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일, 여성문화유산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인천의 차이나타운 거리와 그 일대를 다녀왔다. 인천역 앞에서 인천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을 들었다. 인천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인천의 해안가 주변 화덕자리나 고인돌 유적이 증거 자료로 남아있다.

미추홀, 매소홀, 소성현, 경원, 인주, 인천 등 여러 이름을 거쳐 1995년 인천광역시가 되었다. 인천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곳이기도 하다. 인천에서부터 노량진역까지의 7역이었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되었다.

비록 일본에 의해서지만 최초란 의미로 철도의 날이 9월 18일이다. 요금은 1등석 1원 50전, 2등석 80전, 3등석 40전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 값이 60전 이었다고 하니 서민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외국 영사관이나 무역상들이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인천역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제1 패루. 우리나라 장승의 역할이란다.
 인천역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제1 패루. 우리나라 장승의 역할이란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인천역을 나오니 바로 맞은 편에 차이나타운거리를 상징하는 패루가 하늘 높이 세워져 있다. 패루란 대문처럼 생긴 상징물로 우리나라로 치면 장승과 같은 역할이란다. 길 양 쪽 풀숲에 다소곳하게 세워져 있는 장승과 달리, 길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선 대문 모양이 조금 낯설었다. 모두 3개의 패루가 타운 안에 있다. 인천역에서 처음 만나는 패루는 제1패루다. 거리는 붉은 등과 붉은 건물과 붉은 색 간판들로 넘실거린다. 사람도 붉게 물드는 것 같다.

차이나타운에는 홍등들이 건물과 거리에 넘쳐났다.
 차이나타운에는 홍등들이 건물과 거리에 넘쳐났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1883년 인천이(당시 제물포) 개항되면서 일본, 청국,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청국인들은 1882년에 군역 상인 40여명이 최초로 들어온다. 그것을 필두로 일본 조계지와 청나라 조계지, 서구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조계지란 자유로운 거주와 통상활동이 보장되는 곳이며 더 나아가 치외법권 구역이다.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해는 프랑스 조계지였다고 한다. 그랬기에 일본의 구속을 피해 활동을 할 수 있었단다. 인천에 형성되어 있던 각국의 조계지는 30년간 존속되다가 1914년에 모두 폐지되었다.

조계구역은 응봉산(지금의 인천 자유공원)일대였다고 한다. 나중에 자유공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인천항과 차이나타운거리와 일본의 조계구역들의 경계가 어렴풋이 한 눈에 들어왔다. 차이나타운은 홍등을 단 음식점들로 가득했다.

관광객들은 자장면(꼭 자장면만은 아니겠지만)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고,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 만치 인기 있는 거리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초로 자장면을 팔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공화춘'이라는 건물은 보수 중이었다. 인천 중구의 지역특구 개발정책에 따라 '자장면 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란다.

일본 선박회사였던 '우선주식회사' 건물. 당시에는 이 건물 바로 앞에까지 바다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일본 선박회사였던 '우선주식회사' 건물. 당시에는 이 건물 바로 앞에까지 바다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타운 거리를 이리저리 걷다가 청국과 일본조계지의 경계가 되었던 계단을 만났다.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거리와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분리 된다. 일본인들의 조계지였다는 구역으로 건너가기 전에 우선 한중문화관에 들렀다. 문화관의 건물 외벽 기둥들도 붉다.

이곳 화교의 역사와 한중교류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차이나타운 맞은편, 일본인들이 거주했었다는 구역은 조용했다. 일본 선박회사였던 우선주식회사의 노란색 벽돌건물은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모두 가져왔다고 한다. 1888년이라는 건축연도가 상량문에 남아 있단다.

단층의 건물은 단단해 보였다. '우선주식회사' 바로 옆 주차장은 당시 유명했다는 대불호텔지다.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근대식 숙박시설로 이 또한 1888년에 세워졌다. 서울에 있는 정동의 '손탁 호텔'보다 14년이 앞서 있고, 영어로 손님을 맞았고, 최초의 커피를 판매한 곳으로도 유명하단다.

