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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신전. 700년동안 타고 있는 불꽃과 조로아스터의 영정.
 불의 신전. 700년동안 타고 있는 불꽃과 조로아스터의 영정.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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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에서 유래한 조로아스터교

오늘 방문한 곳은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의 유적지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6백 년 전 고대 이란에서 생겨난 종교로 지금은 교도가 15만에 불과한 작은 종교입니다. 허나 한때는 이란을 지배했던 종교였습니다.

이란의 자랑이자 위대한 군주인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가 조로아스터교 신자였고, 이란 역사에서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던 사산 왕조 때도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란의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이슬람교 유적지와 더불어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유적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배화교라고도 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심장부인 아테슈카데 사원에는 700년 동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불을 꺼뜨리지 않고 돌보는 게 이 종교의 중요한 의식입니다. 배화교는 이 꺼지지 않는 불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우리 일행이 맛있는 피자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테슈카데를 방문했을 때 정말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불꽃은,  '애걔, 저거야?' 할 만큼 작았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해서 꽤 크게 타오르는 불을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불은 강한 느낌으로 차분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싶었습니다. 교세가 약해져서 신도 15만의 작은 종교로 전락했지만 이 작은 종교는 2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작은 종교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불꽃 옆에는 수염을 기르고 눈빛이 심상찮은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조로아스터라고 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자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모습은 위대한 종교인의 초상화를 봤을 때처럼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강한 불꽃을 일으키며 700년 동안 타고 있는 불과 강한 포스를 내뿜는 조로아스터의 영정, 그리고 조용한 관리인.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이곳이 우리가 떠들고 구경삼아 기웃거릴 광광지가 아니라 신성한 사원이라는 걸 말없이 일깨워주었습니다. 사실 이곳 아테슈카데는 조로아스터교인들의 중요한 순례지라고 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심장부인 아테슈카데의 외관. 건물입구의 위쪽에 보이는 푸른색 부조는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 조류인간의 모습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심장부인 아테슈카데의 외관. 건물입구의 위쪽에 보이는 푸른색 부조는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 조류인간의 모습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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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슈카데 건물 밖 마당에는 이란의 대부분 공공장소처럼 둥근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에는 아테슈카데 건물의 모습이 뚜렷하게 비쳤습니다. 연못에 내려앉은 건물과 실존하는 건물은 대칭을 이루면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 연못에 비친 아테슈카데를 찍고 나오면서 "이 종교가 마음에 드네. 한 번 고려해봐야겠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와아'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많은 사회의 소수자가 그렇듯 대형 종교들 틈바구니에서 이런 작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 또한 소수자의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런 모험을 감당하기에 우리 모두는 너무나 영악하다는 걸 서로 알고 있어 우스개 농담으로 받아넘긴 웃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도 그녀의 말처럼 이 종교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교세가 위축된 종교는 사뭇 차분하고 겸손한 모양새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리를 떠나서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든 돈이 많아지고 사람이 모이면 오만해지고 부패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수리가 오른 눈을 먼저 먹으면 좋은 곳으로...조장 풍습 어린 '침묵의 탑'

담 너머로 우뚝 솟은 민둥산이 조로아스터교의 조장터인 침묵의 탑이다.
 담 너머로 우뚝 솟은 민둥산이 조로아스터교의 조장터인 침묵의 탑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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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정은 침묵의 탑입니다. 침묵의 탑은 조로아스터교의 장례터로 새가 주검을 파먹게 하는 장사를 치르는 곳입니다. 조로아스터교인들도 티베트 사람들처럼 독수리가 시신을 파먹게 하는 조장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조장터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여기서 조장이 행해졌는데 팔레비 왕조 때 전근대적이라 하여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침묵의 탑은 가파른 민둥산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좀 힘들었습니다. 산 정상께 올라가니 둥근 벽돌담이 나타났습니다. 벽돌담에는 작은 구멍이 개구멍처럼 보였는데 탑 위로 오르려면 이리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어렵게 개구멍을 통과하고 드디어 조장터로 들어섰습니다. 담이 쳐진 공간은 꽤 넓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시신은 사라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있는 이곳에 시체를 던져놓으면 먼 하늘에서 독수리 떼가 새까맣게 몰려와서 살점을 남김없이 먹는 것이지요.

독수리가 시신을 먹을 때 성직자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고 합니다. 독수리가 오른쪽 눈을 먼저 파먹는지, 아니면 왼쪽 눈을 먼저 파먹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요. 오른쪽 눈을 먼저 파먹으면 그 영혼은 좋은 곳으로 가고, 왼쪽 눈을 먼저 파먹는다면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침묵의 탑 중앙에는 움푹 파인 구멍이 있었습니다. 구멍은 독수리들이 먹고 남은 뼈를 한곳에 모아 약물 처리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화장은 그래도 뼛가루라도 남기는데 이 장례풍습은 육신을 완전히 소멸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례풍습입니다. 어차피 죽어서 가져가지도 않을 육신인데 죽으면서 독수리 배라도 채워주니 좋은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고, 또 뼈까지 없앰으로써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풍습이 지금은 사라진 게 안타까웠습니다.

조장터를 둘러보고 있을 때 어둠이 점점 짙어졌습니다. 조용하고 황량한 조장터와 달리 저 멀리 야즈드에서는 불빛이 들어오면서 단조로운 황토빛 도시가 반짝거리는 사막도시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공간에서 삶의 영역을 지켜보는 맛은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태그:#조로아스터교, #아테슈카데, #침묵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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