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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추위는 매서웠다. 막 움이 텄던 고구마와 감자의 싹은 얼어 버렸고, 자두꽃에 날아왔던 벌들도 날개를 접고 박제가 되었다. 겨울 추위를 이겨낸 마늘과 양파도 당황한 듯 성장을 멈추었다. 살아있는 농작물에게는 재앙이었던 셈이다. 숙지원이라고 그런 재앙을 비켜갈 수 없었다.

지난 6월26일, 감자를 캤다. 그보다 1주일 전, 제자의 아이들과 몇 주 걷어 냈더니 알이 너무 잘기에 1주일을 더 기다렸건만 1주일 동안 감자는 더 커지지 않았다. 저울에 달아보니 겨우 16kg 밖에 안 됐다. 알이 작으니 중량은 16kg이라고 해도 10kg박스 하나에서 남는 것이 없다. 작년에 4박스(40kg)를 수확했는데 3분의 1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매실은 12kg을 수확했는데 수확량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작년에는 수확 가능한 나무가 3주에 불과했던 반면 금년에는 수확 가능한 나무가 8주로 늘었기 때문에 수확량을 30kg 이상 기대했는데 예상의 3분의 1수준에 그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알이 굵고 완전한 친환경 매실이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아내는 술도 담그고 큰 아들이 좋아한다며 매실 짱아지도 담았다.

개복숭아는 작년의 절반정도인 10kg정도 수확하였는데 술을 담가도 좋지만 엑기스를 만들어 복용하면 천식에 효과가 있다고 찾았던 수원 사는 친구에게 보냈다. 담근 술을 가끔 반주로 한 잔씩 마시는데 약으로서 효능을 따지기 전에 맛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 먹은 후 탈이 없어 괜찮게 여기는 술이다.금년에도 술을 담글 수 없으니 있는 술을 내년까지 아껴 먹어야 할까 싶다.

    둘쨋날 수확한 양이다. 금년에는 많은 친지들과 나눌 수 없음이 유감스럽다.
▲ 자두 둘쨋날 수확한 양이다. 금년에는 많은 친지들과 나눌 수 없음이 유감스럽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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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역시 작년의 1/3 수준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두 제자들의 가족과 후배, 아내의 친구가 와서 먹고 챙겨간 양과 마을의 박영감님을 비롯한 몇 집에 덜어주고도 집에 와서 저울에 달아보니 첫날에는 8kg, 둘째 날에는 9kg정도 남은 것 같다. 작년에는 두 동생 가족과 그 친구들까지 또 후배들까지 불러 따는 재미를 맛보도록 했는데 금년에는 두어 번 따고 나니 끝이다. 자두를 좋아하는 아내는 양이 적어 서운해 한다.

마늘은 수량은 많지만 알이 잘기 때문에 4접(400개)으로 잡았는데 의외로 가격이 높아 아내가 "오지다"고 하는 작물이다. 2접만 더 사면 금년 김장까지 가능하다니 우리가 시장에서 구입할 때의 가격이 얼마가 되었건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오디와 보리수 같은 생과류, 양파, 상추, 부추 등의 채소가격은 아예 약략스럽게 계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일일이 양을 잴 수 없을 뿐 아니라 가격 비교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매일 오가는 기름값만 나와도 다행"이라고 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더 무슨 욕심을 부릴 것인가!

    아내와 나의 정성으로 가꾼 마늘이기에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롭다.
▲ 마늘 아내와 나의 정성으로 가꾼 마늘이기에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롭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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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으로 야콘을 기획 판매(?)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장 가격에 비해 싼 가격이었다고 스스로를 변명했지만 내가 야박한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팔고 난 뒷맛이 영 개운하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리는 먹지 않아 버리려는 토란대를 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냥 주었더니 뜻밖에 3만원을 주는 바람에 졸지에 판매한 꼴이 되었는데 이후로 현금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도 작년에는 숙지원에서 수확한 농산물의 가치를 장난 삼아 생산물을 시장에서 구입한 가격으로 환산하여 대략의 수입을 추정해 봤는데 그런대로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내가 수고한 땀의 가치를 객관적인 자료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숙지원에서 나오는 모든 과일과 채소는 돈의 가치로 환산하지 않을 작정이다. 생계형 상업농을 하자는 귀촌도 아니고 모든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목표도 없는데 굳이 고작 텃밭 농사에 투입된 노동의 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따지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 그리고 아내와 나의 건강이 나아진 점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년 상반기 수확은 끝났다. 살다보면 비바람 부는 날, 때 아니게 추운 날도 있는 법이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춥다고 아니면 덥다고 하늘만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가을 수확을 기대한다. 고구마와 야콘, 대추, 감에 이어 금년에는 사과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나무를 보면서, 또 겨울이면 기다림에 숨을 죽이는 나무를 보면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 아닐까?

지금 숙지원에는 여름 꽃이 한창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텃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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