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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선거기간 중 어느 교육감 후보의 캐치프레이즈가 '최근 5년간 수능 성적 전국 1위'였다. 현직 교육감으로서 눈에 확연한 결과가 효율과 숫자에 목말라 하는 다수 학부모들의 표심을 확 끌어당길 수 있으리라 나름 판단한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쯤은 무시해버리는 우리 사회의 풍토상 분명 수긍할 만한 선거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후보는 큰 표 차이로 낙선했고, 이는 언론 등을 통해 성숙한 유권자들이 1등이라는 숫자에 눈멀지 않았고 결과보다 과정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됐다.

기실 전국 1위는 지역 내 1위 경쟁에서 얻은 결과물이고, 그것은 전쟁 같은 학교별 1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콘서트가 열리는 무대에서 관객 한 사람이 더 잘 보려고 일어서면 모두가 따라 일어서게 되는 이치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무한 경쟁을 통해 얻게 된 '빛나는' 성과다.

옆 학교가 야자 시간을 한 시간 늘리면 거기에 30분을 더해 따라가고, 보충 수업 한 시간 늘리면 거기에다가 심화 수업까지 따로 마련하는 극심한 소모적 경쟁. 누구는 '컴퓨터 게임 하다가 죽은 아이는 봤어도, 공부 하다 죽은 경우는 못 봤다'며 호언하는 걸 보면서, 이러다간 '4당 5락', 나아가 '3당 4락'의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별반, 교육면에서 보면 '실' 정도가 아니라 '독'

 서울지역 한 외고 입시가 치러진 날,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서울지역 한 외고 입시가 치러진 날,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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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무한 경쟁 교육의 정점에 바로 '특별반'이 있다. 현직 교사들조차 전국 1위를 달성한 '1등 공신'이 바로 특별반 운영이라고 말을 할 정도다. 이 말을 낯설어하는 이들을 위해서 귀띔하자면, 지역과 학교에 따라 심화반, 서울대반, SKY반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각 반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놓은 1등 학급이다.

수준별 반편성이니, 수월성 교육이니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만 '너희들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며 장차 학교의 이름을 널리 빛낼 재목으로 평가하고 특별대우를 받는 곳이다. 몇몇 학교는 특별반에 들지 못한 아이들에게 '자극'을 줄 요량에서인지, 별도의 특별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낙후한 일반 교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개선된 시설을 자랑하기도 한다.

대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1~2점에 울고 웃을 만큼 점수에 민감하기 때문에, 1등부터 꼴찌까지 한 교실에서 뒤섞여있는 것보다 상위권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는 것이 점수 끌어올리는 데 보탬이 된다고 여긴다. 이를테면 수능대박을 위한 '단기전'에는 더없이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거다. 백보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해도 특별반 운영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교육'의 이름에서 보자면, '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독'이다.

우선, 성적이 부모의 경제력과 사실상 정비례하는 현실에서 특별반은 학교 내 돈 많은 집 아이들의 '구락부'다. 무릇 교육이란 기회의 형평성이 밑바탕이 돼야 할진데, 빈부차가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지금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학급이 나뉘어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학교가 특별반 아이들만을 위한 곳'이 돼가고 있다는 나머지 아이들의 푸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승자독식'이란 정글 법칙을 가르치는 학교

학교의 특별한 대우 탓인지 학부모들은 당신들의 자녀가 특별반 명단에 포함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특별반은 '로망'인 셈인데, 고등학교 안의 SKY이자 특권 계급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루 중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짧지만, 아이들은 학급 친구들보다 특별반 아이들과 훨씬 더 친하고, 그들의 부모들조차 특별반 자녀를 둔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거칠게 말해서, 끼리끼리 놀겠다는 것이고, 공부 못하는 애들과는 말조차 섞지 않겠다고 으스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적잖은 교사들조차도 버젓이 '아니꼬우면 특별반에 들어가라'며 자극하기 일쑤다. 그들이 대학 시절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을 수많은 교육학 이론들은 공자님 말씀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특별반이 뭐가 문제냐며 되레 반문하는 그들에게는 협동학습 따위는 애초 찾아볼 수 없다.

하위권 아이들은 물론 중위권 아이들조차 배제되는, 승자독식이라는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연대가 왜 필요한지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소수의 아이들에게 특권의식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패배의식을 어릴 적부터 심어주는 꼴이다.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외국어에 소질이 있어 입학했다는 외고도, 과학 영재로 키우기 위해 선택했다는 과학고도, 하나같이 입시 명문으로 변질되었지만, 그들을 문제 삼기는커녕 모두가 자녀를 못 보내 안달하고, 그런 만큼 두루 특권을 인정하는 귀족학교가 돼 버렸다는 사실을.

또, 이태 전 몇몇 도시에서 넓은 평수의 분양 아파트 주민들이 이웃한 임대 아파트 사람들이 자기 단지 내로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두른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심지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기 자녀의 반에 편성되지 않도록 학교와 교육청에 요구하는 학부모의 사례를 언론을 통해서 접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그들의 특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학교가 그들의 어처구니없음을 닮아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 조금도 다르지 않은 쌍둥이다. 부잣집 아이도 가난한 집 아이도, 공부 잘 하는 아이도 꼴찌인 아이도,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특권의식과 패배의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쌓여가다 보면, 누군가가 특권의식을 누리면 누릴수록 다른 한쪽은 헤어날 수 없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후자가 절대다수이다.

'전국 1등'을 자랑하던 교육감 후보가 낙선했고,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설립을 부르짖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부디 학교여, 이름조차 낯 뜨거운 특별반을 없애고 1등과 꼴찌가 서로 돕고 기대며 즐겁게 공부하게 하자. 학교마다 특별반이 버젓이 운영되는 현실에서 특목고 정책을 비판하고 평준화 운운하는 건 기만에 가깝다. 학교는 사람 사는 세상이지, 동물의 왕국은 아니잖나.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myhb0211)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특권의식, #특별반, #진보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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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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