.

 

17일째 이포보 위에만 있다 보니, 박평수 위원장도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환경단체 상황실이나 촛불문화제 분위기가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우려는 기우였다. 상황실을 찾는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만큼이나,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성남주민교회 여름생명성경학교의 일환으로 농성 현장을 방문한 초등학교 5학년 최희람양은 다음과 같은 글을 상황실 응원 깃발에 남기고 돌아갔다.

 

"하늘의 뜻을 품은 이포보라는 말처럼 저기 다리가 있는 자리는 하늘의 뜻을 품고 있어서 공사를 하면 천벌 밭을 텐데(받을 텐데)……. 그것이 아니면 하늘의 뜻을 담은 이포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을 좋아하실 것인데, 공사하는 저것은 하늘의 뜻을 품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다인이'가 남긴 깃발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했다. "주의, 4대강 성형수술 금지!!" 초등학교 6학년 최하현양은 "유치원생, 초등생들도 다 압니다. 4대강 사업을 중지해야 된다는 것을, 당신들은 언제 철들려고 하십니까?"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방학을 맞아 줄을 지어 농성 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결의 역시 드높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통일행진단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틀 전(5일) 경남 낙동강 함안보 공사장 철탑(타워크레인) 고공 농성 현장을 거쳐 왔다.

 

단장을 맡고 있는 정윤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가, 국민들이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아야 하는 머슴 아니냐"며 "국민들의 머슴 이명박 대통령은 주인님의 말을 잘 듣고 강을 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꽉 막혀있는 귓밥(귀지)을 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포보의 경우 농성 현장 방문자가 많을 때는 300명을 넘어서고, 촛불문화제에도 서울과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1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누리꾼이나 트위터 사용자 사이에서도 이포보와 함안보의 점거 농성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이포보 농성 현장 인근 식당들이 '한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은 사절한다'는 포스터를 붙이자,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누리꾼이 나타나기도 했다.

 

박창재 농성상황실장은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시민들의 지지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휴가철이 끝나면 더 많은 시민들이 농성 현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촛불문화제는 보 위에 올라가 있는 세 명 활동가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와 함께 향후 4대강 사업 중단 운동을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내주부터 서울에서도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장원섭 민주노동당 사무총장도 "4대강의 운명이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너무 빠르게 결정되어가는 것 같다"며 "민노당은 돌아오는 주부터 서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4대강 사업 중단 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결의했다.

 

이포보 위에 올라가 있는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날 무전기를 통해 "새벽이 오기 전에 어둠이 가장 깊고, 독재가 무너지기 전에 가장 포악하다"며 "마지막 승리를 위해 모두 힘을 내자"고 독려했다. 다음은 무전기를 통해 전달된 염형철 사무처장의 발언 요지이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사히 잘 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11시에 잠 잘 때까지, 아니 불침번을 서느라 밤잠을 설쳐도, 그래도 우리는 강과 함께 있어 행복하게 잘 있습니다. 사태 해결에는 관심 없고 우리가 내건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는 플래카드 철거에만 집중하는 정부나 경찰이지만, 저희는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절대로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시민들이 방문해 주시고, 촛불을 통해 격려해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시민여러분 사랑합니다.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싸우겠습니다. 힘냅시다. 새벽이 오기 전에 어둠이 가장 깊고, 독재가 무너지기 전에 가장 포악하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붕괴 직전입니다. 마지막 승리를 위해 힘냅시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싸워 주십시오. 믿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야, 내주부터 4대강 사업 논의

 

한편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철저히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던 여권에서도 대화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다음주 중 회동을 갖고 4대강 사업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공사 중단 등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좋은 대안이 나오면 왜 반대하겠나. 우리는 중재역할을 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이 대화를 하자는 것은 좋은 신호로 본다"고 평가했다.

 

물론 4대강 사업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의 의견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4대강 대안'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보 설치와 준설이라는 기본 원칙은 훼손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반면 민주당은 운하를 염두에 둔 대형 보와 준설은 안 된다며 4대강 사업에 집중된 예산을 교육, 복지 등으로 전환하자고 맞서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4대강 검증 특위' 구성을 요구할 예정이다.

 

첨예한 이견 속에서도 여야가 일단 대화를 시작하기로 한 만큼 4대강 사업 지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합의가 나올지 주목된다.


태그:#4대강 고공농성, #4대강 사업, #이포보 점거농성, #환경운동연합,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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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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