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21일. 황금연휴를 맞아 산청 처가에 내려왔습니다. 어버이날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유독 반가웠던 연휴. 비록 내려가는 길은 아침 일찍부터 막혔지만, 오랜만에 장인, 장모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곧 엄마, 아빠를 본다며 기분이 들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마냥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6시간이나 걸쳐 도착한 산청. 역시나 장인, 장모님은 6개월 된 손녀를 보시며 기쁨을 감추시지 못합니다. 아이 또한 매일 보는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 지리산의 거대한 자연을 마주쳐서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합니다. 역시 아이는 흙에서 키우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다음날(5월 22일) 아침.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주섬주섬 아이 기저귀를 챙깁니다. 여기는 산청. 김해와 그리 멀지 않은 탓에 내려온 김에 봉하마을을 들르기로 합니다. 작년 이맘때부터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한다고 읊조리던 봉하마을이건만 아내의 임신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입니다. 게다가 내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입니다.

 

산청에서 김해 가는 길. 봉하마을이 가까워질수록 괜스레 또 마음이 무겁습니다. 눈물은 작년에 다 흘린 줄 알았건만, 막상 김해에 도착해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표지판과 마주치니 또 울컥합니다. 그 전만 해도 사람들은 저 표지판을 보면서 곧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기대했을 텐데.

 

봉하마을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길가에 노란색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길가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기념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6·2 지방선거를 맞아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상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비정치적이든, 어쨌든 다시 한 번 노무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 싶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봉하마을. 8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주차장은 만차인지라 노사모 자원봉사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주차를 논두렁 옆길로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모내기를 시작하는 논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작년 봉하마을에 채 진입하지 못하고 소와 함께 방송을 해야 했던 KBS의 웃지 못 할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올해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언제쯤 KBS는 그 로고를 들고 정정당당히 봉하마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주차를 하고 유모차를 끌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에서부터 구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모든 위인들의 생가들이 그렇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역시 볼거리는 없습니다. 그냥 의례로서 들릴 뿐입니다. 물론 색안경을 낀 이들은 김일성의 만경대를 떠올리며 노무현은 역시 친북좌파라고 읊조릴지도 모르겠군요. 

 

 

기념품 가게를 지나니 저 멀리 봉화산이 보입니다. 아마도 저 큰 바위가 부엉이 바위인가 봅니다. 생각보다 꽤 높고 험해 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에 저 곳에 서 있었을 생각을 해보니 또 가슴이 저릿해옵니다. 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그랬을까요.

 

저택 앞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공사 마무리로 한창 바빴습니다. 고인은 분명 작은 비석 하나 세워 달라 했을 뿐인데, 역시 남은 자들에게 그 부탁은 애초부터 무리였을 겁니다. 예수와 부처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다만 그 묘역을 세울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또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하늘나라에서 이해해 주시겠지요.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봉화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툭툭 빗방울이 떨어지는 터라 정토암과 사자바위까지는 가지 못했고,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다던 부엉이 바위까지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바라본 마지막 풍경은 어땠을까. 그러나 부엉이 바위 정상의 그분이 떨어진 곳은 출입금지 표지판과 함께 목책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혹여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따라 투신할지도 모르기에 설치한 구조물이겠지요.

 

보통 여느 산이라면 사람들이 굳이 목책을 넘어 그 절벽 끝까지 가서 구경을 했을진대,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그 출입금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분을 위한 예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희동

 

부엉이 바위를 내려오는 길. 아마도 그분이 떨어졌을 곳에 도착하니 또 노란 물결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조그만 돌멩이 위에 옹기종기 놓여 있는 담배 여러 개비. 마지막에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다는 노 전 대통령 대사의 진위는 파악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우리 시대의 영웅은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서민적이던 우리들의 대통령.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와 임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추모 기념관을 들렀습니다. 그곳에는 그분의 유품과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담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 백미는 역시나 그분의 사진과 동영상 등을 모아 만든 한 편의 영상이었습니다. 그가 정작 우리 곁에 있었을 때, 우리는 왜 그를 지켜주지 못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상이 끝나자 훌쩍거립니다. 물론 나 역시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다시금 다짐합니다. 그가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회를 위해 자그마한 힘을 보태겠노라고.

 

 

별로 본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훌쩍 2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그리고 봉하마을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차량과 인파에 북적댑니다. 이제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없습니다. 주차장이 모자라 주의 논두렁에 줄줄이 세워져있는 차들.

 

그것은 순례였습니다. 이제 5월은 광주만의 달이 아닌 듯 합니다. 5월의 김해 역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공간이 될 듯 싶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워낙 많은 빚을 진 탓이겠지요. 부디 이 김해의 열기가 계속해서 이어져 더 크고 웅장한 흐름으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저부터 그 대열에 참여해야겠지요.

 

 

봉하마을을 나오니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도 비가 내린다고 하던데, 내일 오후 2시에 치러질 추모식은 무사할까요? 저번 5·18 30주년에도 비가 내리더니, 올해 하늘은 5월의 그날들이 참으로 슬픈 모양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작년에도 비가 왔지만 그 많은 인파들이 묵묵히 그분을 추모했듯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분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부디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분의 뜻을 되새겨 작은 부분에서부터 자신의 해야 할 바를 챙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그:#노무현, #봉하마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