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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스완에서 배를 타고, 수단의 와디할파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정오인 12시 전까지는 선착장에 닿아야 한다. 배를 타고 자리를 잡고는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몇 시간이지만, 역시 이 곳 또한 아프리카 대륙이기에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다. 출발시간은 몇시 몇시인데 왜 안 떠나느냐 항의해 봤자 들어줄 곳도 없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에 이 곳 스타일대로 내가 맞추는 것이 가장 맘 편한 길이다.
 
규율과 항목, 그리고 시계를 보며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진 내가 탄 배는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이제 내일 정오께나 도착할 것이다. 배에 타서 자리를 잡자마자 습관적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내 옆의 히잡을 두른 여인. 마주보는 앞도, 아기를 안고 있는 히잡을 두른 여인, 사실 모두가 무슬림 여인이기 때문에 히잡을 두르지 않은 여인을 찾을래야 나를 비롯해 다섯손가락 안으로 꼽을 정도이다. 다행히도 모두 여자들이다. 밤 새 갈 것이니 여자들과 이웃한 것이 편하다.
 
나와 등을 마주하고 앉은 여자 둘은, 빵을 먹으려고 꺼냈다가 나에게도 권한다. 감사하다.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언제나 감사한 일인 것이다. 사실 배고팠는데, 택시를 타고 서둘러 오느라 음료수밖에 챙기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특별식인 치즈를 꺼내 여인들에게 내밀었으나 괜찮다고 사양한다. 승선하며 받은 식권은 나중에 쓸 요량으로 챙겨두었다.
 

누군가 나를 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서 한 외국인이 날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반가웠으리라…. 여행을 하다 이동을 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나도 이 버스에 이 배에, 혹은 이 기차에 외국인 여행자가 있나 하고 체크하는 게 습관이었다. 나중에 마주치면 인사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고개를 돌렸다.
 
자리 잡고 앉아 배가 출발 하기 전까지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배 안을 구경할 겸 돌아다녔다. 이집트를 떠나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심란하다. 수단에 대해서는 특히나 정보도 많이 없고, 정말로 망망대해에 혼자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배가 언제 떠날까 생각하며 멍하니 검푸른, 바다 같은 강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수단 가시는 건가요?"
"네. 여행중이에요. 이집트와 이별하고, 수단 가는 중이죠."
"멋진데요! 어디에서 왔어요? 여행은 얼마나 하는 건가요?"
"난 한국인이고, 요르단에서 시작해서 이집트를 거쳐서 수단 가는 중이에요. 남아공까지 내려간 다음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뭐라구요? 혼자서요? 진심이에요? 말도 안 돼!"
 

나에게 말을 건, 배 안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외국인(이들과 생김새가 다른 유일한 두 명이 맞는 표현이겠다)인 알리는 정말 파란 눈을 가진 터키인으로 대학원생이었으며 그 악명 높은 분쟁 지역인 다르푸르로 리서치 차 가는 중이었다.
 
조금 피곤해서, 말을 길게 잇기가 싫었던 나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마주앉은 앞자리의 아이에게 기다란 풍선을 꺼내 강아지를 만들어 주고는 그 신기해 하는 반응에 마냥 흐뭇해하며 어서 빨리 배가 출발하기만을 바랐다.
 
오늘 하룻밤을 지낼 어두컴컴한 2등석 선실은 긴 의자들이 정렬되어 있는 상태로, 사람이 많은 상태에선 의자 하나를 한 사람이 차지하고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결국 아기를 안은 엄마와 그 할머니를 위해, 의자를 차지하고 눕는 건 포기하고 갑판으로 나왔다. 나오는 나를 봤는지 알리도 따라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배의 갑판에 앉아서 느린 물살과 달의 이동을 보며 우리가 수단을 가고 있음을 최대한 느꼈다.
 

아마도 알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이집트에서부터 수단까지 향하는 그 배에서 꼬박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이후, 날 보는 알리의 눈은 더 깊어졌고 눈에 하트가 백만 개쯤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저렴하게 영화 한 편을 찍은 듯, 상황과 분위기가 그런 경향이 있었다. 온통 까만 세상에 하늘의 달은 더없이 맑고 밝아서 세상의 온 어둠을 환히 비출 수 있을 것처럼 떠있었다. 도시에선 상상도 못할 별무리들이 쏟아질 듯이 휘청거렸고, 우린 천천히 떠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서로의 길에 대한, 꿈에 대한 얘기를 했다. 웬만하면, 사랑에 빠지고도 남을 상황이 아닌가….
 

물론 나의 마음은 이집트에 두고 챙겨오지 않은 마음,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슬픔에 젖어 있었으니 알리의 감정을 따라가진 못했지만 나에게 그렇게 아름답다고 칭송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그저 황송하고, 편하기만 했다. 말을 안 해도 나를 너무 받들어 주니, 사실 언제 그런 대우를 받아보겠는가.
 
수단의 선착장에 도착해 버스를 이용할 마을까지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알리와 함께 셔틀버스로는 잠깐 이동하고, 내려서 소형트럭의 짐칸을 앉는 자리로 개조한 로컬 대중교통에 올라탔다.
 
후덥지근한 모래바람을 느끼며 와디할파에 도착하니, 이미 그날 출발할 수 있는 버스는 없는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어디로 출발하든 내일 새벽으로 미룰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하루를 묵어가려면 가장 시급한 일은 그날 한 몸 뉘일 곳을 찾는 일이다. 숙박업소를 찾아 한 10분 가량을 땡볕에서 걸으니, 정말 사막 마을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차라리 밖에서 그렇게 걷는 것은 괜찮은 일인지 그 때는 몰랐다.
 
내가 경험한 여섯달의 아프리카 나라 중, 그날 밤이 정말 최고의 힘든 날이었다. 너무나 더워서 도대체가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 종일 태양열에 뜨겁게 달구워진 돌 집에서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그 열을 품고 자야 했다. 더구나 열기운은 벽에서도 나오고 땅에서도 나왔다. 너무 더워서 옷이 다 젖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문을 열자니 웬지 잠을 자는 데 문을 열고 자는 것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안 자자니 새벽에 일어날 일이 걱정되고.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서일까 그 이후로는 웬만큼 더운 것은 치지도 않는다.
 
그 다음 날의 내 계획은 원래 동굴라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버스 시간을 이유로 예정에 없게 갑자기 카르툼으로 바뀌었다. 버스는 내가 아는 회사여서 그런지 꽤 괜찮고 좋아보였다. 하루 종일을 달려야 그날 밤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카르툼이었지만 중간에 쉬어가는 것은 필수였다.
 

수단의 아랍화 정책의 차별을 견디다 못한 비아랍 아프리카계 민족들과 아랍 무슬림이 있는 북부의 충돌로 전세계에 수단이 기사화되었던 그 다르푸르 분쟁이 유명하고 또 그로 인해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수단이지만, 현지 사람들도, 딱히 서부지역이나 북부 지역 일부만 제외하면 '네가 다니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분위기 자체가 이슬람 문화라 그런지, 여자에게 친절하고, 그만큼 까다로운 곳이 수단이다.
 
일단, 수단에 발을 들여놓으면 3일 이내에는 '수단에 들어왔습니다'라는 표시인 거주자 등록을 해야만 하고, 다니다가도 여자 혼자 방을 쓰겠다고 숙박을 의뢰하기엔 쫓겨날 수도 있다. 오히려 이집트나 요르단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의 향기를 풍기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아프리카#수단#와디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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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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