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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7일째, KBS 새 노조(언론노조 KBS 본부)가 시민과 함께했다. 파업 집회가 아닌 축제이자 문화제인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을 통해서다. 7월 7일 오후 7시 "개념을 상실한 KBS에 개념을 탑재하겠다"는 행사가 KBS 본관 앞에서 시작되었다. 본래는 본관 바로 앞 계단에 무대를 마련하려 했지만 사측에서 수십 그루의 나무 화분을 계단에 놓았다. 화분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여러 대의 버스로 입구도 막았다. (관련 기사 : 'KBS판 명박산성'... "역시 특보 사장"). 문화제를 막기 위한 사측의 시도였지만 조합원들는 개의치 않고 무대를 인도 쪽에 차렸다.

 

사측의 끈질긴 방해에도 조합원과 시민들 1500여 명이 KBS 본관 앞에 운집했다. KBS 건물이 시작되는 부근 인도부터 줄지어 앉은 시민들은 건물이 끝나는 곳까지 자리했다. 이들은 더운 날씨에도 촛불을 들었다.

 

한마음으로 'KBS를 살리겠다'고 모인 이들이다. 트위터 아이디로 자신을 소개한 'anygate'(19)는 "KBS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화제에 와보니 희망이 보인다"며 "시민들도 많이 참석해서 축제 같다"고 말했다.

 

축제 같은 KBS 새 노조의 시민 문화제

 

 

그의 말마따나 이날 행사는 축제 같았다. 첫 무대를 장식한 인디 밴드 허클베리핀은 "화분이 무대를 막았지만 개념을 위한 의지는 막지 못할 것이다"라며 "여러분들의 파업 의지에 고개 끄덕이며 동의합니다, 힘내세요"라며 지지를 보냈다. 열정적인 무대에 참석자들도 한껏 들떠 절로 고개를 흔들며 무대를 즐겼다.  

 

다음 무대에서는 7명의 KBS 조합원들이 모여 만든 '개념시대'가 밝은 율동과 노래를 선보였다. '젊은 그대'에 맞춰 시민들의 촛불은 함께 흔들렸고 호응했다. 노래가 이어지던 중간부터 반주가 끊기자 시민들은 '젊은 그대'를 이어 부르며 무대를 채웠다. 시민과 조합원들이 함께 만든 자리였다.

 

파업 스타로 떠오른 박대기 기자의 인기를 견제하는 라디오 PD들이 만든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의 무대도 이어졌다. '몰골들'은 파업 승리를 다짐하며 서태지의 '필승'과 조합원들의 파업 찬성률인 '93.3%'를 전달하기 위해 배일호의 '99.9'를 개사한 노래를 선보였다. 다양하고 풍부한 무대에 시민들은 미니 콘서트를 보는 느낌으로 편하게 문화제에 임했다.

 

"<1박 2일>, 재방에 삼방 백방까지도 볼 수 있으니 힘내십시오"

 

KBS 새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김비서는 MB에게 KBS는 국민에게' 걸개를 마련해 온 '강남촛불'은 "KBS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국민들과 있는 힘껏 인공 호흡하겠다"며 "<1박 2일>을 재방, 삼방, 백방까지 볼 수 있으니 <시사투나잇> 다시 만드는 그날까지 힘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KBS측은 이번 파업을 불법이라고 몰지만 공영방송을 부정하며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부당노동행위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연주 전 사장이 강제로 물러난) 08년 08월 08일 이후 KBS를 보지 않았는데 무릎 꿇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 이제 좀 볼만해질 것 같다"며 파업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개그맨 노정렬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통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공정언론, 참언론 KBS 노조가 굳게 결의한 힘"이라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증거가 KBS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너무도 흡사한 목소리에 시민들은 "아~"라는 낮은 탄성을 지르며 노씨의 말을 경청했다.

 

"새 노조 쿨한 대응에 사측의 발광도 제 풀에 꺾일 전망"... 거침없는 '파업뉴스'

 

 

문화제 마지막은 조합원들이 준비한 '파업뉴스'로 채워졌다. "도저히 KBS <9시뉴스>를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9시뉴스>와 동시에 진행한" 파업뉴스에서는 톡톡 튀는 말들이 이어졌다.

 

파업뉴스는 "사측의 유치찬란한 수준의 극악무도한 블랙 저질 코미디를 보시겠다"며 파업을 막는 사측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업 기간 중 조합원들에게 끊임없이 회유책을 쓴 사측에 대해 "새 노조의 쿨한 대응에 사측의 발광도 제 풀에 꺾일 전망입니다"라며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파업뉴스 도중, 현장 중계를 하는 현장에 김인규 KBS 사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인규 KBS 사장의 얼굴을 본떠 만든 탈을 쓴 조합원이 등장한 것이다.

 

탈을 쓴 조합원은 "월급 한 푼 못 받고 쫄쫄 굶어봐야 본관 식당에서 사먹던 계란 프라이가 비싸구나 할 거냐"며 "이렇게 해선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 내 생각일 뿐 아니라 각하 생각도 그래"라고 말해 문화제 참석자들의 야유를 샀다. 이어 조합원은 "SBS만 (월드컵) 중계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절규하며 "2500원이나 6500원이나 만 원 밑은 돈이 아니니 수신료 그냥 올리자"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진심을 담아 "우~"를 외쳤다.

 

이러한 진풍경을 KBS 뉴스에서는 볼 수 없을 터. 문화제 사회를 본 이형걸 아나운서는 "내일 MBC 뉴스에 이 모습이 나갈 것"이라며 "꼭 MBC 뉴스를 보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동의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엄경철 위원장 "뜨거운 지지에 감사... 이길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온다"

 

문화제는 7시부터 세 시간 동안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트위터를 통해 문화제 소식을 접했다는 김윤슬(19)양은 "2년 동안 억눌려왔던 마음이 터져 나와 제대로 된 KBS를 만든다고 나선 것을 지지해주고 싶어서 나왔다"고 당차게 말했다.

 

김양의 꿈은 기자다. 자연스레 언론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그는 "KBS 뉴스를 보면 예전보다 많이 비판의식이 사라진 것 같았다"며 "새 노조가 큰 역할을 한다고 나서서 기쁘고 끝까지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을 남겼다.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한 문화제를 마친 엄경철 새 노조 위원장의 심경은 어떨까. 그는 상기되어 있었다. 엄 위원장은 "많은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주었다, 뜨거운 지지 열기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KBS가 2년 만에 처음으로 기지개를 켰다"며 "이번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KBS#파업#새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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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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