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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전주지역 맛집과 카페에 1할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한 포털사이트의 파워블로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제목은 '미치도록 황홀하게'. 주인장 아이디는 '원더풀 미나리'다.

카페를 흠모하고, 맛집을 사랑해마지 않는 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러나 전주에서 풍경 좋고 그림 좋다는 커피숍이란 커피숍을 훤히 꿰고 있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정성스레 포스팅하는 블로거가 영어와 수학, 야간자율학습에 씨름하는 고3 수험생일줄이야.

처음엔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지만 자신에게 앞으로의 길을 알려준 길잡이가 되었다. 고3임에도 서포터즈, 기자단, 파워블로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는 김은수(19)씨.
 처음엔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지만 자신에게 앞으로의 길을 알려준 길잡이가 되었다. 고3임에도 서포터즈, 기자단, 파워블로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는 김은수(19)씨.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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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수씨는 현재 전주 송천동의 '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6년에 처음으로 블로그를 접했다.

처음에는 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일기형식으로 적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접속자들이 늘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찾아와준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기뻤다.

날마다 늘어가는 방문객수에 은근히 중독되어갔다. 그 뒤 자신의 블로그를 특성화할 주제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주가 '맛의 고장'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전주의 음식문화를 알린다는 모토로 시작하게 됐어요. 하지만 전주하면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 한정식같은 전통음식만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음식점을 소개하고 있어요. 전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재밌고 신선한 곳들이 많아요." 

외식을 즐겨하는 가정 분위기도 김씨의 '식탐'에 대해 일조를 했다고 한다. 그 뒤 김씨는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요리법을 올리거나 전북의 문화행사를 알리는 콘텐츠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돈은 안 들어오고 돈만 나가는 일이다. 게다가 한창 공부해야할 나이. 당연히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 

남들 '국영수' 공부할 때 나는 '맛집' 포스팅한다

"부모님 반대가 극심했어요. 블로그 시작하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거든요. 화가 나셔서 집의 인터넷을 모두 끊어버리셨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피씨방이나 학교에 남아서 인터넷을 했죠. 일주일 포스팅 작업을 모두 해놓아야 됐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블로그질을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터넷은 폐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블로그질'에 중독된 김씨의 마음까지 폐쇄할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가 고비였는데 그 당시 생활기록부에는 '지각 잦음'이라는 기록까지 남아있었다. 밤늦게까지 포스팅을 하다 늦잠을 자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주위 어른들한테 많이 혼났어요.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왜 안 하고 싸돌아댕기면서 사진찍고 다니냐구요. 시간낭비 하지 말고 공부하라구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걸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상처도 많이 받고 스트레스도 받았죠. 그러면서도 또 블로그를 하고 있었어요(웃음)."

파란만장한 블로거 수난 시절, 그때 김씨에게 힘을 준 것은 '댓글'이었다. 잘 보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댓글이나 쪽지를 보면서 김씨는 울컥했다. 힘이 되었고 용기를 얻었다.  '읽으신 후에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이 저에게 힘이 됩니다'라는 수많은 블로거들의 말이 흰소리가 아니었던 것. 김씨는 이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심적인 스트레스나 상처는 혼자 극복했다고 쳐도 맛집 탐방은 경제적으로도 만만찮은 부담이따른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직장인도 아닌 학생이 말이다.

"제가 외동딸이긴 한데 아직까지 부모님께 한번도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명절이나 가족 행사때 친척이나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썼어요. 부모님 외식할 때 따라갔다가 그 틈에 사진찍고 포스팅한 것도 꽤 되구요."

블로그를 하면서 적성을 발견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김씨는 현재 전주의 한 방송국의 맛 프로그램에 패널로 고정 출연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고정 칼럼을 써달라는 제의도 받았다. 이제 어느 정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덕분에 부모님의 태도도 많이 누그러졌다.

김은수씨가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부모님 친구분들이나 주위에서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도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인정 획득,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얻은 큰 보람중의 하나로 꼽았다. 

