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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입구 한기창전 대형포스터. 아래는 작가 한기창. 중후반 기에 들어선 그는 선에서 격렬한 운동감을 보여주고 색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학고재입구 한기창전 대형포스터. 아래는 작가 한기창. 중후반 기에 들어선 그는 선에서 격렬한 운동감을 보여주고 색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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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의 소재인 꽃, 화초, 말 그림, 산수화 등를 LED(발광 다이오드)와 RGB조명과 접목하여 엑스선필름에 담아온 한기창의 <좋은 인연(Bona fide Bonding)>전이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신관)에서 오는 7월 11일까지 열린다.

한기창 작가는 1993년 유학 준비를 앞두고 눈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1년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7차례의 대수술을 받으며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위기까지 갔으나 이만은 면한다. 그는 사경을 헤매면서 발견한 환각과 착란의 세계를 화폭에 담는다.

당시의 심정을 작가는 '나와 우리를 치유하는 주술로서의 작업'이라는 글에서 회고한다.

"사고는 찰나였다. 정면에서 내게로 쏟아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아무 기억이 없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딱딱한 병상의 시트가 어깨에 베일 무렵이었고 그렇게 그 흰 침대와 함께 1년 반을 보냈다. 결심했던 유학은 이제 상상하는 것만도 사치가 되었다"

한기창의 키워드는 삶과 죽음의 문제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LED light box 600×146cm 2010(부분화) 이 작품의 배경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LED light box 600×146cm 2010(부분화) 이 작품의 배경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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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는 그는 역시 작가답게 이런 절박한 상황을 창작의 전환점으로 삼는다. 그는 갑자기 고통의 상징이나 공포의 대상이었던 엑스선 필름을 보고 이 매체로 작품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통해 또한 수시로 배경색이 바뀌는 모빌 아트(mobile art)와도 만난다.

'21세기 현대미술의 악동'으로 불리는 데미안 허스트도 젊어서 한때 마약에 빠졌다가 친구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자극 받아 '삶과 죽음'을 주제로 삼는데 그런 면에서 두 작가는 비슷하다.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극단적 삶 혹은 사치를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혼합한 작품을 발표해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1억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현대회화의 특징은 일상을 예술로 끌어내는 것인데 현대작가라면 죽음마저도 창작의 매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작가가 바로 그런 자세로 난관을 뚫고 그의 작품세계에서 깊이를 더하고 진화하고 있음을 이번 전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죽음의 문턱을 통과한 생명의 꽃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200×200cm 2010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200×200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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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옥의 계절을 보낸 한 작가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색(色)과 공(空), 실제와 가상 등이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일러준다.

그래서 그런지 한 작가가 그린 꽃 그림은 이중적이다. 평온하면서도 격정적이고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도 낸다. 그렇게 확 피어날 때나 볼품없이 시들었을 때의 모습도 같이 담는다. 다만 그 어떤 경우든 꽃의 속성이 가지는 본연의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는다.

무의식 세계를 연상시키는 주술의 미학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LED light box 600×146cm 2010. 삶과 죽음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것 같은 화풍이다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 LED light box 600×146cm 2010. 삶과 죽음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것 같은 화풍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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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도 그의 작업을 주술 행위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마치 정신분석가처럼 무의식 세계를 분석하듯 꽃과 풀의 삶의 이미지와 죽음의 이미지가 엑스선의 농담(濃淡)으로 대비되어 작품에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그래서 생명의 본성이 뭐고 자연의 원리가 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도 마련해 준다.

하이테크 옷 입힌 신개념의 동양화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20×160cm 2010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20×160cm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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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색채가 매순간 달리 보이는 하이테크를 옷 입힌 신매체인 그의 엑스선화를 보면서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작품은 예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불을 지피며 상상력의 폭풍우를 일으킨다.

작가가 그동안 겪은 고통을 거꾸로 보상이라도 하듯 휘황찬란한 빛과 오색영롱한 색채로 지상낙원을 연상시키는 도화경을 선보인다. 이런 작품은 이전의 것과 질적으로 확연히 다른 새로운 개념의 동양화라 할 수 있다.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96×160cm 2010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96×160cm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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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동양미학의 핵심인 물아일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을 자기화하고 의인화하여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음양의 조화처럼 자연과 인간이 하나될 때 누구도 예상 못할 황홀한 세계와 만날 수 있음을 알린다.

한 작가는 위 작품에서 보듯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통해 우주만물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회귀의 정신과 삼라만상이 보이지 않은 순환의 고리 속에서 윤회한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생의 도약 꿈꾸는 야생마는 작가의 자화상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60×160cm 2010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60×160cm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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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백미는 역시 말 그림이다. 도약하는 힘과 역동적 진취성을 실감나게 묘사한 야생마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으로 그런 공포를 의연히 극복하고 이를 계기로 더 열정적 창작과 희망찬 내일을 열고자 하는 작가의 강렬한 의지를 이렇게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말 꼬리 부분을 그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 놓는다. 화룡정점처럼 생동감을 솟아나게 하는 마무리 요소라 그런가 보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좋은 인연'을 맺을 때 지상의 낙원도 더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예술은 고통과 번뇌를 치유하는 명약이자 동력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오른쪽).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20×160cm 2010(왼쪽)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아크릴물감(오른쪽).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20×160cm 2010(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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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창 작가는 삶과 죽음을 넘어 이를 극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 화풍을 일궈냈다. 그래서 뼈마디가 드러난 죽음의 꽃이나 근육이 보이는 헐벗은 산하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삶에 대한 새로운 서광이 비친다.

