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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에서 한족의 땅으로

우리가 탄 침대차 내부
 우리가 탄 침대차 내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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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46분 기차는 시안을 향해 출발한다. 우리는 이 기차를 타고 다반, 하미를 거쳐 유원까지 갈 예정이다. 4명이 한 칸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송양의 선생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한 방으로 들어간다. 승강구에서 가장 가까운 1호실이다. 각 방에는 2층 침대가 놓여있어 두 사람은 2층에서 자야 한다.

우리는 가방을 침대 아래에 넣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잠옷을 입는다. 만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스럼이 없어서 서로를 이해해줄 것 같아서다. 그런데 방이 너무 덥다. 선풍기나 냉방장치가 없으니 창문을 열 수 밖에 없다. 창문을 열자 조금 시원해진다.

시간이 되자 차가 서서히 출발한다. 창밖에서 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그런데 기차바퀴가 레일과 부딪치는 소음이 심하다. 잠을 자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 나중에 문을 닫기로 하고 나는 컴퓨터 작업을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찍은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쓴다. 여행 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행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 중 상당부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루무치(왼쪽 위)에서 유원을 거쳐 둔황(오른쪽 아래)으로 이어지는 길
 우루무치(왼쪽 위)에서 유원을 거쳐 둔황(오른쪽 아래)으로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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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에게 조금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나는 정리 작업을 한다. 차는 이제 속도를 내면서 어둠을 뚫고 달린다. 기차는 다반과 대하연, 하미를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유원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기차를 타는 시간은 10시간30분이다. 기차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르무치 시에서 출발, 투르판지구와 하미지구를 지나 깐수성 안서(安西)현 유원진까지 간다. 안서라는 지명은 옛날 안서도호부에서 유래했다.

혜초스님이 간 길은 어디일까?

침대에 누워 자는 둥 마는 둥 여러 번 잠을 깬다. 혜초 스님도 이 길을 갔겠지? 이렇게 누워있기만 하면 우리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데 혜초스님은 어떻게 갔을까? 옛날에야 걸어가는 방법과 낙타나 당나귀 등을 타고 가는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또 잠은 어떻게 잤을까?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 막고굴의 16-17굴: 17굴 앞으로 두루마리 책자가 보인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 막고굴의 16-17굴: 17굴 앞으로 두루마리 책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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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는 이곳을 지나가는 내용이 없다. 그것은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필사본에 뒷부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을 구하러 천축에 간 현장 스님도 627년 이 길을 따라간다. <대당서역기>(646)에 의하면 스님 일행은 8월 창안을 출발한다. 둔황의 옥문관을 거쳐 이오국(현재 하미)과 고창국(현재 투르판)을 지나 아기니국(현재 언기)과 구자국(현재 쿠차)으로 여행한다.

이 길이 실크로드 중 천산북로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기차를 타고 이 길을 여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벌기 위해 야간열차로 간다. 실제 옛 사람들도 더운 낮을 피해 밤에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불빛 하나 없는 사막의 밤을 기차는 동으로 동으로 달려간다.

하미와 아침식사

식당칸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역무원들
 식당칸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역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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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는지 밖이 어수선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세수를 하러 왔다 갔다 한다. 우리 방 사람들도 이제 일어날 준비를 한다. 사실 아침이면 붐비는 곳이 세면실과 화장실이다. 시간을 보니 6시다. 잠시 후 6시20분, 기차는 하미역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꽤 많이 내린다.

하미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동쪽에 있는 인구 36만의 중소도시이다. 우리는 며칠 후 이곳에 들러 회왕릉을 볼 예정이다. 7시가 되자 아침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식당차로 오란다. 식당차는 우리가 탄 침대차 옆에 별도의 차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면서 보니 역무원들이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열차의 아침식사
 열차의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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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으니 두 가지 음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는 국수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빵과 달걀 그리고 스프다. 우리는 후자를 시킨다. 조금 있다 접시 두 개에 음식이 나오는데 먹을 만하다. 야채를 빵에 넣어 먹는 동양식이다. 또 스프는 일종의 죽으로, 미음처럼 쌀가루를 끓여 만들어서인지 아주 부드럽게 넘어간다.

