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주도는 요즘 감자와 마늘 수확이 한창이더군요. 화순과 화순서 가까운 마을에 보이는 풍경이 그랬습니다. 지난 4월 초 제주로 귀농한 후 제주농부가 운영하는 귤농장을 오며가며 풍경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내 삶의 변화는 상황과 조건이 전혀 바뀐 게 없지만 눈에 보이는 제주 자연풍경은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더러 달려있던 주황색 귤도 사라지고 그 귤나무에서 다시 새순이 돋아나며 꽃피어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본 제주 귤 꽃이 참 예뻤습니다. 하얀 꽃봉우리가 쏘옥 올라 오더니만 이내 다섯개의 꽃잎이 갈라지면서 꼭 별모양을 한 꽃이 되어 있었습니다. 향내를 맡아보니 이제까지 한번도 맡아 보지 않은 향내음이 가슴에 와닿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금씩 추운 봄날부터 서서히 낮기온이 올라 더워지는 지금까지 귤농장서 바쁘게 일하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농사용 트럭을 타고 다니며 계절의 변화를 잠시 잠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4월 초 제주 귀농 올 당시 검은 비닐이 뒤덮인 어느 밭엔 감자가 잔뜩 심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땐 새순이 작게 올라와 있었는데 요즘은 수확기가 되었는지 빈 감자 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 제주도 감자 참 맛있네요."

제주 귀농 후 마음의 안정과 마음 다스림을 위해 원불교 안덕교당에 다닙니다. 화순은 시골인지라 농부의 일상생활을 감안하여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법회를 했습니다. 두번째 참석날 법회후 교무님이 찐 감자 좀 먹고 가라며 불렀습니다.

"길 건너 밭에서 캔 거예요. 제주 감자 맛있죠?"

귤농장서 일마치고 씻고 옷갈아 입고 바로 올라 온 후라 법회 후 출출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습니다. 교무님이 계시는 응접실에서 마을 주민 몇 분과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찐 감자를 먹었습니다. 따끈한 감자를 한입 먹어보니 타박한 게 맛있었습니다. 두어개 먹다보니 갑자기 울산에 있는 자식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맛있는 제주도 감자를 가족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제주도 감자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울산에 있는 가족에게 좀 보내주고 싶어서요."

제주도 분이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요즘 감자 시세가 비싸니 길건너 빈 밭에서 파지 주워 보내 줍서."

뭔말인가 싶어 다음날부터 이것저것 감자 한 상자 사 보내려고 알아 보았습니다. 알아보니 입이 떡 벌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올 봄 추위가 오래 가서 육지 감자가 잘 된 곳이 드물어 제주도 감자 가격이 좋다는 것입니다.

"작년엔 20키로 한 상자에 2만원이면 샀는데 요즘은 6만원 줘야 20키로 한 상자 사. 그래서 감자 철인데도 택배가 안 들어오고 있잖여."

온통 돌 흙밭을 뒤지며 캔 감자랍니다. 저는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보내려고 캐 낸 것입니다.
▲ 빈 감자 밭에서 캐낸 제주 감자 온통 돌 흙밭을 뒤지며 캔 감자랍니다. 저는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보내려고 캐 낸 것입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같은 동네에서 택배영업소를 하는 분이 그렇게 말해 알았습니다. 이거 감자가 아니라 '금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알아보니 기가막힌 방법이 있더군요. 제주도엔 감자 밭을 트렉터로 한번 갈아 엎고 흙위에 올라온 감자를 주워 모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흙 속에 묻혀있는 감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자 수확하고 난 빈 감자 밭에 있는 파지 감자는 캐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밭이 워낙 크다보니 그렇게 수확하나 봅니다.

우선 빈 감자 밭을 알아보고 다음날부터 바로 행동에 돌입해 들어 갔습니다. 귤농장서 일을 배우고 있는 터라 낮에는 시간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좀 힘들겠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빈 밭을 파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나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마을 빈 감자 밭으로 갔습니다. 미리 준비한 봉투와 호미, 장갑을 끼고 쪼그리고 앉아 감자 밭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진짜로 크고 작은 감자들이 아주 가끔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어떨 때는 주먹만한 감자도 나왔습니다.

가족들이 아빠가 캐 보내준 제주도 감자를 익혀 먹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두어시간 파고나니 몸이 힘들어 졌습니다. 양 손바닥엔 온통 물집이 잡혔습니다. 어깨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다리와 허리도 아팠습니다. 캐놓은 감자를 모아놓고보니 묵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택배 형님 이거 울산으로 좀 보내 주세요."

제주농부와 귤밭으로 가면서 양해를 구하고 바로 택배를 보냈습니다. 택배비 6000원에 상자 값이 1000원 하여 7000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귤밭으로 바로 출발해서 열심히 귤농사에 대해 배웠습니다.

몸은 비록 힘든 하루였지만 가족이 아빠가 캐 보낸 감자를 쪄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마음이 뿌듯해 집니다.

"얘들아, 아빠가 새벽 5시 일어나 빈 감자 밭을 호미로 뒤지며 캔 감자랴. 어때, 제주도 감자 맛있지 않니?"


태그:#제주귀농, #감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