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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표지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표지
"옮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제목과 이종욱 WHO사무총장의 얼굴이 담긴 책의 표지를 보며 당연히 이 사무총장의 자서전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제목 밑에 '권준욱 지음'을 보고 또 다시 의문이 들었다. 둘 다 한국 사람이니 번역 책도 아닐 것이고 이종욱 사무총장이 몇 백 년 전에 태어난 위인도 아니니 위인전도 아니다. 도대체 이종욱과 권준욱은 어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며 이 책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권준욱의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아, 이종욱 사무총장은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그리고, 참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기 주변 사람 중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자신의 인간미를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책으로까지 펴내며 노력한다는 것이, 이종욱 박사가 살아생전 본인 입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굳이 스스로 표하지 않아도 삶을 다한 후 세상에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그것도, 사랑하는 후배에 의해 새겨진다는 것이 그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동물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사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는 진취적이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도전적인 느낌의 당찬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첫 장을 읽고 나서 후회스러웠다. 그 이유는 내 편협한 독서취향 때문이다. 평소 외골수적 기질이 있어서 나의 관심분야에 관한 서적이 아니면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 가서 다른 분야에 관한 도서코너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평소 정치, 사회과학 관련 책만 읽어왔던 터라, 책 내용 초반에 의학 관련 얘기가 나오자 바로 지루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계속 읽어나가자 내 지루함은 곧바로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이종욱 박사의 업적 내용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곧은 성품과 일에 대한 열정 등 이종욱 박사의 인간미와 국제기구 수장으로서의 개인 신상에 관한 얘기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간간이 이종욱 박사의 업무내용도 적절히 소개되어 있어, 의학에 대한 관련지식과 관심이 없던 나에게 새로운 분야에 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종욱 박사의 삶의 목표와 자세와 내 생각이 같은 부분이 있을 때는 "맞아, 맞아, 그래야 돼" 하며 혼자 감탄사를 연발하는 등 공감의 연속이고, 때로는 아직은 어리고 또 어리석을 때도 많은 젊은이인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해 놓친 부분을 인자함과 현명함, 그리고 노련함을 어김없이 발휘하며 인간미 있는 모습이 묘사될 때마다 숙연해지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WHO 사무총장이라는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 수장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겸손을 잃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더욱 더 낮은 자세로, 특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더 진심으로 따뜻이 대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훌륭한 분이구나 하고 느꼈다.

일반적으로 "그 사람은 야망이 있고 꿈이 크다"라고 말하면, 사회적으로 높은 명성이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자기 공부나 일에 매진하는 사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만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어떤 꿈을 가졌느냐가 그 사람의 야망의 크고 작음을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꿈을 실현하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가 그 사람의 꿈이 크고 작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환경미화원보다 변호사나 의사를 꿈꾸는 젊은이를 보고 꿈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직업을 그저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그 사람은 큰 뜻을 품고 있는 젊은이라 볼 수 없다. "서대문구 전 지역의 길거리 청결은 내가 지키겠어" 라든지 "사회의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우리동네 한 사람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 나아가서는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노력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라면 환경미화원을 꿈꾸든지 변호사나 의사를 꿈꾸든지 그야말로 희망찬 큰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라 칭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내가 내린 "큰 꿈을 지닌 사람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 바로 이종욱 박사라고 느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엘리트'부류에 자동 편입된다. 졸업을 한 후 의사가 되어 돈도 넉넉히 벌며 여유로운 삶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다. 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자 철저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마음에 품고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사모아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친 이종욱 박사는 큰 꿈을 지녔고 그 큰 꿈을 이룬 사람이다.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끝까지 나의 꿈과 비교해가며 읽으니 더욱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의 꿈은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정치'라고, 아니 오로지 '정치만이 가장 빨리 변화시킬 수 있어"라고 생각해오며 살았다. 이종욱 박사의 이야기를 읽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정말 많구나 라고 느꼈고, 또한 이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꿈을 실현해나가는 데에 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것을 인생의 목표로 설정해서 그 목표달성 이유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도 돌아볼 줄 알아서 사회의 약자가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쉬운 말 같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인간의 이기심이 극심한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꿈=젊은이의 특권" 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다. 물론 나름 개개인의 목표는 누구나 있다. 목표는 있지만 꿈은 없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젊은이들 중에, 그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애국심이 투철하고 나라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서 공무원을 지망했을까? 이종욱 박사는 미래설정이나 계획, 비전이 명확하지 않은 젊은이를 한심하게 생각했다는 구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이 책의 끝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이종욱 사무총장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희망', '열정', '위대함', '용기', '박애,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인류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거창한 표현이라 낯간지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종욱 사무총장이 그토록 말하기 싫어하던  단어인 '인류애'를 뺄 수 없다. 인류애를 빼놓고는 이종욱 박사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나는 분명 애국심이 남다르고 국가관이 투철한 젊은이라 나름 자부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철학을 부끄럽고 무색하게 만든 게 이종욱 박사다. '애국심'은 '인류애'에 비해 너무도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로 비롯된 철학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 아프리카 같은 오지의 어린이들을 돌봐주러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아프리카 등을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하고 기부도 하고, 또한 그런 모습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오는 일들을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손가락질하며, "우리나라 고아원만 가도 불쌍한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봉사활동하러 돈 들여서 뭐하러 거기까지 갈까, 그 비행기 삯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들 몇 명은 더 도와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이종욱 박사의 삶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세계 구호활동, 국제기구의 역할의 중요성 등을 다시금 깨달았고, 우리의 이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나라만 잘 살아야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이웃은 지구촌 전 세계인들이고 또 이들과 더불어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한국인 최초 국제기구 수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빛나고 자랑스러운 자리인지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는 순간이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33가지 메시지

권준욱 지음, 가야북스(2007)


태그:#이종욱, #WHO, #권준욱, #세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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