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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비리와 싸우다 해직된 교수들이 '교육비리 척결'을 내걸고 교육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승리했다. 마산 창신대 해직교수인 조형래 후보가 경상남도 교육의원(제1선거구, 창원-밀양-창녕) 선거에서 당선한 것이다.

 

3일 새벽 개표 결과 조형래 교육의원 당선자는 40.33%(12만45표)를 얻었고, 경쟁했던 정윤영 후보는 37.88%(11만2760표), 정인선 후보는 21.77%(6만4820표)를 얻었다. 창녕-밀양 투표함을 먼저 개표하면서 조 당선자는 한때 2위로 밀려나 있었지만, 창원지역을 개표하면서 역전했다.

 

조형래 후보의 당선은 해고자들의 '승리'다.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해직교수 내지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창신대학에서 사학비리와 맞서다 해직된 황창규·박창섭·김강호·박영구·이병희 교수가 선거운동원으로 뛰었고, 대림자동차 창원공장 해고노동자 5명이 자원봉사로 도왔다.

 

해직교수들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해 차량을 운전하거나 피켓을 들고 다니고, 후보와 함께 다니며 명함을 뿌리기도 했다. 대림자동차 해고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해고노동자 1명은 밀양 사무원으로 등록해 1주일 동안 거기서 숙식할 정도였다. 그는 매일 밀양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기도 했다.

 

박훈 변호사가 선거대책본부장 맡아

 

그야말로 '해고자 부대'가 만든 승리다. 그를 도운 사람들이 또 있다. 박훈 변호사다. 조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변호사업을 잠시 접었다고 할 정도였다. 변호사사무실의 김종하 사무장은 조 후보의 선거사무장 역할을 했다. 선거 막판에 박 변호사는 차량을 타고 창원 시내를 돌며 홍보를 벌이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해직교수들의 각종 소송에 변론을 맡은 인연이 있다.

 

선거사무소 벽면에는 숫자가 빼곡하게 적힌 '대자보'가 붙어 있다. 개표 상황을 연락받고 집계한 것이다. 선거운동을 처음 하다 보니 옛날 방식대로 벽에 종이를 붙여 놓고 적어 가면서 계산한 것이다. 한참 집계하다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집계하기도 했다. 이병희 교수는 "그만큼 아마추어였던 거죠"라고 말했다.

 

조 당선자와 해직교수들의 평균연령은 56세. 그만큼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섰다.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거나 인사하는 '아줌마 운동원'도 한 명 없이 해직교수들이 나섰던 것. 조 당선자는 "그동안 했던 선거운동을 영화로 만들어 기록해 놓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만큼 소중하고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말로 들린다.

 

독특했던 선거운동 방식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이병희 교수는 '다람쥐 전법'을 말한다. 이 교수는 조 당선자를 소개하는 피켓을 들고 시장통을 계속 돌았다. 5시간 정도 혼자서 한 시장의 골목만 계속 오갔다. 한 골목을 20회 정도 오가기를 반복할 때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켓만 들고 돈 것이다. 이른바 '침묵시위'.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현행 선거규정상 명함은 후보와 같이 있을 때만 유권자들에게 건낼 수 있다. 한 시장에서 계속 '침묵시위'를 한 뒤 후보가 나타나면 장사하던 분들이 알아본다. 어떤 분은 '저 사람(이병희)을 보니 안 찍어 줄 수 없다'는 말을 하더라. 불쌍해서 찍어주었던 것이라 본다."

 

 

조 당선자는 "정당 소속도 아니고 조직도 없다보니 선거운동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특히 교육의원 선거에 관심이 없다보니 선관위가 해야 할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벗어난 지역에는 후보들이 잘 가지 않는데, 그런 곳에 찾아갔더니 반가워하면서 반응이 높았다"고 말했다.

 

"우리 선거운동원들은 자발적으로 하다 보니 '아줌마 선거운동원'과 달랐다. 더 정성이 들어갔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이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후보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원들의 진정성을 시민들이 알았다고 본다."

 

김강호 교수는 집이 부산인데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밤 10시까지 운동하다 돌아간 뒤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나와야 했는데, 김 교수를 비롯한 선거운동원들은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나왔던 것.

