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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온 비 덕에 산뜻한 기분으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간밤에 온 비 덕에 산뜻한 기분으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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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모처럼 비가 왔습니다. 고맙게도 대지를 알맞게 적시고 적당한 때 그쳐줘서 출발이 산뜻했습니다. 열차로 이동할까 했지만 진영에서 진해까지 금방이란 동네사람 조언을 듣고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눈부신 하루가 또 시작됐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국도의 갓길
 생명의 위협을 느낀 국도의 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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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무성리에 접어든 건 출발한 지 불과 30분 만이었습니다. '마창진'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만만했던 지방도가 14번 국도와 만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대형 트레일러와 자가용들이 '자전거 따위 꺼져'라는 듯 무서운 기세로 달렸습니다. 바짝 긴장한 채 갓길 가드레일에 최대한 붙었는데 그나마도 얼마 못 가 수풀에 가렸습니다. 

그대로 갔다간 기실 압사할 것 같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모든 길은 통한다'는 믿음 하에 지방도를 갈아 탔습니다. 아슬아슬한 길 타기를 1시간쯤 이어갔을 때 마침내 갓길이 널찍한 달려볼 만한 구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용암마을', '원각사 돌할아버지'란 두 개의 이정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용강리란 마을이었습니다.


구룡산 원각사 돌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밀며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오른 끝에 원각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한 분이 기거하는 작은 암자였는데 이곳에서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소원을 점쳐주는 돌할아버지를 만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대리석 기와집 아래 손바닥 만한 방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아 아이 머리 만한 황금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원각사 수호신인 이 돌은 열반(깨달음에 이른 죽음)에 든 원주란 대보살이 주지스님 꿈에 나타난 뒤 절 마당의 7층 석탑 옆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구룡산 원각사 돌할아버지
 구룡산 원각사 돌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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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법은 대웅전 미륵부처와 산신각 산신님께 먼저 삼배하고 이어 돌할아버지께 삼배합니다. 그리고 중량 확인을 위해 무심(無心)으로 할아버지를 한번 들어봅니다. 다음 돌할아버지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자신의 소원을 물어본 뒤, 다시 들었을 때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절마당에 누워 시원한 산바람을 즐겼습니다.
 절마당에 누워 시원한 산바람을 즐겼습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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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심신이 청정한 상태에서 대면해야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물음을 정하고 참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처음엔 너끈히 들렸던 돌이 소원을 말한 뒤 들어보니 꼼짝을 안 했습니다. 두세 번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으로 느낀 묘한 기운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흥분까진 아니지만 왠지 든든한 기분에 힘이 났습니다. 마당에 내려와 스님께 결과를 전하니 "좋은 일 생기려나 보지" 했습니다. 베시시 웃으며 평상에 앉아 있는데 바람도 그만입니다. 반쯤 누워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으니 잠이 왔습니다.

자고 일어나 뱃속이 허한데 스님께서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해주셨습니다. 들깨 넣은 열무김치와 곁들여 먹으니 어느 진수성찬 못지 않았습니다. 한낮 땡볕을 피한 것도 감사한데 공짜밥까지 먹었으니 보통 운이 좋은 게 아닙니다. 절방에 앉아 귀한 녹차까지 얻어 마시고 더위가 한풀 꺾일 때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예기치 못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터널을 뚫어라!

이때부턴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 이동 차량은 많았지만 갓길 폭이 넓어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산산조각난 차체 조각들을 볼 때면 가슴이 떨렸습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췄다간 봉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다시 용강리 앞 국도로 원 위치해 창원역까지 두 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중간 길을 묻는데 답변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거길 어떻게 가나. 오늘 안에 못 가" "금방이야, 터널만 지나면 되는데". 여행을 할 때도 일희일비 말고 꾸준히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합니다.

멀고도 험했던 안민터널 길
 멀고도 험했던 안민터널 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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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창원대로를 타고 한 시간여쯤 더 달렸습니다. 몇시간째 자전거 위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차창에 얼굴을 대고 이쪽을 쳐다보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녀석도 신기했던가 봅니다. 마침내 안민터널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창원대로가 창원터널과 안민터널로 나뉘는데 '이륜차 통행금지'란 전광판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창원대로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쌩쌩 오는 차들을 비켜 길을 건넌 다음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니 멀리 안민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나 싶었는데 좁은 비상도로가 보였습니다.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온 듯 깜깜하고 긴 터널이었습니다. 그렇게 긴 50미터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원래는 조용한 바닷마을에서 근사한 저녁을 맞고 싶었으나 터널을 뚫고 나온 뒤 얼른 씻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제일 먼제 눈에 띈 여관으로 직행했습니다. 지은 지 30년도 넘은 듯 낡은 집인데 주인 할머니가 한참 실갱이 끝에 5천 원을 깎아 줬습니다. 그래도 말투에 친근함이 묻어 납니다.

꽤나 힘들었지만 추억도 한 가득 쌓인 하루였습니다. 목에 땀띠가 나서 가렵습니다.

마침내 진해에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진해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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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내여행, #창원, #구룡사 , #원각사 , #돌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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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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