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충북 제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때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자칫 지난해 초 터졌던 '임실 성적조작 사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전교조도 제천의 한 학교에서만 부정행위가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 속에 자체 조사를 검토하고 있어 자칫 성적조작 파문이 확산일로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연합뉴스 기사)

 

기사를 읽으면서 1970년대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다.) 시절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다른 시험과는 달리 일제고사 때면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 주변 친구들에게 시험 답을 알려주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성적만이 살 길'인 것인 양 아이들을 닦달하던 때가 아니었다. 학교 이외 따로 집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아이들도 거의 없었던 시골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답을 보여주며 시험 보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너나없이 답을 보여주고 보고 썼다. 시험 감독하는 담임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을 뿐이었다. 옆 분단 친구의 답안을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고 아예 벌떡 일어나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답을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몇 번 문제 답이 무어냐고 묻는 아이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시험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그 시험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시험 점수 때문에 혼난 아이도 없었고, 시험 점수가 기록된 통지표가 부모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단지 여름방학 전에 담임 선생님이 우리 학교 성적이 군에서 1등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방학 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이종사촌 형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한 살 터울의 형이라 친구나 다름없이 지냈다. 아침 일찍 개울에 가서 멱 감다 지치면 개울가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재잘대고 다시 개울에 들어가 물장구치다 점심 무렵 집으로 가면 감자 수제비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놀다 보면 다니던 학교 얘기도 했다. 친구랑 싸운 얘기, 여자애들 고무줄 끊던 얘기, 싸움 제일 잘하는 친구 얘기, 이름이 이상한 친구 얘기 등 별별 얘기가 다 나왔다. 얘기 소재가 바닥날 무렵 이종사촌 형이 시험 얘기를 꺼냈다. 우리 학교랑 거의 비슷한 얘기였다.

 

형네 학교는 우리 학교처럼 드러내놓고 답을 보여주며 시험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고개 기웃대며 보고 써도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형의 담임 선생님은 "아무개 학교가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 학교가 1등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단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지금 치러지는 일제고사와 닮은 점이 있다. 시험 성적으로 학교를 줄 세우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일제고사가 치러진 뒤 각 초·중학교에서는 일제 고사 성적을 올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초등학교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방학 때도 불러내 보충수업을 시키더니 급기야는 성적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다.

 

최근 들어 70년대 향수를 불러오는 각종 정책이 속속 되살아나 사람들로 하여금 옛 추억에 잠기게 한다. 일제고사도 그 중의 하나다.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일제고사를 강행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걸까.

 

멀쩡한 교사들이 교단에서 밀려나고, 교과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학교 현장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일제고사를 꿀단지인 양 감싸는 사람들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태그:#일제고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