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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처절하게 독서하기를 연재한다. 12월~2월 사이에 걸쳐 왠지 모르지만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난 후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책에 대한 소개 그리고 관련한 실천 등을 풀이하느라 글이 전반적으로 조악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글 실력이 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책을 읽을 생각이다.

 

필자의 집에는 70~80년대의 빛바랜 사회과학 서적류가 적지 않게 있다. 한때는 대부분 불온서적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 있는(?) 책들이었지만 지금은 빛바랜 표지만큼 내용들도 빛이 많이 바래있다. 우리 선배들은 왜 이러한 책을 읽으며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고, 때로는 교조적으로 비춰지는 실천을 감행한 것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변명'이 아닌 당당한 명분을 갖추고 있다. 군부독재의 연장 시기 정권의 정치적 폭압, 대중에 대한 억압 기제, 불평등성의 확대와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복종을 강요할 때,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자주적 사고를 견지할 수 있었던 계층, 계급은 청년들 밖에 없었다. 행복인지 축복인 건지 그들의 어깨는 그만큼 지성인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지금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과 사뭇 다른 점은 바로 시대적 역할 변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상상하기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청년운동가들이 숨어서 '교양'을 하고 가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전략을 썼던 건, 그만큼 청년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체 어떤 생각을 가졌기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을까?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아래 군부독재를 반대한 이들, 그리고 사민주의적 활동을 하는 이들부터 시작해 좌파 본류를 지향하는 이들, 약간 늦은 시기에는 김일성의 해방운동과 건국운동을 운동의 지도노선으로 받아들인 선배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선배들이 사상적 이론을 갖추어 군부독재에 맞서기 시작했던 것이 탄압의 요인으로 꼽힌다.

 

좀 더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은 운동가들이 주장했던 것이 무엇인가에 궁금증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목숨을 바쳐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진지하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상적 흐름 속에서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은 조류가 아마 직업적 혁명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좌파운동이 아닐까 한다. 좌파에도 여러 가지 노선이 존재하고 이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필자의 인식 한계에 기인한 것 같다) 멀리는 1920년대부터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조선공산당 건립부터 해방 이후에도 판판히 극심한 탄압을 받은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책은 무척이나 많으니 관점이 괜찮은 저자라면 다소간의 오류가 있더라도 구해서 읽어보자.

 

김학준(전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1993)교수가 지은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은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어떤 호소력이나 주장은 담고 있지 않지만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비교적 왜곡 없이 그렸다는 느낌이 든다.

 

내용에 앞서 김학준 교수는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을 통해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에 피해를 본 국가들은 공산주의 운동 성격이 소련과는 달리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서구의 공산주의 운동과 그 맥을 달리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흔히 좌파와 어울리지 않는 '민족' 개념이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에 접목되는 이유는 역사적 유산에 근거하는 것이다. 모든 운동의 단계는 과거의 연장선에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학자들의 좌파 개념 정립이 역사 속 실제 운동에서 근거하지 않는다면 대중성과 혁명성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좌파에서 민족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김학준 교수는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무덤을 방문하고, 그들에 대한 연구 작업을 진행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와 '반동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계급을 부정하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엥겔스의 삶에서 그들이 원한 이상이 현실 속에서 종국적으로 어떻게 결론을 내렸든 위대한 인간의 표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인간해방을 위해 내건 공산당 선언은 아직까지도 '읽어봐야 하는' 고전으로 뽑힌다. 위대한 상상력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나갔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산업화가 발달한 대도시 공장을 비롯해 자본과 제국주의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피압박 민중들에게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이 '붉은 바람'은 누구에게는 악몽인 것이고 누구에겐 축복이 된 셈인데 악몽은 수세적인 입장이 되고 축복이 공세적인 입장에서 공방한 것이 1900년대 전 세계를 일관하는 정치사상적 흐름이다. 마르크스-레닌의 창조로 시작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레닌, 트로츠키 등에 의해 러시아에서 현실화됨에 따라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시아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손문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항일 독립운동이 모택동에 이르자 농민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세운 '중국식 공산주의 국가'로 발전되고 제국들의 수탈에 시달리던 베트남이 호치민을 만나 공산국가를 이뤘다. 조선의 혁명가들 역시 국제공산주의의 지도를 주고받으며 역량을 키웠으나 현실은 북조선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공산주의 실험이 점차 성공하자 이들은 자신감을 가졌다. 진정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하는 민중의 아들, 딸로서 자신들을 위치 지으려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상이 현실화 되자 또다시 현실에서는 이론과의 부조리가 발생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병폐로만 알려졌던 '관료제'의 폐해는 반복되었으며, 프롤레테리아의 독재라는 모델이 영웅에 의한 독재로 해석이 변화하면서 독특한 국가들이 생겨난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 부하린과 스탈린, 쿤, 루카치, 진독수, 가타야마, 박헌영, 이현상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사망했다.

 

결과를 통해 공산주의 운동의 의미를 너무 극단화해서 평가하는 오류를 피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미 식상한 결론을 되풀이해서 죽은 역사를 다시 죽이는 것보다 그 안에서 배울 부분만을 추출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삶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초기 공산주의 운동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인간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 조직가적 자세, 정세를 관철하고 실천하는 삶에서 우리는 배울 부분이 있지 않은가? 또한 이들의 사회경제적 노선이 갈수록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진단하는 유력한 도구로서 아직도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양으로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붉은 영웅들의 삶과 이상

김학준 지음, 동아일보사(1997)


태그:#공산주의,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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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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