이 구역은 현재 인천 중구청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본영사관이었던 건물과 당시 조선의 금융권을 장악하기 위해 세워졌던 여러 은행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본제일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 지금은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일본 조계 구역이었던 곳의 건물들. 건물 앞쪽에만 일본식 지붕들을 덧대어 당시의 시대를 재현해 놓았다.
 일본 조계 구역이었던 곳의 건물들. 건물 앞쪽에만 일본식 지붕들을 덧대어 당시의 시대를 재현해 놓았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그 외의 다른 건물들은 외벽과 간판만을 일본 나고야시의 건축물을 본떠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현대에 지어진 일반빌딩에 일본건축양식을 덧대어 놓은 것이다. 이유는 아픈 기억이라고 없앨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관광객들이 이곳을 둘러보고 자신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어떤 짓을 했는지 깨닫게 하려는 의도란다. 과연 그네들이 정말로 미안해할까. 한국 땅에 자신들 나라의 건축양식이 새롭게 재현되어 있는 것에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들었다.

몇몇 건물들을 빼면 그 때의 건축물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모두 현대에 새롭게 조성된 건물들인 셈이다. 짧은 소견에 그런 건물에다 굳이 외벽을 일본식으로 재현해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조계지'였다는 구분을 하기위한 방도였으리라,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면 외벽은 그대로 살려 두어야 하나 안은 개조할 수 있단다. 해서 당시의 건물외형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실내는 거의 현대식으로 고쳐져 있다고 한다.

조계 경계의 계단에서 내려다본 인천항. 오른 쪽이 차이나타운, 왼쪽이 일본 영사관(지금의 중구청)과 은행 거리였던 일본 조계지. 왼쪽의 주황색 지붕이 '우선주식회사'건물이고 그 옆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불호텔지.
 조계 경계의 계단에서 내려다본 인천항. 오른 쪽이 차이나타운, 왼쪽이 일본 영사관(지금의 중구청)과 은행 거리였던 일본 조계지. 왼쪽의 주황색 지붕이 '우선주식회사'건물이고 그 옆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불호텔지.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자유공원으로 통하는 제 3패루. 제 2패루는 한중문화관 앞에 있다.
 자유공원으로 통하는 제 3패루. 제 2패루는 한중문화관 앞에 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조계지 경계계단은 자유공원으로 이어져 있다. 공원을 오르기 전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기념으로 점심식사는 중국식으로 했다. 식사 후에는 가파른 경계의 계단을 올라 자유공원 광장으로 갔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해바라기도 하고 걷기도 하셨다. 그 속에서 관광이 목적인 사람들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과 맥아더동상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자유공원을 빠져나와 성공회 성당으로 가던 신포로 근처의 한적한 골목길 몇몇의 집들은 아담하고 깔끔한 것이 앙증맞게 예뻤다. 일본식 건축 양식의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성공회 성당이 있던 한적한 주택가.
 성공회 성당이 있던 한적한 주택가.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인천항과 인천역 근처에는 최초의 타이틀을 단 것이 많았다. 최초의 화교학교,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인 자유공원(파고다 공원보다 9년이나 앞섰단다), 최초로 영어학교를 개설하고 고아를 보살피며 구호시설을 운영하였다는 성공회성당, 아펜젤러 부부가 제물포항에 도착해 우리나라 최초로 오르간 반주에 의한 찬양예배를 드렸으며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이면서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을 개설하였다는 내리교회를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 다 돌아 볼 수 없었지만, 최초의 양관건물이면서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세창양행사택, 최초의 중앙기상대(기상대 시발점은 인천이다)도 자료에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신포시장(신포만두로 유명한 곳이란다) 앞에서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건너갔다. 자유공원을 올라 '신포로' 쪽으로 넘어가지 않고 인천역에서 직접 가면 더 가까운 곳이다.

월미도에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 이민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월미도에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 이민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10여분 버스를 타고 가다 해사고등학교 앞에서 하차를 하면 바로 '한국 이민사 박물관'이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 간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에는 당시 제물포(인천항)와 배를 타기위해 몰려든 이민자들의 풍경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읽고 현장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을 돌아보니 더 마음에 담겼다. 이곳에서는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 개항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우리나라 이민사를 돌아볼 수 있다.

다시 시발지인 인천역으로 왔다. 일부는 월미도에 남고, 일부는 차이나타운으로 건너가 월병을 사겠다고 하고, 일부는 대불호텔에서 팔았다는 양탕국(커피)을 마시겠다고 흩어지고, 일부는 서울행 전철을 타러 가면서 답사는 마무리됐다.


태그:#인천역, #인천항, #인천차이나타운, #조계제도, #한국이민사박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