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게 현실세계를 판단해가는 예감이자 선언이다. 우리가 혼자 살 수 없듯이 시란 모든 사물과 관계하고 있다. 그리고 시는 자연 곳곳에 널려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시가 될 수 있으며 자산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문태준(39, 불교방송 PD)씨의 문학 강좌가 17일 오후 5시 전주 완산구 중화산동 춘향골(식당)문화 공간에서 열렸다. 강좌는 이동희 전북문협 회장을 비롯, 정군수 전주문협 회장 등 도내 시인과 문인, 일반인 등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남짓 진행됐다.
문학 강좌는 전북시인협회(회장 유대산)가 전북도민의 시 정신을 일깨우고 창작정신을 북돋아주기 위해 안도현, 문태준 두 시인을 초청해 이뤄진 것. '제3회 도민과 함께하는 도심속 문학강좌 안도현, 문태준 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강좌는 16일 안도현 시인에 이어 17일 문태준 시인 순으로 이어졌다.
"시인은 마음을 제공한다. 밖에 있는 삼라만상이 내 마음 속에 다 들어온다"고 말문을 연 문 시인은 "한국 시의 화자가 너무 우월적이다. 화자가 대상을 지배하려고 하고 장악하려고 한다. 시를 생각으로만 쓰려고 하니까 좋은 시가 안 나온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은 뭐든지 청취하고 듣는 사람이다. 항상 메모하고 낮은 자세로 임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 쓰는 사람은 환자라는 편에 서야 하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환자의 시선,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시가 나온다"고 부연했다.
문씨는 "시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 그 중 첫 말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고 가장 어렵다. 어떤 사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시를 쓰려고 할 때, 즉 시간이 순차적으로 이동해 가면서 쓰는 시는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시의 소재에 대해 "온 천지가 다 시 밭이며, 길을 걸을 때도, 버스를 타거나 차를 운전할 때도, 생각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시상이 떠오를 만한 느낌이 오면 언제 어디서고 메모할 수 있는 지필묵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
문씨는 특히 "어깨에 힘을 다 뺀 상태에서 시를 써야 한다. 생각을 가두지 말고 계속 열어 놔라. 물이 있는 양동이를 들고 갈 때 출렁출렁 하듯 좋은 시는 출렁거리게 되어 있다. 시는 완결이 없다. 완결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시를 자꾸 가두려고 하지 말고 출렁출렁 거리게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씨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 고독한 순간에 나를 잘 지켜야 좋은 시가 나온다. 그래서 시인은 고독해야 한다"고 했다.
문씨는 끝으로 "좋은 글과 좋은 시를 읽고, 좋은 시집은 늘 가지고 다니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방이나 사무실에 좋은 시를 걸어놓고 보면 시적인 감성이 살아나고 그러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좋은 시, 좋은 글 많이 쓰고, 전라북도 시의 땅을 잘 지켜주기 바란다는 말로 강좌를 끝냈다.
문태준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외 아홉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4년 「동서문학상」,「노작문학상」,「유심작품상」, 2005년「미당문학상」, 2007년 제21회「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등이 있다.
한편 이날 문학 강좌는 부안문협 회장인 김기찬 시인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강좌에 앞서 유미숙, 김애경 낭송가가 문 시인의 시를 낭송해 분위기를 띄웠고, 강의가 끝난 후 참석자 몇 사람에게 문 시인과의 질의, 응답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전북신문에 게재된 기사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