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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올해 교장공모대상 학교의 학교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한 교장공모 내용과 진행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나타난 문제점을 밝혀서 다음 번에 진행하는 교장공모 행사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세 번째로, 교장공모 때 응모한 지원자들이 제출한 학교경영계획서를 살펴보고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두께와 제본 상태, 화려한 디자인에 놀랐습니다

 

이번에 저는 우리학교 교장 공모하는 절차와 내용을 마련하는데는 참여했지만, 심사위원으로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규정대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보니 심사위원 열 명 중 교사는 두 명 밖에 참여할 수 밖에 없어, 우리학교는 교장선생님과 부장선생님 한 분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저는 교사가 심사위원에 20%밖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문제라고 보고 있고, 교사가 최소 50%는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응모한 지원자들의 학교경영계획서를 살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전체 지원자 학교경영계획서 중 우리학교 심사위원들이 가장 점수를 많이 준 세 분의 것만 학교운영위 심사과정에서 잠시 볼 수 있었습니다. 세 분의 학교 경영계획서를 받아든 순간 두께, 제본 상태에 먼저 놀랐습니다. 이어서 표지와 속지의 화려한 디자인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두꺼운 학교경영계획서의 진짜 속 내용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학교운영위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살펴볼 시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이 내세우고 있는 내용의 특징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마디로 현장 교사라면 그동안 질리도록 봐온 학교교육과정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먼저 눈에 확 띄는 것은 학교경영계획서의 전체 디자인과 제본 상태와 내용보다 몇 배 더 차지하는 '성과물'같은 시각적인 것들입니다.

 

29년을 학교 현장에 있어온 저도 학교경영계획서를 봐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잘 파악하기 힘든데, 학교경영계획서를 처음 보는 심사위원 중 80%의 학교 밖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학교경영계획서를 잠시 살펴본 느낌은 심사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이 누구한테 점수를 더 줘야할지 결정하기가 참 힘들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심사위원이었다고 해도 디자인에 정성이 들어간 것에 점수를 더 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지원자들이 제출한 학교경영계획서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의 학교경영계획서에는 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학교 뿐만이 아니라, 이번에 다른 학교에 지원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교장공모에 지원했나하는 것을요. 마침 서울시교육청이 작성한 '2010. 9. 1자 교장공모제 추진계획' 교장공모 계획서 3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습니다.

 

- 심사 당일부터 5월말까지 지원자의 학교경영계획서를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하도록 함

 

44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지원자들의 학교경영계획서를 다운받으려고 보니, 계획서에 나온 내용과 달리 대부분 학교에서는 심사 당일부터가 아닌 심사 후에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더군요. 지금은 지워져서 없지만, 다행히도 저는 초등학교 교장공모 대상학교 전체 44개 학교 중 학교 홈페이지 전체에 로그인을 걸어놓아 들어가 볼 수 없는 한 개 학교와 학교경영계획서를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은 한 개 학교, 모두 두 학교를 제외하고 42개 학교 총 217분의 학교경영계획서를 다운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경영계획서를 다운 받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경영계획서의 내용 외에 지원자의 자세한 개인정보까지 함께 올려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를 알고 해당학교 행정실에 급히 알려서 고치라고 부탁해서 고친 일도 있습니다.

 

헉! 서로 다른 사람이 낸 학교경영계획서가 똑같다니?

 

 

학교 경영계획서를 다운받아 일부는 프린트를 해서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살펴보다보니 이상하게도 내용과 글꼴, 부제목 디자인은 물론 '맺음말'까지 똑같은 학교 경영계획서가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학교에서 두 사람이 낸 것이 똑같은 것이 두 학교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간

 

 '내가 깜박하고 인쇄를 두 번 눌렀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파일을 열어서 살펴보니 놀랍게도 다른 두 사람이 낸 학교경영계획서가 아주 비슷하다 못해 거의 같았습니다. 누가 누구 것을 베껴서 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학교 교장이라는 자리에 지원하면서 남의 것을 그대로 자신의 학교경영계획서라고 낼 수 있는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현재까지 살펴본 교장공모 지원자들이 제출한 학교경영계획서 내용을 살펴보니 부분 부분 같은 내용, 같은 표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교경영계획서를 살펴보면서 분명 모두 다 다른 학교 다른 사람들이 낸 것인데도 모두 다 한 사람이 낸 것처럼 같은 내용이 수없이 반복되어서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제가 다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내용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학교경영계획서

 

수많은 학교 경영계획서를 살펴보고 얻은 학교경영계획서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누구 것이 원본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서로 부분 부분을 베껴서 재구성하고 재편집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지원한 해당학교의 학교교육과정 내용을 그대로 베껴낸 것도 많습니다. 심지어 학교장이 손댈 수 없는 교육과정 내용, 국가교육과정에 나와있는 교과 목표까지 그대로 베껴서 쓴 것도 많았습니다.

 

셋째, 멋있는 말을 앞세운 것이 많았습니다.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말은 'DREAM', 'VISION', 'HAPPY', 'UP', '꿈'. '감동'이었습니다. SWOT이론을 내세운 곳도 여럿 있었습니다.       

 

넷째, 학교장이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내세운 것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체육관을 세우겠다',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씌우겠다'와 같은 것은 학교장이 결정할 수 없는 일로, 해당 교육청 예산과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 등을 따져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자기 자랑을 늘어놓은 것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동안 상을 탄 일이나 업적을 늘어놓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늘어놓은 자기 자랑들은 진정하게 아이들의 교실 교육을 위해 힘써서 얻은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교감과 교장 승진에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제가 살펴본 수많은 학교경영계획서 중에 자신의 교육적 소신을 자신의 목소리로 성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학교경영계획서 중심으로만 그 사람이 한 학교를 이끌어갈 교장 자격으로 적합한 지  판단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서로 된 학교경영계획서는 멋있는 말 가져다가 돈 많이 들여서 실력있는 디자인 업체에 부탁해서 근사하게 포장하면 얼마든지 멋있고 감동을 주는 계획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발표연습을 많이 하면, 교사와 학부모 앞에서 멋있는 매너로 학교경영계획서를 멋있게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장은 계획서를 멋있게 꾸미고 학교경영계획서를 매끄럽게 발표한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이 실시하고 있는 교장공모제도에서는 이 점을 소홀히 해서 이번에 이뤄진 교장공모가 지원자들이 제출한 부실한 학교경영계획서만큼이나 부실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교육청은 교장공모 지원자들이 낸 학교경영계획서의 내용을  제대로 점검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똑같은 내용의 학교경영계획서를 낸 사람을 모르고 이번에 교장으로 선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장으로 결정된 뒤에 똑같은 내용의 학교경영계획서를 낸 것이 발견되면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태그:#서울시교육청교장공모, #교장공모학교경영계획서,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 #학교경영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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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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