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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정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정치에 어떤 가치와 정책을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여러 갈래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정치의 대변신을 위한 토론과 논쟁을 시작한다. 진보에서 자유주의까지 함께하는 '무지개 정치'의 길을 묻는다. <편집자말>

 

"민주당은 더 이상 DJ나 노무현의 당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새로운 민주당으로 가려면 새롭게 형성된 힘을 민주당 안에 수용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냥 겸양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문제는 아니다. 또 민주당 안에 진보블록이 형성된다면 민주당을 넘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NGO 관계자 등과도 민주진보대연합당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소문이 파다했다. 최근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담대한 진보'의 원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원조를 찾아가 얘기 좀 들어보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휴가였다. 푹 쉬었다. 휴가지에서 돌아온 첫날, 그 원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쯤 만나면 좋겠냐는 답이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왔다.

 

당장 보자고 했다. 4일 오후 4시 김근태캠프로 알려진 서울 세종로 한반도재단 사무실에서 이인영(46) 전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 아침, <경향신문>엔 그가 9월 18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전언이 실렸다.

 

예상대로 이 전 의원의 고민과 생각은 깊었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야고보의 길을 찾아 산티아고로 떠났을 때의 마음처럼 그는 또다시 거대한 전환기에 맞서 긴 여정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민주진보대통합의 길, 민주당 안에 진보블록을 쌓고 민노당, 진보신당까지 함께할 틀을 모색하고 있었다. 국민이 진보하고 있는데, 정치도 당연히 진보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이인영 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9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 출마를 결심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가.

"대표와 최고위원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표보다는 최고위원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 왜 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으로 검토하게 됐나.

"갑자기 대표로 나서는 게 뜬금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오면서 문제제기를 해온 방식이 아니니까. 나 스스로 오랫동안 공부했는지 모르겠으나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단계별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성장해온 게 아니라는 주변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런 문제의식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대표보다는 최고위원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나는 대표로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만, 주변의 판단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을 바꾸고 있다."

 

-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규칙개정도 검토 중이던데.

"사실 나는 룰이나 내 정치적 입지를 우선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나의 이야기, 가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룰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나중 문제다. 내 얘기를 좀 많이 하려면 돈이 좀 많이 들더라도(웃음) 방송토론도 있고 하니 대표출마를 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뜬금없다고 해서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있다."

 

"진보는 종파주의로 분열, 보수는 부패와 나쁜 이미지"

 

-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가) 거대한 전환기라고 본다. 이 거대한 전환기에 우리는 어떤 역사적인 방향, 사회발전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이건 공백상태인 것 같다. 정치리더십도 DJ나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에 어떤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논쟁하는 지도자는 있지만, 역사나 사회발전 방향에 대해 분명한 제안을 하고 국민들과 함께하려는 정치리더십은 형성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이 문제는 단지 지지율이 높거나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최근 민주당에서 진보와 복지 얘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산업화 이후 새로운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현재 상태의 극단적인 시장경제, 물질만능주의로 계속 가는 게 맞는 건지, 사회적인 시장경제나 사회통합형 시장경제로 가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일자리나 주택, 보육, 노후, 교육정책을 어떻게 하자 뭐 이런 수준으로 정리하는 게 맞는 건지 얘기를 해봐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일정 정도의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 조세개혁도 단행해 새로운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양극화 격차사회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허약한 시장경제 시스템, 자본주의 위기를 개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문제들을 얘기하고 싶다.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민주화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한나라당식 '질 나쁜 보수'가 아니라 좀 더 괜찮은 보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의 진보정당들도 구진보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본다.

 

진보는 언제까지 분열해서 종파적인 모습에 머무를 것인지, 보수는 언제까지 부패하고 나쁜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인지 얘기를 좀 해보자는 게다. 민주당도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행으로 그 가치가 돋보이기는 해도 언제까지 그 수준에만 머무를 것인지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

 

나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새로운 진보가 만나 정치사상적 이념에 근거한 당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정당구조를 크게 갈라 '그래도 괜찮은 보수 정당'과 '상대적 진보정당'이 함께 간다면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좋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민주가 만나 담대하게 진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 유권자 지형도 많이 바뀌었다고 보는 건가.