이렇게 작가는 예술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이 겪은 고통과 상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일체의 고통과 번뇌를 치유한다. 그래서 해탈의 무심한 경지에 닿게 되고 그것이 세상을 낙원의 땅으로 만들며,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죽음이란 창조적 삶으로 가는 통로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16×800cm 2010
 한기창 I 'Bona Fide Bonding' 엑스선필름 LED RGB program 플렉시블 글라스(Plexible Glass) 116×800cm 201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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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에서 있어 죽음이란 과연 무슨 의미인지를 물어보자.

그것은 아마도 17세기 최전성기를 맞은 네덜란드가 그런 풍요로움 속에서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라는 쓴 교훈을 얻은 것이나 19세기에 "죽음을 제외하고 모든 게 허무다"라며 간파한 보들레르, 20세기 초에 신의 죽음을 대신할 초인을 내세운 니체에서 보듯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창조적 삶으로 가는 통로라 봐도 좋으리라.

끝으로 안기창의 작품세계를 노래한 권오영의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살과 뼈, 그 사이로 여전히 흐르는 피는 / 엑스선 사진 속에서 어둡다
어둠 속에서 뼈의 줄기들이 빛난다 / [...] 피맺힌 갈비뼈에서 자라는 꽃들
[...] 살아있는 시체의 얼굴을 한 / 핏빛 냄새를 풍기는 붉은 정원
형광 불빛 아래서 살아나는 낮은 신음들을 / 하나씩 벽에 건다 - '뢴트겐의 정원' 중에서

'재미작가 황란의 환상과 현실(Illusion & Reality)전'
갤러리학고재(본관)에서 2010.06.09-07.11까지
황란 I 'Sweet In Yean with me with Love with Happy' Buttons Pins Beads 180×720cm(3 Panel) 2010.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를 형상화한 작품. 아래 작가사진
 황란 I 'Sweet In Yean with me with Love with Happy' Buttons Pins Beads 180×720cm(3 Panel) 2010.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를 형상화한 작품. 아래 작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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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핀으로 상처 꿰매며 삶에 대한 성찰과 명상 도모

학고재갤러리(본관)에서는 7월11일까지 황란전이 열린다. 그는 단추와 구슬과 색실, 아주 큰 왕핀, 크리스털 등으로 제작된 평면과 대형설치작업 등 10여 점을 선보인다. 그렇게 큰 핀을 수없이 박고 망치질하면서 삶에 대한 성찰과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명상과 치유의 세계로 나가도록 유도한다. 

회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뉴욕작업실이 바로 백남준 작업실 옆이었단다. 어려서부터 자수와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어느 날 뉴욕재래시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자수와 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한다. 동양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1997년부터 뉴욕화단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또한 뉴욕에서 9·11사태를 직접 경험한다. 살기 위해서 빌딩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거기서 인간존재의 허무를 깨닫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심정으로 못을 박으며 피를 흘리는 듯한 치명적 미의 영역을 개발한다.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비어있으되 차있는 공(空 void)의 정신을 달 항아리 등을 통해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렇게 핀으로 박고 꿰매는 설치미술이 나오기까지 그의 노고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어떤 때는 핀을 다 써버렸는데 너무 고급이라 가게에 나오지 않아 살 수 없게 되어 노심초사하던 중 마침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그 핀 회사의 본사에서 마음껏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감격스러워했던 경험담도 들려준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 그는 부처, 달 항아리, 매화 등 가장 한국적 이미지로 돌아와 그 속에 숨겨진 비단결 같은 한국적 정서를 누구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때론 살벌해보이기도 한 그의 작업은 인간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 마음에 평화를 주는 성찰과 명상으로 이끈다.  

덧붙이는 글 | [한기창 작가소개] 2006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 박사수료 2000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졸업 1993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0-2007 학고재 2006 파리 가나보부르 2005 파리대학촌 갤러리 2004 갤러리세줄 2003 갤러리현대 윈도우전 금호미술관 2002 창동미술스튜디오 2001 토탈미술관 1999 아르코미술관

[황란 작가소개] 뉴욕 School of Visual Arts 대학원졸업. 중대 미술대학원졸업 [개인전] 2010 학고재 2009 Kashya Hilderand Gallery 스위스 2007 2*13 갤러리 2006 Hass Gallery 렘버트빌 펜실베니아 2005 Vermont Studi Art Center 미국 2004 Hutchins Gallery Long Island 뉴욕 2002 Hudson River Gallery 2000 Artsenal gallery 파리



태그:#한기창, #황란, #데미안 허스트, #모빌 아트, #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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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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