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 대구 교동의 구제 골목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흔히들 대구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한다. 사고 방식도 고루하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하면 큰 일이나 난 것처럼 여기며, 취미나 가치관도 남들에 비해 튀지 않는 것을 최고라고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남보다 튀는 옷을 입은 젊은이는 눈총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몇 년 전 만 해도 대구 도심의 옷가게들은 일률적으로 똑같은 유행의 옷들을 팔았다. 그래서 어느 가게에서 옷 구경을 하건 비슷한 옷들이 쇼윈도에 장식된 것을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며 비슷한 옷들을 사입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현상이 급속도로 바뀌었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이다. 어느 가게를 가건 그 가게만의 옷이 있고, 사람들은 남과 다른 나만의 옷을 찾아서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는 것을 즐거워한다. 이렇듯 가게마다 특색있는 옷을 갖추게 된 이유에는 최근 들어 대구 대부분의 옷가게가 일본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보세 의류, 혹은 구제품을 많이 갖추어 놓고 팔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한 몫한다.

이에 남이 입던 것을 극도로 꺼리던 사람들도 최근 들어서 불어온 구제품의 열풍과 가게마다 신제품과 구제품을 섞어서 파는 전략에 휩쓸려 자연스레 구제품의 독특한 매력을 즐기게도 되었다.

대구 도심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규모의 구제 의류 골목이 형성되었다. 대구의 도심인 동성로 한일 극장 맞은 편에서 동아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작은 골목은 구제 의류를 파는 가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곳은 8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보세 의류와 구두를 주로 팔던 골목이었지만 최근 들어 나빠진 경기 탓과 아울렛 매장의 증가로 이 일대의 의류 가게는 거의 문을 닫고 구제품 가게가 들어섰다.

그 골목 일대가 모두 구제품을 취급하다 보니 가게마다 특성을 내세워서 품목을 정해 팔기도 한다. 숙녀복만 취급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부인복만 파는 곳, 아동복, 남성복만 파는 곳 등 각자 가게마다 특성이 있다.

또한 새옷 못지 않게 세탁과 수선이 잘 되어 있고, 매장에서 일일이 스팀 다리미로 옷을 손질하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새옷과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게다가 가격 면에서도 저렴하여, 국내에서 40여만 원 하는 브랜드 원피스 한 벌을 5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이 골목의 특징은 교동 시장과 연결되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함께 하는 곳이란 점을 들 수 있다. 천천히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교동시장 난전에서 오징어 파전과 수수떡을 부치며 삶은 소라와 대구의 명물 '양념 오뎅'을 팔고 있는 '할매'들을 만날 수 있다.

.
▲ 대구의 옛 송죽 극장 자리의 명품 구제 의류관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교동시장을 나와서 구 송죽극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또 하나의 대단위 구제 의류 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골목에는 대체로 가게가 크고 여러 점주가 대형 매장 안에서 개별 점포를 갖는 형태로 장사를 한다.

동남아나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구제 의류나 가방, 신발, 액세서리가 주류를 이루며, 가격또한 크게 비싸지 않다. 시중에서 40여만 원 정도 하는 'A급 짝퉁' 명품 가방을 이 골목에서는 7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올 여름에 유행인 '그라데이션 거즈 치마'는 8천원 정도이다.

이제, 불경기를 이기기 위한 상인들의 노력과 한 푼이라도 아끼며 자신을 치장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어울려 대구 구제 골목 시장은 활성화되고 있다. 구제 열풍이 부는 것도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고, 이제는 동네에 한 두 가게 정도는 존재할 만큼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문화가 되었다. 굳이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는 추억의'아나바다 운동'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대구의 문화 속에 자리잡은 구제품에 대한 매력은 한 동안 계속될 듯하다.


태그:#대구 구제 골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