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싸워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동안의 관행·타성과도 싸워야 하고 현실을 오도하는 언론과도 싸워야 하고 중앙정부와도 싸워야 한다."

 

22일 오전 수원시 장애인 종합 복지관에서 만난 염태영(49) 수원시장 당선자에겐 '싸워야 할 일' 혹은 '고쳐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애초 인수위 사무실이 차려진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으로 예정됐던 인터뷰 장소가 수원시 장애인 종합 복지관으로 변경된 것도 그의 빡빡한 일정 탓이었다. 염 당선자의 수행비서는 "1년이 넘게 선거를 준비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두 달 안에 다 만나려고 하니 시간이 도저히 안 난다"며 혀를 내둘렀다.

 

염 당선자 본인도 "집에서 잠만 잘 수 있다면 날개를 달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피곤한 기색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수원 변화의 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사업 전환 계획으로 논란이 불거진 수원 경전철 사업이다.

 

그는 당선 전에도 고가 방식의 수원 경전철 사업을 중지하고 해당 노선을 따라 노면전차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예산과 각종 문화재가 있는 수원의 경관을 고려할 때 노면전차가 경전철보다 더 적합하단 주장이었다. 염 당선자는 이날 인터뷰에서 "(고가방식의 경전철은) 돈만 많이 들고 효율성도 없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염 당선자의 이러한 계획은 현재 경전철 사업이 예정된 의정부, 용인과 함께 거론되며 일부 언론으로부터 '제2의 사패산 터널'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정권 인수위가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중단시켰던 사패산 터널과 같이 수원 등의 경전철 사업도 '일시중지'했다가 결국 '원상복귀'할 것이란 주장이다.  

 

"어제도 신문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다. 경전철 사업에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시장이 바뀔 때마다 사업 유지 여부를 놓고 (시장 후보에게) 압박을 가하겠나. 한편으론 공직자 중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이런 장난을 했는지 밝혀낼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기둥을) 높이 세워 전철이 다니는 것을 건설업자가 아닌 다음에야 몇 명이나 찬성하겠나."

 

'혁신의 칼' 가는 첫 야당 수원시장... "'가지치기'해야 할 일 너무 많다"

 

그가 벼르고 있는 것은 '수원 경전철'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조 이후 수원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개혁진보진영의 수장"이란 주위의 평가에 걸맞게 '혁신의 칼'을 갈고 있었다.

 

염 당선자는 서호 하수종말처리장에 건설 예정인 파3골프장에 대해서도 추후 타당성을 검토해야 할 사업으로 꼽았다. 

 

그는 "이미 공영 골프연습장이 있는데도 또 하나의 골프연습장을 만든다는 게 시민 정서상 맞겠나"라며 "차라리 주민들에게 그곳을 테니스장으로 쓸지, 골프장으로 쓸지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 당선자는 또 '백화점 간 유통대전'이 예상되는 수원역 인근 지역을 '복마전(伏魔殿)'으로 지목했다. 현재 애경백화점이 들어서 있는 수원역 서쪽엔 롯데백화점이 세워질 예정이다.

 

염 당선자는 "수원역 앞 상권을 애경백화점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데 시가 철저한 검토 없이 바로 뒤에 롯데백화점이 설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비판했다.

 

"롯데백화점 때문에 애경백화점이 자신들도 증축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역 근처 길거리 상권이 다 죽는다. 시가 백화점들이 얻을 개발 차익도 고려치 않고 통째로 내줬다. 교통대책도 전무하다. 여기에 무슨 복마전들이 끼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전에 아파트 개발 허가도 막 내줬다. 제 자존심으론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저항도 있겠지만 깨끗하고 걸림돌 없는 제가 '가지치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최근 특정 고교 중심의 인사가 이어지며 '개혁 대상'으로 꼽힌 수원의 공직사회도 염 당선자에게는 '가지치기'해야 할 존재다. 그러나 염 당선자는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중앙정부가 분류한 '불합리한 행정체계'를 들었다.  

 

그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유일한 기초단체인데도 부시장의 행정직급만 2급일 뿐 3급 공무원이 아무도 없다, 반면 4급 공무원은 20명이 넘는다"면서 "동기 부여와 개인의 전망이 없다면 부정부패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질적인 인사적체'가 '청렴도 하락'을 불러오고 있단 분석이었다. 염 당선자는 '중앙정부와 투쟁'에서 해법을 얻어내겠다고 했다.  

 

"울산광역시의 경우, 수원과 인구수가 같은데도 '광역시'로 분류되면서 공무원 수가 수원보다 2000명이나 더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체계에서 통일·균형은 아무것도 없다. 중앙이 이처럼 행정체계를 마음대로 분류해놓고 직급에 대한 배려조차 없다. 이는 중앙정부의 횡포로 봐야 하지 않겠나. 정책결정권한도 71 대 29로 지방정부의 권한이 턱없이 적다. 뜻있고 젊은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와 싸워서 권한을 이양 받아야 한다."

