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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

 

남아공의 포트엘리자베스Port Elizabeth와 플레턴버그베이Plettenberg Bay사이에 있는 블로크란스Bloukrans로 오는 이유는 블로크란스 강Bloukrans River위에 놓인 다리 블로크란스 리버 브리지Bloukrans River Bridge 때문입니다.

 

길이 452m, 높이 216m로 1980년에 착공해서 1983년에 완공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이며 단일 콘크리트 아치 경간徑間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조물입니다. 북쪽으로는 치치카마Tsitsikamma산맥이 뻗어있고 남쪽에는 인도양입니다. 그 사이의 숲이 이어진 평평한 고원高原에 세월은 땅을 파고 바위를 깎아 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협곡을 만들었습니다. 북쪽의 산맥에서 발원한 물길은 시원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지만 이렇듯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제압합니다.

 

블로크란스 리버 브리지는 N2(남아공의 국가 간선도로national road중 가장 인도양에 면한 도로)의 한 부분으로 케이프타운Cape Town과 포트엘리자베스를 잇기 위해 그 협곡 위에 놓인 다리입니다.

 

그 다리 아래에 1989년 번지Bungy점프대를 설치했습니다. 기네스에서 공인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입니다. 바로 세계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이 번지점프대의 216m 높이의 난간에 서기위해 이 블로크란스에서 발길을 멈추는 것이지요.

 

 

아들 딸은 누가 책임지라고 바위 협곡으로 몸을 던져요?

 

저는 이곳에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볼 결심을 하였습니다. 번지점프를 하겠다는 사람은 우리 일행 중에는 저 외에 23세의 덴마크 처녀 마를린Marleen 혼자뿐이었습니다. 모두가 '허리가 좋지 않다', '관절에 문제가 있다'고 발뺌을 했습니다.

 

저는 개별적으로 등록소에서 사고가 나도 회사 책임이 아니라는 약관에 사인을 한 다음 620랜드의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점프대가 가장 잘 보이는 협곡언덕, 회사의 비디오 촬영소가 있는 곳에서 방금 뛰어내린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V자 협곡은 물론, 다리 넘어 인도양의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카메라의 200mm 줌으로 당겨도 점프대에서 몸을 날려 자유낙하하고 있는 사람은 허공의 한 점으로 보였습니다.

 

 

15분이 지나도 그 다음 사람이 점프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리 위 점프대와 무전기로 통신을 하고 있는 비디오 촬영기사 라이언Rian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려움으로 점핑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라이언에게 물었습니다.

 

"이처럼 점프대 위에서 점핑을 포기하는 일이 종종 있나?"

"평균 신청자 중, 10명에 한 명꼴이다."

 

라이언이 어금니로 껌을 질겅거리며 답했습니다.

 

저는 제 카메라를 라이언에게 맡기고 Harness Area로 갔습니다. 젊은 친구가 엄지손가락을 한 번 올리고선 하네스로 몸을 동였습니다. 그 상태를 다른 한 사람이 점검했습니다.

하네스를 한 제 모습을 스웨덴에서 오신 노인, 헤럴드가 비디오에 담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들 딸이 몇이요?"

"셋입니다."

"그들은 누가 책임지라고 그러오?"

 

악마의 입술을 걷다

 

제 뒤에 한 여인이 합류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마이브리츠Majbritt라고 했습니다. 다리 난간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던 청년이 다리 아래 철재 통로에 오르기 전 잠시 멈춰 점프대와 안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시종 참 씩씩해보이던 마이브리츠가 말했습니다.

"점점 더 두려워지는데요."

"이 두려운 일을 왜 합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해 보지 않은 일이니까요."

"전 53살이요만……."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그 여인이 혹 저보다 나이가 많을지가 궁금했습니다.

"전 30세입니다. 용기가 저보다는 두 배쯤은 더 젊으시군요."

인도하던 청년이 말했습니다.

"점핑을 하신 분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남아공의 95세 할아버지였습니다."

