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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애완견 세마리와 산책하고 있는 동네 아저씨.
아침 일찍 애완견 세마리와 산책하고 있는 동네 아저씨. ⓒ 이경모

"다 설치했습니다.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드릴게요."
"예,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우리 뽀삐 못 봤어요?"

번호키를 설치하고 사용 설명이 끝날 무렵 집주인은 몹시 당황하며 내게 묻는다.

"방금 문 앞에 있었는데요."

'뽀삐'라는 애완견 이름을 부르며 주인은 있을 만한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집안에 개가 없는 것을 확인한 주인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채 어쩔 줄 모른다. 마치 서너 살 되는 아이를 길에서 잃어 버린 엄마의 모습이라고 할까.

내가 열쇠를 설치하려고 벨을 눌렀을 때부터 아파트 문을 열 때까지 심하게 짓던 그 개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한테 바싹 다가오더니 내 다리를 타고 더 높이 오르려고 했다. 싫었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달라붙는다. 결국 주인은 개를 방에다 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오래는 아니었다. 그 개의 칭얼거리는 것이 짠해 보였는지 다시 거실로 내놨다. 처음보다는 덜 나댔지만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이 욕조에 물을 받으며 "뽀삐야 목욕하자"라고 개를 부르자, 이 녀석은 소파 밑으로 들어가더니 통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 녀석은 목욕만 하자고 하면 소파 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덕분에 방해자가 없어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파 밑에 있던 그 녀석이 번호키 사용 설명을 하는 동안에 문 밖으로 나가 버린 것이다. 설치비는 받았지만 그냥 올 수는 없었다. 공구가방을 차에 넣어 놓고 아파트 내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혹시 애완견 보지 않았습니까?"

노점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도 물어보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본 사람이 없다. 몸길이 50cm도 안 되는 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개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 어색했다.

어떤 사람은 개의 행방을 물을 때 애완견의 품종이 뭐냐고 묻는다. 내가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시골에서 키우는 개는 무척 좋아하지만 애완견은 비호감이다. 그래서 개를 찾아다니는 내가 우습게 보일 것 같아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다.

애완견을 찾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개 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옆 동 5층 계단에서 잔뜩 움츠린 채 떨고 있는 개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개가 집을 못 찾아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경우도 많다. 물론 시골에서 이야기지만.

문득 '백구'가 생각났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큰댁에는 이름이 '백구'라는 개가 있었다. 큰댁을 우리 집처럼 드나들고 매일 학교를 가려면 큰댁 앞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백구'는 늘 함께 있었고 친구였다. 그래서 서로 만나면 좋았다. 큰댁이 보일쯤 "휘휘~휘~"휘파람을 불면 백구는 신나게 달려 와서는 내 앞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반가워했다.

'백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백구'는 툇마루 밑으로 들어가서는 촉촉하고 멀건 눈을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았다. 그렇게 반가워하던 나도 외면을 했다. 툇마루 밑에서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밥도 안 먹었다. 장례식이 끝나고서야 조금씩 밥을 먹던 그 개가 어렸던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1시간동안 개를 찾아다닐 때는 내 자신이 혼란스러웠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백구'와의 빛바랜 추억을 더듬어 보게 했다. 눈에 어른거리는 백구, 저기 신작로를 따라 백구가 힘차게 달려올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또렷한 기억 속에서.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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