 

"뜻있고 젊은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와 싸워 권한 이양 받아야"

 

염 당선자의 '혁신 드라이브'는 선거 운동 당시부터 예고됐다. 그는 지난 5월 3일 예비후보로서 지지자들과 함께 수원 팔달산의 정조대왕 동상을 찾아 "개혁과 소통, 열린 시정을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염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를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열망"이라고 해석했다. 한나라당의 공천 실패,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대한 경고 등 다른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오랫동안 정체된 수원의 활기를 되찾아달란 시민들의 요구가 '주'란 얘기였다.

 

"김용서 현 수원시장의 연세가 일흔 정도 된다. 수원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분들의 연세가 그 정도라 보면 된다. 하지만 영통구 등 지역민 평균 연령을 보면 수원은 상당히 젊은 도시다. 이처럼 지역 사회의 주류 혹은 리더와 지역민들의 '격차'가 커지면서 수원이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단 진단이 곳곳에서 나왔다. 더군다나 지난해 국가권익위의 지자체 청렴도 조사에서 수원이 거의 꼴지를 차지하면서 시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구겨진 상태였다." 

 

'혁신'의 밑그림에선 자신이 평생 살아온 수원에 대한 짙은 애정도 함께 엿보였다. 그는 지난 2006년 수원시장 출마 때도 "수원은 내겐 숙명적 연인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우선 수원은 염 당선자 본인만이 아니라 250년 전부터 그의 조상(파주 염씨)들이 살던 곳이다. 부모와 조부모를 일찍이 여읜 탓에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대 농대로 진학하게 된 일도 그의 삶을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여물게 했다. 또한 지역 야학교사를 하며 지금의 부인을 만난 사연까지 알게 되면 수원과 그의 삶이 '숙명'으로 표현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외국출장을 제외하곤 수원을 떠나본 적이 없다. 삼성 등에 다닐 때도, 참여정부 비서관을 할 때도 수원에서 출퇴근했다. 20년 전 시민단체 창립 제안을 받았을 때도 수원이었기에 할 수 있었다. 수원의 골목 하나, 나무 하나에도 애정이 간다. 심재덕 전 시장(무소속)은 동문도 아닌 제게 '자네 같은 사람이 시장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그게 은연 중 각인된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일생을 수원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애정만큼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염 당선자의 인수위인 '좋은시장준비위'는 지난 17일 ▲일자리 ▲친환경 무상급식 ▲도시재생 ▲시민참여 ▲환경수도 등 다섯 가지 주제로 TF팀을 꾸려 새로운 4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 중 도시재생과 관련, 수원 율전동, 정자동, 조원동 등에 '시민참여형 뉴타운'. 즉 '웰타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염 당선자는 "구도심의 낙후한 주거지역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뉴타운과 다르게, 넓은 지구를 '주거환경지구'로 지정해 철저히 공공관리제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넓은 지구 내 여러 구획의 별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을 설득해, 순차적으로 개발해나간다"며 "특별히 별도의 기구를 두어 웰타운 계획을 관리·주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대기업 유치와 사회적 기업 창출 등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삼성LED 공장을 확대·유치하기 위해서 넓은 배후지를 갖고 있는 화성시와 공동전략을 펼 예정"이라며 "화성시와는 동일한 생활권이고 수원과 통합 논의도 나오고 있어 수원의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염 당선자는 또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수원 화성 내 디지털박물관을 설립하고 종합전자상가 등을 구축해 지역 상권을 되살리는 한편, 시가 주도적으로 사무실 등을 확보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밸리센터'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김문수 도지사, 필요하다면 자주 만나겠다"

 

한편, 염 당선자는 삼성LED 공장 유치, 친환경 무상급식 등의 사안으로 수원과 대치 관계에 놓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대결을 피하지 않겠단 의지도 내보였다.

 

염 당선자는 "김 도지사가 대권 야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삼성LED공장 확장 이전 내용이 포함된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등 수원의 이익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김 도지사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내년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기 위해선 국비 및 도비 지원이 절실한데 문제는 김문수 도지사의 생각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라며 "민주당이 국회에 제출한 무상급식 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시 예산이 문제였다. 염 당선자는 "수원은 젊은 인구가 많은 만큼 교사 수나 학생 수도 제일 많은 곳"이라며 "판교 신도시 등 안정적 세수가 확보돼 있는 성남시와 달리 수원은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선 도교육청과 절반씩 예산을 부담하더라도 연간 2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국·도비가 지원되는 경우 예상 소요 예산은 절반 수준으로 확연히 줄어든다.

 

염 당선자는 "우선 예산을 추경해서라도 초등학교 5~6학년생들의 무상급식을 할 생각"이라며 "2011년 전면 무상급식 실시가 목표이긴 하나 현 상황으론 어렵다"고 토로했다.

 

"무상급식과 관련한 김문수 도지사의 생각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이 수립한 예산안이 도 의회를 통과할진 몰라도 집행 계획이 수립되지 않을 수 있다. 경기도의회에서 예산 집행 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조례 등의 '법률적 강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러나, "김문수 도지사와 일단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한다면 다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만나진 못했지만 현안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김 도지사와 자주 만날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태그:#염태영, #수원시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