어린 나이지만 김씨가 이러한 나름의 성과를 얻기까지는 단순히 인기좋은 '파워블로그'이기때문 만은 아니다. 그동안 지역매체나 지프 서포터즈, 학생기자단 활동을 통해서 전북문화와 맛집을 알리는 데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장래에 무엇을 하고싶어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신문방송학과에 갈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 경험을 살려 '음식'과 '광고'를 접목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학생신분이라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나중에 대학에 가서는 더 많은 맛집과 여러 문화들을 알리고 싶어요. 그렇다면 전주에도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펴낸 '전주느리게 걷기'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김씨의 이런 꾸준한 경력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소책자 '전주느리게 걷기'. 전주의 맛집과 카페, 문화공간이 아기자기한 지도 속에 올망졸망하게 자세히도 소개되어있다. 전주 현지인이 봐도 탐나는 아이템이다.

김은수씨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며 2박3일동안 야근과 밤샘작업을 거쳐'전주 느리게 걷기'라는 소책자를 완성했다. 이 작업에는 은수씨외에도 몇명이 더 참여했다
 김은수씨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며 2박3일동안 야근과 밤샘작업을 거쳐'전주 느리게 걷기'라는 소책자를 완성했다. 이 작업에는 은수씨외에도 몇명이 더 참여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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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사업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영화제에 오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제가 맛집 가이드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계획이 수정됐어요. 2박3일 동안 함께 전주 한옥마을과 영화의 거리, 시내를 샅샅이 헤치고 다녔어요. 2박 3일 동안 밤샘작업도 하면서 몸살도 앓았지만 그래도 재밌었어요."

김은수씨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대입'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입학사정관제'가 발표되고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남과는 다른 특기 적성 활동을 살려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김씨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정말 블로그 활동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그동안 5년 동안의 노력과 꿈이 물거품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대학에 가려고 블로그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저버릴 수 없다.

"블로그 활동으로 대학 갈 수 있을까요?"

인터뷰를 했던 이날, 영화의 거리에서 만났지만 낼 모레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은 영화제에 있지만 시험 때문에 불안불안하다고 했다.

"블로그를 만난 게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정말 최근에서야 알게 됐어요. 요리학원을 다녀도 뭔가가 부족하고. 하여간 2%가 부족한 게 느껴졌는데 딱 뒤를 돌아봤더니 블로그가 있는 거예요. 짧다면 짧지만 저에게는 짧지않던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다는 게 제가 생각해도 깜짝 놀라곤해요."

최근 유명세를 타다보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온다. 함께 정보를 공유하자는 곳도 늘어나고 공동진행하자는 제의도 들어온다. 잘만 하면 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제의도 많이 들어오지만 이에 관한 김씨의 의견은 단호하다.

유혹의 손길 많지만, 블로그로 돈 벌고 싶지 않다

"저에게 소신이라면 소신이 있는데 그것은 블로그로 돈을 번다는 생각은 하지말자는 거예요. 유혹(?)도 많아요. 특히 저같은 학생에게는요. 저는 블로그를 단지 즐기고 있을 뿐이죠."

꽤 뚝심있어 보인다. 해도 뭔가 하나는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일곱끼를 먹으면서 체하고 소화불량을 일으킬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진정 행복한 수험생이기도 하다.

김씨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어느 커피숍이 좋냐' '맛집 좀 알려달라'는 것이다. 같은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라도 백이면 백, 나름대로의 매력과 특성을 갖고 있다. 남에게 좋은 커피숍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김은수씨. 커피숍 하나를 고를 때도 이러하건대, 자신이 진로는 더 말할 것 없다. 모두 한 방향을 보고 '무작정' 뛰고 있는 우리 모두 잠시 귀기울여 볼 소리가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김은수씨의 블로그 홈페이지 http://wonderful-minari.com



태그:#제11회전주국제영화제, #입학사정관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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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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