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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신고 하는 것, 1년 버티는 동안 이젠 '제법'

 

1년 전 꼭 이맘때쯤이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입점한다기에 이젠 끝이다 싶었다. 이제 어디 가서 무슨 일로 먹고 살아야 할까? 가게 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없을 테니 권리금 받기는커녕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그 절망 속에 좌절하고 있을 때 막을 수 있다고, 한번 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SSM(기업 형 슈퍼마켓) 입점 저지를 위한 대책위를 꾸리자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라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진짜 막아 낼 수 있을까? 에 이~ 설마 막아낼 수 있겠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변 슈퍼마켓 주인들을 만나 설득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사실 1년 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지내고 보니 1년이 훌쩍 가버렸다. 1년 동안 어쩌면 평생 가보지도 않았을 국회와 중소기업청을 수도 없이 다녔고, 숱한 집회와 기자회견 그리고 정치인들과 간담회…. 1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어 더 서글프다"

 

그래도 입점을 막아내고 1년을 버텼다. 1년을 버티는 동안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측으로 부터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당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민사상 1억 7000여 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것도 모자라 대책위 간부는 재산가압류를 통보받기도 했다.

 

갈산동에서 슈퍼마켓 '보람마트'를 운영하며 홈플러스 입점 저지 갈산동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한부영씨는 지난 1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사실 막아냈다는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로는 정신없이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뙤약볕 한여름과 혹한의 한겨울을 농성장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내가 생각해도 용하다. 아내와 둘이 일하는데 농성장 지키랴, 기자회견 가랴, 집회 가랴, 그러다 다시 가게로 와 물건 떼러가랴…. 지난 1년이 말이 1년이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부영 대표를 만나러 간 9일 오전. 물건 진열을 이제 막 끝낸 한 대표는 제일 먼저 집회 신고서를 보여줬다. 1년이 다가올 때쯤 그가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관할 경찰서인 삼산경찰서에 집회 신고서를 내는 것이었다.

 

이젠 집회 신고하는 것쯤은 시민단체보다 더 능숙하다며 웃는 그는 "최근 홈플러스 직원 이 찾아와 '자주 찾아오겠다. 입점하는 데 법적으로 문제없다'며 '제가 숱하게 겪었는데 결국 상인들이 진다'고 사실상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갔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고 받아친 뒤 곧바로 집회신고서를 냈다. 부개동이나 옥련동도 상황이 비슷비슷한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나 또 싸움을 준비할 수밖에. 집회신고는 이제 내가 더 잘한다"고 말했다.

 

"가진 자들의 권력이라고 하는 벽, 정말 높더라"

 

집회와 기자회견이 없는 날 한부영 대표의 일상은 평온하다. 한 대표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가게 문을 열고 물건을 정리하고 나면, 점심 때쯤 아내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게에 온다. 그러면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물건을 떼러 간다.

 

대책위를 1년 동안 꾸려오면서 한 대표도 맘 고생이 많았지만, 누구보다 가슴 조리며 지켜 봐야했던 이는 그의 아내다. 그러나 한 대표의 아내는 지금껏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남편의 끼니를 챙겨주고, 남편이 집회와 기자회견, 농성장 지킴이로 가게를 비우는 날이면 묵묵히 빈자리를 지킨다.

 

그런 아내에게 한 대표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자신들에게 닥친 난관 앞에 눈물 흘릴 겨를조차 없어서일까?

 

한 대표는 "지닌 재주가 없어 조그만 구멍 가게로 먹고 살고 있는데, 고생하는 아내에겐 할 말이 별로 없다. 게다가 전혀 안 그럴 것 같던 사람이 재판까지 받게 되니 제법 놀랐을 텐데…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라고 한 뒤 "1년을 버티는 동안 함께 막아준 시민단체도 고맙지만 더 고마운 사람은 아내"라고 말했다.

 

1년을 버티는 동안 한 대표가 피부로 실감하게 된 것은 권력의 장벽이었다. 가진 자들의 권력과 그 권력의 장벽이 높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

 

이제는 돌아섰다고 하는 한 대표도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여당 지지층이었다. 그랬던 그가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낙선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은 권력의 장벽 앞에서 좌절했기 때문이요, 그가 믿었던 가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정말 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업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입점이 보류되니 조금만 더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SSM 규제 법안을 다루는 임시국회는 늘 목전까지 갔다가 보류되거나 연기되고, 여야 합의도 무산되고, 그렇게 1년을 버티는 동안 권력을 가진 집단의 장벽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이런 정당을 지금까지 지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권력의 장벽이 높다고 느낀 것은 지지했던 정당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업조정 신청을 하기 위해 만나야 했던 슈퍼마켓협동조합과 중기중앙회, 그리고 중소기업청, 정부 이들 사이의 권력구조에 더 깊이 좌절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측이 갈산동점을 직영점에서 가맹점으로 바꾸자, 대책위는 다시 가맹점을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중기중앙회가 이를 반려했다. 이에 국무총리실에 '취소처분 행정심판'을 청구해 승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행정심판에서 승소해 다시 사업조정을 신청하려면 슈퍼마켓협동조합을 통해 해야 하나 슈퍼마켓협동조합이 중기중앙회의 눈치를 보느라 받아주지 않고, 또 중기중앙회 역시 중기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중기청은 또 정부의 눈치를 안 살필 수 없는 구조였던 것.

 

한 대표는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젠 제발 맘 편히 장사하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장사꾼이 경찰서에 집회 신고하러 다니고, 홈플러스측이 어떻게 나오나 살펴야 하는 긴장 속 에 살아야하는 현실이 너무 무섭다"라고 한 뒤 "결국 정부와 국회에 달렸다. 제발 이번만큼은 상인들을 살려줬으면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조정, #유통산업발전법,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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