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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강릉단오제를 찾았다. 강원도 바우길을 걸으며 푸른 바다와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강릉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 대관령을 넘어 백두대간을 보는 아이들 지난 6월 강릉단오제를 찾았다. 강원도 바우길을 걸으며 푸른 바다와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강릉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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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장마가 시작된단다. 장마가 끝나면 끝 모를 것 같은 무더위와 함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건만, 시작할 때의 부푼 마음은 어느 새 끝나 버리고, 방학에 대한 아쉬움과 밀린 숙제의 부담감으로 허둥대었던 기억만 남는다. 이런 방학을 보내는 건 교사이건 아이들이건 학부모이건 매 한가지이리라. 그래도, 무언가 기억에 남는 방학을 만들려면 '계획'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도 있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유익한 방학과 엄마가 기대하는 유익한 방학의 차이라고 할까? 2학기 진도 미리 나가면 그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학원을 기웃거리는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열 번의 예습보다 한 번의 복습이 더 의미 있다. 그 한 번의 복습도 학원에서 암기하고 시험 문제 푸는 것보다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학습 경험이 재조직화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교육 선진국라고 우리가 따라 해 보려고 애쓰는 핀란드와 스웨덴 교육이 그렇다.

지난 2003년 OECD 국가의 학업성취도 평가 프로그램인 PISA에서는 1997년부터 7년의 연구 끝에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개인의 핵심역량을 3가지로 제시했다. 도구를 상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이질적인 집단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다.

이 핵심역량은 다시 9가지로 구체화되는데 1. 언어나 상징, 텍스트를 상호작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2. 지식과 정보를 상호작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3. 기술을 상호작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4.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 5. 협동할 수 있는 능력, 6.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능력, 7. 큰 그림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8. 생애 계획과 개인적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 9. 권리와 흥미, 한계와 필요를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 좋은 말인 것 같고, 간단한 것 같고, 쉬울 것 같지만 일제고사 점수와 서열화된 대학을 향한 입시 교육에만 매진하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문제 있는 한국 교육으로는 길러내기 어려운 역량인 것 같다. 하지만 정부 당국에서도 이 핵심 역량을 새로 개정하는 2009년 미래형 교육과정의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글로벌 창의 인간을 육성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자동차의 속도에 길들어진 아이들이지만, 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느낄 줄 안다. 강원도 바우길을 걷고 있다.
▲ 행장 차리고 걷는 아이들 자동차의 속도에 길들어진 아이들이지만, 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느낄 줄 안다. 강원도 바우길을 걷고 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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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핵심 역량을 기르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실제적인 삶의 경험을 통한 학습 내용의 재조직화이다. 언어나 상징, 지식과 정보, 기술을 상호작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한 기본이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 삶의 경험을 통해 관계를 맺고, 갈등을 관리하고 협동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문제집만 들여다본다고 길러지는 역량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경험 속에서 생애 계획을 세우고, 자기의 필요와 요구를 채우기 위한 자기 규제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다. 이번 여름 방학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북한산 아랫 마을, 수유리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마을학교는 2003년부터 마을에서 주말계절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노는 토요일이 없던 시절부터 토요일 오후, 초등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과서적 지식을 벗어나 자연과 벗하는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학습 내용을 재조직화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자연생태교육, 평화교육, 밥상교육, 탈춤 전수 교육 등 주제는 다양했지만 꼭 빠지지 않고 주목했던 것이 바로 아이들이 관계 맺고 소통하는 능력,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대화를 지속해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에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의 흐름들을 만들어가고 그런 소통의 방법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서울 수유에 자리잡은 아름다운마을학교가 홍천 터전을 새로이 마련하고 웃음꽃 피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 마을학교 홍천 터전으로 놀러오세요. 서울 수유에 자리잡은 아름다운마을학교가 홍천 터전을 새로이 마련하고 웃음꽃 피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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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방학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 산줄기와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의 한 수계인 홍천강이 흐르는 강원도 홍천에서 계절학교를 진행한다. 8월 첫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 5일동안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과 함께 한다. 주제는 홍천의 산따라 물따라 역사따라 - 우리가 찾아가는 마을공동체 역사와 문화. 사회 시간에 배운 우리 나라 지리에 대해 백두대간과 한북 정맥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산줄기를 밟아보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합수되어 서울로 흐르는 홍천강 발원지 미약골도 찾아간다.

물은 산줄기와 산줄기가 갈라진 길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르며 한 데로 모여 천이 되고 강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밟으며 배우는 것이다. 역사 시간에 배운 동학 운동의 홍천 지역 유적지, 기미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것을 기념해서 만든 곳, 우리 시대 도시와 다른 농촌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5일장 구경, 함께 만들어 먹는 밥상, 시원한 계곡에서의 한바탕 물놀이도 준비되어 있다.

4박 5일이면 긴데 아이가 낯선 곳에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잠시 접어 두어도 좋겠다. 낯선 이들과 관계를 맺고,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고, 집에서는 해 보지 못할 경험을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도시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일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수동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http://cafe.daum.net/maeulschool 에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태그:#여름계절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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