"물론이다. 한국에서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유권자 대중 속에서 진보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진보가 자기계급의 정치적 이해로 단순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정의 수준에서도 진보를 말한다. 40대와 50대 초중반, 30대 중후반대 유권자들이 후보는 민주당, 정당은 진보정당을 택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진보적 대중은 어떤 때는 진보신당, 민노당, 또 어떤 때는 민주당의 괜찮은 인물에 대한 지지로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다. 이런 경향을 목격할 때마다 민주당이 이런 진보적 유권자 대중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진보정치를 하려는 사람들도 진보정당에서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 안에서도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 그런 얘기를 할 때가 됐다. 민주당은 더 이상 DJ나 노무현의 당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새로운 대중의 요구에 기반한 새로운 민주당으로 가려면 명확하게 새로운 유권자의 한 축으로 형성된 힘을 민주당 안에 수용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그냥 겸양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좀 더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당 안에 일정한 진보블록이 만들어진다면 민주당을 넘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NGO 사람들과 민주진보대연합당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왜 진작 진보 쪽으로 못 갔느냐... 굉장히 죄송하다"

 

- 이렇게 긴 이야기를 지금 꼭 스스로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뭔가.

"두 번의 대선 실패 이후 보수세력은 확고하게 재편됐다. 1997년 이후 2002년, 2007년을 거치면서 보수세력은 대연합으로 재편됐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념적 차이를 내세우면서 분립하고 경쟁하다가 어쩌다 한번씩 연합하고 있다. 그보다는 크게 진보민주대연합을 이뤄서 유럽이나 미국식으로 '상대적 진보'와 '상대적 보수'로 거대한 재편을 이루는 구도가 훨씬 위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2004년 총선 당시 개혁의 견인차로 386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독재의 상징인 국가보안법도 못 없앴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좀 늦은 것 아닌가.

"나는 386세력이라는 말을 안 쓰려고 한다. 숫자로 뭘 얘기한다는 게 경박하게 보인다. 굳이 그 세대를 명명하자면 '민주화세대'로 말하는 게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꿈이 있었기에 '진보세대'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다.

 

2004년에, 왜 진작 진보 쪽으로 더 못 갔느냐... 아쉽고 굉장히 죄송하다. 우리에게 기대를 주셨던 진보대중이나 일반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생각해보면 국가보안법 철폐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사람들과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했던 사람들이 서로 악법폐지에 힘을 싣는 정도는 달랐던 게 사실이다.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대연정, 한미FTA, 이라크 파병, 분양원가공개, 대북송금특검 모두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너희들 정도면 YES와 NO가 분명해야 하는데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서로 나뉘면서 힘도 빠졌고 실망한 경우도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으로 무너지고 심판 받았다. 그동안 굉장히 자제했고, 자중했다. 잘못했으니 폐족처럼 숨어 있으면서 진보의 가치가 정치적 기술 수준에서 형성되는 걸 방치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총체적 사회발전의 철학적 이념이 잘 세워지도록 노력하는 데 기여하는 게 훨씬 좋은 게 아닌가 싶다."

 

-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486이 기수만 자처할 뿐 깃발의 그림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념적으로는 사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가 공존하는 쪽으로, 세력으로는 민주화세력과 진보세력의 동맹, 국가나 사회상으로는 단순히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긴 하나, 통일되기 전까지 남한사회가 더 많은 복지,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는 그것이 녹색복지공동체든, 역동적 복지국가든 다 좋은데 이 문제는 과제로 두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과제별 위원회를 무수히 만들면서 전 세계의 좋은 정책 스터디는 많이 해놨다. 이걸 접맥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이번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등이 많이 해놓을 것이다."

 

"통합은 운명... 민주진보대연합당 추진해야"

 

- 당내 젊은 전현직 의원 23명이 참여하는 이른바 '486모임'이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치결사체로 전환한 뒤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데 공감했다는 보도가 나왔던데.

