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길은 없다. 마찬가지로 사연 없는 사람도 없다. 길을 걷는 사람이나 길과 함께 사는 사람 모두 사연 따라 산다. 그래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연 속을 걷는 것과 같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열리고 난 후로 전국 방방곡곡에 길이 났다. 잊힌 길이 다시 나기도 하고, 없던 길이 새로 나기도 했다. 바야흐로 걷기가 '유행'이 되었다. 서로 빨리 못가 안달인 시대에 느리게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어떤 길은 그 길과, 또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버린 채 아무개 길이라고 이름만 내건 경우도 있어 참으로 아쉽다. 예를 들면 제주도가 아닌 곳에 난 길의 이름이 'ㅇㅇ올레길'이다. 그 지방과 마을이 살아온 이력을 보듬지 않고 유행 따라 낸 길, '억지길'이다.
'섬 순례자' 강제윤 시인의 새 책 <올레, 사랑을 만나다>가 반가운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가 1년여 동안 올레를 걸으며 담은 길의 사연, 길과 함께 사는 제주사람들의 사연이 책에 수북하게 담겨 있다.
빼어난 풍광에 홀리지 않았다. 스스로 상념에 취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싸한 지식 놀음에 빠져 냉소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까닭은 그가 길과 함께 사람을, 사연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인은 사람이 품은 사연 중 으뜸인 '사랑'을 꼭 붙잡았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고 노래했던 그의 시처럼.
<올레, 사랑을 만나다>는 '제주도 사랑보고서'다. 17년 기나긴 기다림 끝에 사랑을 이룬 어느 부부, 원수 집안 여자를 사랑한 가파도 이장, 죽음으로 사랑을 지킨 제주 여자 홍윤애….
또 <올레, 사랑을 만나다>는 '제주도 사람들 인생보고서'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함께 올레길을 낸 조폭두목 출신 서동철 탐사대장의 파란만장한 삶, 캐나다에서 온 문학청년 데럴 쿠트의 제주 사랑, 허름한 30년 국숫집 춘자싸롱 주인 마담의 굴곡진 인생, 일제의 야만을 몸소 겪었다는 모슬포 감자 할머니의 이야기 등…….
좀처럼 남의 책에 '추천 글' 따위를 쓰지 않는 걸로 유명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치며 '깐깐한 악명(?)'을 떨친 그가 흔쾌히 이 책에 추천 글을 실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면, 당신은 아마도 제주 풍경의 속살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속살까지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중략… 단언컨대 나그네가 제대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더 이상의 주절은 덧칠하기에 불과하다. 주섬주섬 운동화를 매만지는 그대, 훌쩍 떠나시라. '사랑에 빠진 올레'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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