 

"많이 걸어 다녔으니 운동 많이 되었겠다"고 했더니, 해직교수들은 "그런 게 아니다"고 손을 내젖는다. 이병희 교수는 "어느 정도 걸어야 운동이니 많이 걷다보니 체력적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선 뒤 한 아주머니 전화 "무슨 그런 학교가 있냐"

 

조형래 당선자는 3일 오후 경남대에서 강의하고 왔다. 당선된 날 강단에 선 것이다. 창신대에서 해직된 뒤 경남대에서 시간강사로 뛰고 있다. 당선된 날 강의한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학생들이 알고 박카스도 탁자에 올려놓았더라. 이른바 '당선사례'인 셈이죠. 가슴이 뭉클하더라. 그동안 학생들한테는 선거에 나선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알았던 모양이다. 학생들에게 교육의원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교직이수 학생이 임용고시준비학생들의 모임인 사이트에 소개가 되었더라고 알려주었다. 사립학교 채용비리와 학교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학생들이 해결해 달라고 바라고 있었다."

 

조형래 당선자는 "당선된 뒤 한 아주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더라"면서 소개했다. 그 아주머니의 딸이 과학보조교사로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예산이 없다면서 석 달 만에 잘라버리더라는 것. 그러면서 그 아주머니는 "무슨 그런 학교가 있냐"고 했다고 한다. 학교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함을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의원선거도 개선할 게 많다고 그는 들려주었다.

 

"교육의원이 이번을 끝으로 더 이상 뽑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교육자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교육청 하나에 교육의원 한 명씩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음에는 교육의원의 영역을 일반 광역의원 속에 포함시켜버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교육분야가 일반행정의 부수적인 부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교육예산이나 문제는 전문성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

 

 

조 당선자는 유권자들이 교육의원 후보를 제대로 모르는 속에 투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유권자들이 교육의원 후보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개표를 하는데 10장 중 1장은 기표가 되어 있지 않았다. 10% 정도가 무효로 나온 것이다. 후보를 모르기 때문에 기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지가 수두룩했는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의원 선거구를 크게 줄여야 한다. 지금은 3~4개 시군에서 1명을 선출한다. 1개 행정구역인 시장과 군수를 뽑는 선거도 후보토론회를 하는데, 그보다 더 넓은 구역인데도 토론회 한번 없었던 것이다. 후보가 정책을 발표할 기회조차 없었다. 오로지 후보가 알아서 홍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교육의원 선거구 안에 국회의원 선거구만 해도 여러 개다."

 

또 조 당선자는 "이번에는 같이 했는데 교육자치선거와 일반선거를 따로 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시민들이 교육문제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당선축하 화분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조 당선자는 "좀 난감하다. 평소에 아는 사람들이 보낸 거는 몇 개 안 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온 것인데 고맙기는 하지만 과분하기도 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 펴기를"

 

이병희 교수가 조 당선자한테 바람을 담아 말했다. "당선되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이제부터는 교육의원을 잘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선거운동할 때는 90도로 허리 굽혀 절하다가 되고 나면 고개에 힘이 들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고.

 

조 당선자는 "도와주신 교수님들을 생각하며 성실한 교육의원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교육주체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실천하는 교육의원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조형래 교수를 당선시킨 해직교수들은 다시 창신대를 상대로 '복직투쟁'에 나선다. 창신대학 교수들의 '교육민주화 투쟁'은 2004년 4월 '교수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고, 2006년 7월 교수노조 창신대지회가 결성되었다.

 

이 대학에서는 2004년부터 2009년 12월까지 모두 8명의 교수들이 재임용 거부되었다. 마지막으로 조형래 교수가 지난해 12월 성탄절 하루 전날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던 것. 창신대에서는 2004~2009년 사이 재임용 심사 대상이 60~70명이었는데 탈락한 8명은 모두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다.

 

해직교수들은 교육과학기술부에 소청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내 이기기도 했다. 황창규·박창섭·김강호 교수 등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대학 측에서 불복해 항소하는 바람에 계속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

 

사립대학 비리척결에 나섰던 교수가 일선 교육현장의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교육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대학은 교수들을 내쫓았지만 유권자인 학부모들은 해직교수들의 편에 선 셈이다. 교육 현장을 맑게 만들어 달라는 학부모들의 바람을 조형래 교육의원 당선자가 어떻게 펼쳐보일지 교육계 안팎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자치선거#조형래 교육의원 당선자#경상남도교육의원#창신대학#사학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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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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