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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랄해에 들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에 아랄해였던 곳'에 들른 것이다. 아랄해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호(염호)였고, 그 면적은 남한의 2/3 가량이었다.

이 아랄해가 지금은 면적이 1/4로 줄어들었고 수량은 1/6로 격감했다. 해안선은 100km나 후퇴했다. 아랄해는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 2020년 경에는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아랄해가 이렇게 된 것은 구소련 시절에 벌였던 관개사업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는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긴 강이 흐르고 있다. 동쪽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발원되는 이 두 개의 강은 서쪽으로 1000km가 넘게 흘러서 아랄해로 들어간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1968년이다. 구소련 정부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는 키질쿰 사막, 카라쿰 사막에 물을 공급하는 대규모의 수로공사를 단행했다. 그 공사의 핵심은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강제로 사막 쪽으로 돌려서 그 일대에 목화밭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런 공사를 한다면 대대적인 반대 여론과 반대운동이 일어날 테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처럼 국민들의 반대에도 경제논리를 들이대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로공사를 끝내고 목화밭을 조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강물에 손을 대서 생겨난 자연파괴

말라버린 아랄해 바닥에 버려진 배
▲ 배들의 묘지 말라버린 아랄해 바닥에 버려진 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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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로공사의 부작용은 이후에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아니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재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랄해로 들어가는 물의 양이 격감하면서 아랄해의 수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이미 아랄해의 수량은 기존에 비해서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

수량이 줄어들면서 호수의 염도는 급격하게 높아졌다. 중동의 사해보다 높아진 염도 때문에 호수에 살던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했고, 해안선이 후퇴하면서 아랄해의 절반 이상이 사막처럼 변해 버렸다. 한때 철갑상어와 용상어가 살던 곳에 지금은 도마뱀이 기어다니는 지경이다.

아랄해의 참상을 보고 싶으면 우즈베키스탄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무이낙을 방문하면 된다. 예전에 무이낙은 아랄해에 인접한 항구도시였다. 드넓은 아랄해를 누비고 다녔을 선박들이 지금은 사막처럼 변해 버린 황무지에 녹이 슨 채 버려져 있다. 무이낙의 주민들은 이를 가리켜서 '배들의 묘지'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말라버린 호수 바닥에서 생겨나는 소금 먼지 때문에 주변 지역도 황폐화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도 극심하게 변하고 있다.

이 아랄해의 재앙을 가리켜서 '20세기 최대의 자연파괴'라고 부른다. 아랄해는 인간이 강물에 함부로 손을 댈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려주는 단적인 예다. 몇 년 전에 이 '배들의 묘지'를 바라보면서 '어쩌자고 멀쩡한 강물에 손을 대서 자연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구소련의 관료들은 오만 또는 무지 그 자체였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배들의 묘지'로 변해버린 아랄해

우측에 사막처럼 보이는 곳이 과거에 아랄해였던 곳이다.
▲ 과거 아랄해의 해안선 우측에 사막처럼 보이는 곳이 과거에 아랄해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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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개사업으로 메말라버린 아무다리야 강
▲ 아무다리야 강 관개사업으로 메말라버린 아무다리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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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을 바라보고 아랄해를 떠올리며 같은 생각을 한다. 인터넷에서 4대강 공사현장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갈대밭이 사라지고 그 위를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한다. 잘 흐르고 있는 강의 바닥을 파헤치고 보를 쌓는 자연파괴가 이미 시작됐다.

구소련 시절의 관개사업과 4대강 사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한 가지 있다. 멀쩡하게 흐르는 강줄기를 인간이 막거나 변화시키면 그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의 후손들이 그대로 떠맡아야 한다. 수로공사를 단행하고 40년 후에 우즈베키스탄의 주민들이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도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온 몸으로 깨달은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우즈베키스탄을 도보로 여행했을 때였다.

우즈베키스탄은 물이 흔하지 않은 나라다. 타쉬켄트, 사마르칸드 같은 대도시를 떠나서 지방의 작은 마을에 가면 이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마을에는 상수도 시설이 거의 없다. 전기와 가스시설은 갖춰져 있지만 상수도는 없다. 왜일까. 전기, 가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물인데.

이전에 했던 관개사업 때문이다. 정수장치를 거쳐서 가정으로 공급되어야할 강물들이 전부 사막으로, 목화밭으로 돌려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우즈베키스탄을 도보로 여행하면서 씻지 못해서 큰 고생을 했다. 상수도 시설이 없으니 샤워는 엄두도 못내고 머리도 감지 못한다. 열흘 동안 샤워를 못하고 일주일 동안 머리를 못감으면서 당시 나는 펑펑 나오는 깨끗한 수돗물을 가장 그리워 했었다.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자연과 더러워진 강물을 바라보면서 훗날 우리도 깨끗한 물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4대강이 지금과 같은 폭과 깊이, 수량을 가지고 흐르는 데에는 그럴만한 자연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강물을 정복하겠다는 오만함이건 결과를 예상 못하는 무지함이건, 그 섭리를 거스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가 일어난다. 부수는 것은 쉬워도 회복하는 것은 어렵다. 아랄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지난 4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를 방문해서 둘러보고 "충격적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끝나고 몇 년후에 다른 유엔 사무총장이 우리나라에 와서 4대강을 둘러보고 같은 말을 할지 모른다. 아랄해의 비극은 40년 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4대강도 또다른 '묘지'로 변할 것이다.

관개사업으로 메말라가는 아무다리야 강
▲ 아무다리야 강 관개사업으로 메말라가는 아무다리야 강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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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아랄해,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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