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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 최저임금을 5180원(최종 511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한 소식을 듣고, "그것도 적다"는 생각은 했지만, 1000원이라도 인상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최저임금은 4110원, 그런데 사실 식당에서 제대로 된 밥 한끼 사먹을라치면 그 이상의 돈이 든다. 그러니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최저임금 정도만 받고 일하는 사람이 한 시간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도 밥 한끼 먹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가 아니라, "일한 자, 그래도 못 먹는다"인 것이다.

 경남지역 최저임금연대는 24일 오전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산정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남지역 최저임금연대는 24일 오전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산정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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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에게, 특히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턱없이 부족하기만한 대학생들에게 최저임금 4110원은 너무 적다.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엔 그 생활이 너무 벅차, 결국 휴학을 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대학생들도 이 정도인데, 최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다른 분들은 오죽할까.

나 역시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나름 알바 두 개를 하는데도 생활비 감당하기가 벅차다. 그러니 다음 학기 학비를 버는 건 꿈의 일. 사실 자취생이라 드는 돈이 더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이런 내 현실이 그리고 주변의 대학생들이 겪는 문제가 심각하단 생각이 들었다. 높은 등록금과 감당 안 되는 생활비를 '혼자'서 감당하는 건 무리이다. 나라에서 대학 교육을 지원을 해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지역에서 해주면 좀 낫지 않을까, 아니면 최저임금이 올라 아르바이트로도 학비, 생활비, 용돈을 해결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 10원 인상안을 내놓았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저임금'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내 일'이기 때문이었다. 동결도, 10원 인상도 지금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처럼 허덕이며 살았듯 더 허덕이며 살아보라는 고약한 심보에 불과해 보인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취업후 상환제 전면수정과 등록금 상한제 도입을 요구하며 13일 오후 국회앞에서 기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취업후 상환제 전면수정과 등록금 상한제 도입을 요구하며 13일 오후 국회앞에서 기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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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얼마 전에 청년유니온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교수님께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이하 공익위원) 분들이 교수님이신데 제자입장에서 편지를 쓰면 좀 더 호소력이 있지 않겠냐는 거다. 글재주가 없는 내 입장에선, 다른 사람이 쓰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당신들의 제자가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현실을 보여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썼다(편지 전문은 하단에 기고).

많은 대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식을 위한 공부보다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공부를 하고, 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하기보다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이 더 많다.

모순이지 않은가?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공부보다는 돈을 버는 게 '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대학생. 그런 20대들에 대한 조금의 연민이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안타까운 감정이 든다면, 최저임금을 올려줘야 할 것이다.

다음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교수님들께 쓴 편지전문.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의 한 국립(법인)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4학년이고, 현재는 휴학 중입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스펙을 쌓기 위해서 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휴학을 한 상태가 아니라,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한, 생계형 휴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도움과 소액의 장학금으로 몇 번의 등록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평상 사립대보다 싼 등록금임에도, 부담이 되어 2학기 정도 학자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하더라도, 생활비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 제 고향은 강화도 입니다. 부모님은 강화에 계시고, 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방을 얻을 순 없었고, 그나마 고시원 생활로 시작하였습니다. 몸 하나 누울 공간 밖에 안 되는 그 방값은 20만 원이 조금 안 되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용돈,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께 대부분 도움을 받았고, 조금씩은 아르바이트 하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습니다.

사실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것에 대해 별로 죄송하단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것 같았고, 부모님도 별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등록금을 낼 때면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긴 하셨지만요.

하지만 안정적이지도, 일정하지도 않는 아버지의 수입과 그리고 조금도 다르지 않는 어머니의 수입은 제가 아무리 무심하다 하더라도 느낄 수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버거워하시는 모습을 때때로 보게 되었고,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 건지 하는 자책과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때론 부모님을 원망도 하면서요.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 왜 부모님께 죄짓는 기분이 들어야 하며, 부모님도 왜 자식 뒷바라지로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지 사실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그냥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힘겹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점차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게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기에 수입엔 늘 한계가 있었고, 생활의 부담을 덜 수는 없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이 강의를 하고 계시는 대학에도, 저와 같은 제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등록금과 생활비 내주는 게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부모님들도 계실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님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자들과 그들의 부모가 받는 고통을 당장 덜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록금과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자들이 받는 시급이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장 저부터도 4110원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업장에서 일했었고, 그나마도 일을 정말 많이 해야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택했던 건 편의점 야간 알바 입니다. 고된 아르바이트와 바쁜 학교생활로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갔습니다.

411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 돈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대체로 평일 오전오후는 수업으로 인해 알바를 할 수 없다고 하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 됩니다.

하지만 평일 저녁 얼마나 일해야 생활비를 채울 수 있을까요? 주말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해야 등록금을 벌 수 있을까요? 저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간 것이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간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부모님 역시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와 행복을 위해 대학을 보낸 거지, 일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는,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고통을 받게 하기위해 보낸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또한 자녀의 대학 뒷바라지로 자신들의 삶은 또 잠시 포기해야 되는 걸 생각하진 않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지난 생일도 저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를 하고 집에 가니 너무 지쳐서 바로 잠들었고, 결국 다시 출근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깨면서 그날 저는 제 생일인지도 잊은 채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명절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냥 어리광 섞인 말투로 딸 생일날 전화 한통 하지 않아 서운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의 대답에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차라리 어머니께서 제 생일인 걸 깜빡했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아빠도 엄마도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혹여 네가 용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를 할 수가 없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만약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면, 부모님도 저도 전화 한 통 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생인 저는 빚쟁이가 된 기분입니다. 사회로부터, 부모로부터,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그 빚을 저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 혼자 극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빚쟁이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루하루 알바로 허덕이는 삶이 아닌, 부모님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일한 노동의 대가가 오르는 것이 그 빚을,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내년 최저임금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고려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부디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수님의 제자들과 더 많은 대학생, 그리고 젊은이들이 받는 부담과 고통을 헤아려, 조금이라도 덜어 주실 것이라 믿으며 글을 마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인천대학교 박보은 올림.


#최저임금#최저임금 공익위원에게 쓴 편지#대학생 아르바이트생#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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