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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후배'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멤버였고, 이 의원은 정계 입문 전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 여성복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직계'라고 직설적으로 칭하기는 힘들어도 적어도 '뿌리'는 같은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2003년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기점으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역사에 잘못된 결정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국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고, 이 의원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헌법소원 가처분서를 직접 썼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8일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에서 "진보적 원칙이 잘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라크 파병 이야기가 나와 굉장히 놀랐다"며 당시 그가 느꼈던 애증(?)을 솔직히 밝혔다. 그리고 "침략 전쟁에 우리나라 군대를 동원할 수 없단 것은 헌법의 문제이지 국익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50여 일이 지난 23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 무대에 올라선 이 의원은 "과거의 앙금도 지금은 뒤로 미뤄두겠다, 낯설음도 접어두겠다"고 고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 그 가운데 제가 가장 행복했던 날은 2007년 10월 2일"이라고 밝혔다. 갈라져 뻗을 것만 같던 두 사람의 길이 다시 합쳐진 그날을 말하며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기억나시지요? 대통령님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은 그 아침입니다.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은 지워지고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감회 깊은 목소리가 아직도 선연합니다. 제 기억 속의 대통령님은 이날 가장 빛났습니다."

 

이라크 파병으로 갈라졌던 선·후배의 길, 다시 만나다

 

▲ 이정희 "진보의 뿌리가 돼 주십시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문화제 '파워 투 더 피플 2010'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편지를 낭독했다.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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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이날 '후배가 가장 행복했던 날', '선배가 가장 빛났던 날'을 뭉갠 현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당신이 이뤄낸 화해와 전진의 길이 이렇게 무참히 난도질 당하는 것을 보고 계시냐"며 "저들은 선거 한 번 이겨보겠다고 전쟁위기까지 불사하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대통령님, 이럴 줄 짐작하셨나"고 질문을 던졌다.

 

또 "당신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 놓고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남북의 화해협력도 다 무너졌건만 다시 잡은 권력을 휘둘러 재집권할 생각에 거칠 것 없는 저들 아닌가"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이 의원은 갈라졌던 두 길을 다시 합칠 것을 노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우리 안에 남은 질긴 욕망의 끈을 끊겠습니다. 역사의 후퇴 앞에 목숨을 내어놓은 당신 앞에서, 손톱만한 욕심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말잔치는 거두어버리겠습니다. 때로 외로웠던 당신의 발걸음이 결국 전진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두려움도 지워버리겠습니다. 절벽에 몸을 던진 당신 앞에서, 그 어떤 변명 뒤에 숨을 수 있겠습니까. 생활의 무게도 내려놓겠습니다. 주저하면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짓밟는 저들 앞에서 우리의 손을 놓을 수 없다"며 "힘을 합치기 위해 더 많이 내어놓는 결단과 이기기 위해 더 많이 땀 흘리는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6월 2일 반드시 이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또 "빼앗긴 정권 2012년 반드시 되찾아 오겠다"며 "질기고 깊은 수구 보수를 헤치고, 진보를 뿌리내리겠다"고 강조했다.

 

"질기고 깊은 수구 보수의 뿌리를 헤치고 국민들 속에 진보의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을 빨아올리겠습니다. 인권을 옥죄는 법치의 논리를 뛰어넘어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꽃피우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안과 경쟁으로 몰아넣는 양극화를 극복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누구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어 내겠습니다. 몇 번이고 손에 잡힐 듯 하다 멀어졌던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멀지 않았습니다."

 

"질기고 깊은 수구 보수의 뿌리를헤치고 국민들 속에 진보의 뿌리를 내리겠다"

 

한편, 시청광장에 모인 3만 여 명의 시민들은 이 의원과 고인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들의 '재회'와 '약속'을 축하했다.

 

이 의원은 그들을 향해서도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손을 잡아달라"며 "여러분의 힘이 아니면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진보의 뿌리가 돼 달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고인을 향한 편지글을 낭독한 후 향한 곳은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등 야 4당의 단일후보인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긴급 선거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던 천막이었다.

 

그는 이날 한명숙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에 이어, 공동대변인까지 맡았다. 그의 약속대로 이 의원은 진보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말잔치'를 거두어들이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태그:#이정희, #노무현, #지방선거, #야권연대, #추모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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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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