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9년 1월 초 폐지된 KBS < TV, 책을 말하다 >에 대해 윗선의 개입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은 < TV, 책을 말하다 > 홈페이지.
 2009년 1월 초 폐지된 KBS < TV, 책을 말하다 >에 대해 윗선의 개입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은 < TV, 책을 말하다 > 홈페이지.
ⓒ KBS

관련사진보기


"(프로그램이) 갑자기 없어져서 (제작진도) 당황했다. (마지막) 방송 나가기 2~3일 전에 (폐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2009년 1월 초 KBS <TV, 책을 말하다> 폐지 당시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던 한 PD의 말이다. 이 PD는 1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윗선에서 (제작진에게) 어떤 설명도 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그램이 전격적으로 없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TV, 책을 말하다> 폐지 논란과 관련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아 폐지가 예상돼 있었다"는 KBS 측의 해명을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이다. 특히 출연자에 이어 제작진까지 KBS 윗선의 '낙하산식 방송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특정 출연자의 방송 출연 금지를 위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는 의혹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KBS "출연자 호불호 때문에 프로그램 폐지? 말도 안 된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제기한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어 <TV, 책을 말하다>를 폐지한 배경을 놓고 진중권 문화평론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의 문제제기가 잇따르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KBS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KBS는 지난 12일 오후 "<TV, 책을 말하다> 폐지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폐지 이유는 프로그램 노후화였을 뿐"이라며 "출연자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KBS는 이어 "자신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KBS 경영진이 단숨에 프로그램을 폐지했다는 진중권씨의 주장은 사실과 너무나도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며 "프로그램의 존폐 여부는 특정 경영진의 특정 출연진에 대한 선호 여부로 결정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수 년 간 KBS의 대표 브랜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던 프로그램을 단지 출연자 한 사람 때문에 폐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KBS는 또 "<TV, 책을 말하다>는 연간 시청률이 2006년 이후 계속 2%를 밑돌아 노후화에 따라 프로그램 브랜드 자체가 소진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당시 이사회와 시청자위원회 등에도 이를 충분히 설명했고 근거 자료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KBS는 "<TV, 책을 말하다>의 폐지는 프로그램 노후화와 이에 따른 대체 프로그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여기에 어떤 정치적 의도성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해석"이라고 밝혔다.

담당 PD "마지막 방송 나가기 2~3일 전, 프로그램 폐지 통보"

KBS < TV, 책을 말하다 >가 방송되던 당시의 스튜디오 모습
 KBS < TV, 책을 말하다 >가 방송되던 당시의 스튜디오 모습
ⓒ KBS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KBS 측의 설명은 <TV, 책을 말하다>가 폐지될 당시 프로그램 제작을 맡았던 담당 PD의 증언과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담당 PD는 "이병순 전 사장 이후로 (프로그램을) 폐지할 때 PD들한테 이해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왜 폐지되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고, 내부 PD들은 (폐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KBS 측은 프로그램 폐지 당시 이사회와 시청자위원회 등에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지만, 정작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고 있던 PD들은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KBS 측이 폐지 이유로 든 '낮은 시청률' 문제와 관련 이 PD는 "시청률이 낮아 없앤다, 만다 이야기는 있었지만, 공영방송으로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것이 기존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KBS 내부에서는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존속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과정 역시 이례적으로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KBS는 지난 8일에도 보도자료를 내 "'TV 책을 말하다' 최종회 방송 당시 '늦은 시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에 이어 'TV 책을 말하다'가 종영된다는 내용의 자막과 영상이 방송됐다"며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했다가 영원히 못 뵙게 되었다'는 진중권씨의 발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담당 PD는 "마지막 방송이 나가기 2~3일 전에 프로그램 폐지 통보를 받아서, 이미 녹화해 둔 마지막 방송 분량 뒤에 자막과 영상을 함께 넣어 방송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방송 촬영분을) 편집하고 있을 때 (프로그램 폐지) 결정이 났다"며 "(다음 방송을 위해 출연자를) 섭외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가기 2~3일 전까지 담당 PD, 진행자 모두 프로그램 폐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담당 PD는 "7년동안 공영방송의 공적인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폐지 결정은) 신중했어야 한다"며 "내부 PD들에게 설명조차 구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폐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폐지 이유에 대해서는 소문이 많지만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면서도 "이상하게 프로그램이 전격적으로 없어졌다. 속사정은 높은 분이 결정하셔서 알 길이 없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진중권·정재승 "폐지 이유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등장?"

김미화씨가 트위터를 통해 언급한 'KBS 블랙리스트' 의혹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는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김미화씨가 트위터를 통해 언급한 'KBS 블랙리스트' 의혹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는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프로그램 폐지가 담당 PD조차 모른 채 급작스럽게 진행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진행자 교체 및 특정 출연자를 '블록(차단)'하기 위한 일환으로 프로그램을 없앤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TV, 책을 말하다>가 폐지된 시점이 윤도현, 김제동, 김C 등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연예인들이 잇달아 KBS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했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열린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정권과 방송, 방송인의 퇴출과 프로그램 폐지의 연결고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권의 방송 장악 일정을 보게 되면, 대통령 형님의 친구라는 최시중이 방송위원장에 앉게 되고, 정연주 사장이 강제해임 당하고, 이병순이 KBS 사장으로 취임되고 첫 개편에서 정관용, 윤도현, 박인규가 퇴출당했다. 또한 <TV, 책을 말하다>는 지난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강수돌, 진중권이 출연한 이후 바로 폐지됐던 이상한 사례가 있다. 이병순 사장 임명을 앞두고는 김제동이 퇴출당했는데, 이는 이병순이 사장 선임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과잉충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진중권씨는 지난 6일 "'KBS 책을 말하다'는 높으신 분께서 진중권 나왔다고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버리라고 하셨다"며 자신에 대해 '블록'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TV, 책을 말하다>의 자문을 맡았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도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TV, 책을 말하다>의 급작스러운 폐지 이유가 '낙하산식 방송 개입' 때문이었다고 폭로해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정 교수는 "2008년 12월말 <TV, 책을 말하다> 담당 PD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폐지 결정됐다는 것이었다"면서 "이유를 물으니, 우리 제작진도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가 어제야 들었는데, 최근 2주 동안 진보적 지식인들이 패널로 많이 등장했다는 이유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 교수는 "그 안에 진중권 선생도 포함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TV, 책을 말하다>의 갑작스런 폐지는 '낙하산식 방송 개입'의 극단적인 표출이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권위와 전통을 지닌 소중한 지식프로그램 하나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윗선의 '낙하산식 방송개입'은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고, PD와 작가분들을 포함한 제작진을 자기검열과 자괴감에 빠뜨리며, 시청자들을 환멸하게 만든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태그:#TV 책을 말하다, #블랙리스트, #KBS, #김미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