아침을 먹고 기차가 다시 사막을 두 시간쯤 달리자 신장위구르자치구 경계를 넘어 깐수성(甘肅省)으로 들어간다. 깐수성은 서북쪽의 주천(酒泉)시에서부터 동남쪽의 란저우시까지 하서회랑(河西回廊)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깐수성 주천시 안서현에 속하는 유원(柳園)진은 둔황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다. 기차는 10시35분 유원에 도착한다.

유원에서 버스를 타고 둔황으로

기차 여행의 종점 유원참
 기차 여행의 종점 유원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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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려 역을 나오니 버스가 기다린다. 우리는 8명 밖에 안 되는 소규모 팀이니 작은 버스가 나왔다. 짐을 싣고 나니 공간이 상당히 협소하다. 의자 간격도 좁고 차의 높이도 낮아 불편한 점이 많다. 사전에 좀 더 나은 차를 부탁했는데도 전혀 반영이 되질 않았다. 이게 바로 패키지여행의 문제점이다. 말로는 잘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 말이다.

차가 이제 둔황을 향해 출발한다. 두 시간쯤 걸린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5분쯤 지나자 차는 유원 시내를 벗어나 215번 지방도로 들어선다. 이 길은 돈황과 유원을 연결한다고 해서 돈유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도로 포장상태가 형편없다. 포장을 한 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데 관리가 부실해서인지 곳곳이 파이고 울퉁불퉁하다. 우리 같으면 즉시 보수를 할 텐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부실한 돈유로: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도로를 보수하고 있다.
 부실한 돈유로: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도로를 보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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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게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는 이런 차를 타 보지 못해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난다. 두 시간이라니까 참는다. 중간에 잠시 소변도 볼 겸 휴식도 취할 겸 휴게소에 들른다. 한 가족이 운영하는 간이휴게소인데, 주인장의 표정이 밝다. 여기서 수박을 한 덩이 사서 나눠먹으니 갈증도 풀리고 힘이 조금 난다. 1시간 반쯤 가니 사막을 벗어나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둔황지역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리던 둔황 가는 길, 우리 모두는 지쳤다

둔황 시내로 들어가는 길
 둔황 시내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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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시내로 들어서자 미루나무 가로수길이 보인다. 작열하는 햇볕 속에서도 싱싱하고 푸르다. 둔황시는 당하(黨河)에서 물을 끌어들여 식수와 농업용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무와 풀 그리고 곡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둔황시는 남북으로 흐르는 당하를 중심으로 동과 서로 양분된다. 동쪽이 구시가지로 둔황의 중심지이며, 서쪽이 신시가지로 양관서로를 통해 양관과 옥문관으로 이어진다.

동서를 잇는 양관로(陽關路)와 남북을 잇는 사주로(沙州路)가 둔황시 도심을 관통한다. 우리는 유원에서 와 둔황시내의 사주북로로 들어선다. 양관로와 사주로가 만나는 교차지점에 지나면서 보니 석상이 하나 서있다. 비파를 타는 여인상이다. 이것은 둔황을 여행하는 사람이면 몇 번은 보게 되는 둔황의 상징이다.

둔황의 상징: 비파를 타는 여인상
 둔황의 상징: 비파를 타는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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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버스는 이곳 중심 교차로를 지나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길이 양관동로인데, 둔황 동쪽의 과주현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머물 호텔은 동방빈관으로 둔황버스터미널을 지나 바로 왼쪽에 있다. 호텔에 여장을 푸니 피로가 몰려온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러고 보니 버스와 기차에서 12시간 이상 시달림을 당한 셈이다. 정말로 사서 하는 고생이다.


태그:#천산북로, #유원, #둔황, #야간열치, #혜초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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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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