"민주당이 좀 더 진보 쪽으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자는 게 핵심적인 얘기였다. 전당대회 때마다 서로 나뉘어 각축하고, 정치적 이슈에서도 서로 다르게 얘기하거나 침묵했던 것도 문제였다. 이번에는 탈계보, 탈계파, 반종파 하고, 하나의 세력으로 모여 중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진짜 격정적으로 토론해서 하나의 공통된 입장을 내놓기로 하자 이런 수준의 논의다. 지금 못하면 영영 못하게 된다. 아마 계속 경쟁만 하게 될 게다. 서로 협력하면서 같이 성장할 것이냐, 따로 경쟁하면서 갈 거냐, 운명적으로 지금 하나가 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나가면 이탈이다."

 

- 민주당과 분열한 친노세력이 국민참여당을 만들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다시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개 이념이 같아도 지역이 다르면 분리되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공존 못할 정도인가. 좀 감정적인 것은 아닌가. 그런 거라면 훌훌 털어버려도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념보다는 지역, 정서, 관행의 차이라면 극복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그게 노무현 정신이다.

 

유시민 선배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대중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이념적 베이스가 뭐가 그렇게 다른가 생각한다. 주도권의 차이는 있어 보이지만. 반대로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패권이나 감정의 문제로 보지, 생각이나 이념이 달라서 분열했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분열하지 말았어야 한다. 진보신당과 민노당 역시 헤어질 이유가 없는 당이다. 대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넷 다 합치라는 것 아닌가. 진보민주대통합은 보수대연합의 일시적 반동에 맞서는 데 있어서도 전술적으로 옳은 판단이다. 선의에서 단결을 바라는 많은 국민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구심을 만들어줘야 한다."

 

- 민주당을 이대로 두고 통합할 수 있겠나.

"민주당이 크게 변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대표가 될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의 대상은 누가 당권을 쥐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민주당의 지도자가 되느냐다.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당권과 패권을 쥐려는 사람은 2012년에 대통령이 못 된다. 당권과 패권을 넘어서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확고한 자기 신념을 부여해주는 사람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기교로, 득표전술로, 처세로 진보를 말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당선될 리는 만무하다."

 

"차라리 민주당을 깨라? 가혹하다"

 

- 지난 7.28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연합정치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

"민주당이 광주에서 한 석을 양보하고, 은평을에서도 하나 더 양보했다면 그 자체로 감동이었을 것이다. 큰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감동은 줬을 게다. 감동 이전에 그것은 하나의 공학이고 기법일 수 있다. 좋은 정치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게다. 그러나 잘 안 됐다."

 

- 차라리 민주당은 깨져야 한다, 역사발전을 위해 없어지는 게 맞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질문이다.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그건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포기되는 거다. 민주당에게 부여된 진보적 요구가 꽤 있는데 그걸 살려야지, 민주당을 깬다고 해서 될까 싶다. 또 민주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이 살아남을 것 같지도 않다. 민주당을 통해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해내도록 해야 한다."

 

- 어떤 과정을 거치면 민주진보대연합으로 갈 수 있겠나.

"민주당 안에 민주진보대연합을 추진하는 기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조급하게 지분 나누기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뭔지, 한국사회는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를 이룩할 것인지 논의하고 객관적으로 필요한 정당이 뭔지 도출하는 과정을 밟았으면 좋겠다.

 

레고블록 맞추듯이 있는 것 갖고 조합하려고 하지 말고 백지에서 창조적으로 하나씩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중질서의 과정'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밖에도 민주진보대연합을 추진하는 기구가 생기기를 바란다. 공동의 질서를 만들어가자는 얘기다. 각자 자기질서를 갖고 당내에서 논의하고, 당밖에 기구를 만들어 통합을 논의하자는 게다. 각 당은 그런 논의를 허용해주면 좋겠다."


태그:#이인영, #민주당, #진보민주대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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