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가 "없다"고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반세기 전 할리우드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하면서 미국은 보수성향이 짙어졌고 공산주의자들을 적발, 추방하기 위한 메카시즘의 강력한 광풍도 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47년 할리우드 영화 산업계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도 의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됐다. 그들은 공산당 당원이거나 그렇다고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말까지 할리우드의 예술가 수백 명이 정치적인 신념이나 가입한 조직(특히 공산당, 공산주의 활동) 때문에 연예산업에서 활동이 거부당해 일자리를 잃고 퇴출당했다. 그런데 반세기도 훌쩍 넘긴 이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방송인 김미화씨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언급한 KBS '블랙리스트'는 KBS 측이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출연자에 대해 돌연 출연을 취소하거나 교체한 것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왔던 상태에서 논란이 커졌다. 또 이에 대해 진중권, 문성근, 유창선 박사 등이 연이어 출연취소 경험을 폭로하면서 그 파장이 확대됐다.

 

블랙리스트 없다는데 왜 논란은 커질까

 

12일 오후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KBS '블랙리스트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현재의 쟁점과 앞으로 어떻게 대처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재 KBS '블랙리스트' 파문이 "반세기 전 마녀사냥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KBS '블랙리스트' 논란이 시작되면서 KBS 측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논란은 가라앉기는커녕 일파만파 더 커지고 있다. KBS가 없다는 '블랙리스트'는 진짜 없는 것일까, 없다는데 왜 논란은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이날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도 "지금 어떤 바보가 문서로 작성하고 회람하겠냐"며 "이제 이것(블랙리스트)이 문서로 존재하는가는 쟁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KBS는 '문서가 없다'면서 자신 있게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형식논리에만 치중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미 공공연하게 KBS내부에서 특정성향의 연예인들을 출연금지하는 가이드라인, 즉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특별한 비밀도 아니고 공공연한 사실을 KBS 사측만 모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또한 블랙리스트가 실제 문서로 존재하는가가 쟁점이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민간인 사찰'처럼 국가는 스스로 법치수호자라고 하지만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초법적인 권력 운영을 해왔고 권력집단의 자의적인 법운영이 횡행한 가운데 권력과 방송의 유착, 권력에 대한 방송가의 굴종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러한 큰 틀에서 맥락을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협동사무처장은 "여러 사람들의 증언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KBS는 손가락을 보라하고 있다"며 "김미화씨 발언 후에 KBS가 쌩난리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의 집단적 내부고발 대응이 필요해"

 

한편 KBS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자신의 KBS 출연취소 경험을 폭로한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이제 외부에 있는 여러 사람의 증언보다는 KBS 내부에 있는 한 명의 고발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며 KBS의 내부에서도 이 논란에 대해 입을 열어야할 때임을 시사했다.

 

유 박사는 여러 방송인들의 증언을 통해 더욱 논란이 가중된 'KBS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앞으로 이 사태의 추이를 좌우할 수 있는 내부고발의 활성화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현장에 있던 제작자들의 구제척인 사례에 대한 증언과 양심선언만 있으면 게임 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의 현실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KBS 내부 구성원들의 집단적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현상윤 KBS PD는 "새 노조의 활동을 비춰보면 (내부고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 PD는 "파업하느라 힘들어 이 부분에 관심을 깊게 못쓰고 있지만 파업 국면이 전환되면 내부의 상당한 행태를 발굴해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내부고발의 가능성을 내비췄다.

 

"KBS를 더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KBS 구성원들이 김미화씨로 촉발된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의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월급 주려고 수신료 내는 것 아니니 언론인과 공영방송의 명예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KBS를 더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 현상윤 KBS PD는 "우리가 부끄러움을 더 느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며 "그런 치욕에서 힘이 나올 수 있을테니 시민들이 견제와 감시의 채찍을 더 때려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이 문제가 논란으로 부상된 것은 잘됐다고 생각한다"며 "단지 '블랙리스트'만이 문제가 아니라 수신료인상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함께 묶어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장기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태그:#KBS, #블랙리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