 

 

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다리중앙으로 인도하는 좁은 철망 통로를 걸었습니다. 인도양 파도가 눈앞에 다가와 보이고 다리 밑의 협곡바닥이 아득했습니다. 협곡 양옆의 바위 낭떠러지 아래 바닥의 강물은 수량이 적어 바위가 더 많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웅덩이처럼 고인 강물조차 숲의 타닌을 머금은 탓으로 검었습니다. 발아래 협곡이 '악마의 입'같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현기증을 잊기 위해 눈을 들어 맞은편 산맥의 숲을 보았습니다.

 

좁은 철망 통로를 지나 다리 중앙의 넓은 콘크리트 아치 중앙에 다다르자 마음이 한결 이완되었습니다. 10여명의 직원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그 중의 몇몇은 희고 긴 수염이 있는 저를 보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마스터Master'를 외쳤습니다.

 

누가 먼저 점핑을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마이브리츠가 먼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먼저 매를 맞고 싶어 했습니다. 로프를 묶을 발목을 채우고 두 사람에게 인도되어 난간에 섰습니다. 난간 위에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 그녀의 표정이 모니터에 비쳤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모든 얼굴 근육이 뭉친 듯 새파래졌습니다. 두 청년이 그녀의 어께에 감았던 팔을 풀고 그녀를 밀었습니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길게 뽑으며 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공포에 맞서다

 

제가 난간에 섰습니다. 일부러 계곡 바닥을 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철망 아래로 보이던 검은 바위 바닥이 생생하게 생각났습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발아래를 내려 보았습니다. 216m의 높이가 이토록 아득한가 싶었습니다. 만약 이 다리 위에서 자유낙하 한다면 뱀의 허리처럼 가늘게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질 확률은 전무해보였습니다.

 

"중력이 당기는 속도로 저 뾰족한 바위에 부딪힌다면 아마 내 육신은 재단사의 가위에 의해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진 헝겊조각의 모습이 되리라."

 

머릿속은 제 의도와 달리 자꾸 극한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멀리 치치카마산맥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잠시 처와 가족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핑으로 몸을 날리고 싶었지만 발바닥이 점프대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몸을 허공으로 기울였습니다. 몸이 난간으로부터 허공으로 45°쯤 기운 시점에서 1초쯤 극도의 공포가 스쳤습니다. 이어서 2초쯤의 짜릿한 전율이 지나자 몸이 공중을 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핑 전에 높이 활공하는 매처럼 멋지게 자세를 잡아야지 하는 결심이 제대로 되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뻗은 양팔을 보았습니다. 잘 펼쳐 있었습니다. 이어서 눈 앞에 벼랑과 대서양이 한참을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치 제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서양이 눈 아래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2차 바운스bounce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새가 된 느낌을 갖고자 했습니다. 활공하는 맛을 음미하고 싶었습니다. 바운스와 더불어 협곡의 고랑을 따라 스윙하는 두어 차례에 마치 중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듯 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바운딩이 끝나고 거꾸로 매달린 채 서서히 돌고 있었습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여전히 검고 까마득했습니다. 시선을 수평으로 했습니다. 거꾸로 된 숲과 치치카마의 첩첩 계곡과 능선, 대서양의 수평선이 번갈아 보였습니다. 뒤집어 본 세상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잠시 후 로프를 타고 내려온 청년이 제 가슴의 하네스에 자일을 걸었습니다. 동력의 힘으로 저는 다시 다리 위로 올려졌습니다. 블로우크란스 다리의 바닥에 몸이 올려지고 로프가 풀리자 마침내 안도와 희열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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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공포에 맞서 제 스스로 216m 아래의 허공으로 몸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신뢰'입니다. 제 몸을 감은 하네스와 로프 그리고 그것들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공포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저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점프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난간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앞선 사람처럼 결국 겁을 먹고 난간에서 물러서게 되지요.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서야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 전에 우리는 충분히 준비를 해야지요. 학생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경청해야 하고, 늦은 밤 자신의 책상 앞에서 졸음을 참아야 합니다. 사업가는 충분히 리서치하고 분석한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모서리edge에 세웁니다. 그래도 천 길 난간에 서는 일은 두렵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맞서 허공으로 몸을 날립니다.

 

그 결과는 자유와 희열 그리고 성취입니다.

 

2009년 1월 31일 새벽,

아프리카 남아공 Bloukrans의 Tsitsikamma Forest Cabin에서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번지점프, #아프리카,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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