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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와 '처음'

 

.. "철쇄아는 원래 이누야샤 님의 아버님이, 인간인 어머님을 지키기 위해 만든 요도(妖刀)요. 즉, 인간을 어여삐 여기고, 지키려는 마음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검." ..  <타카하시 류미코/하주영 옮김-견야차 (2)>(하이북스,2001) 185쪽

 

"이누야샤 님의 아버님"은 "이뉴야사 님 아버님"으로 손보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손봅니다. "지키기 위(爲)해"는 "지키려고"나 "지켜 주려고"나 "지킬 마음으로" 손질하고, '요도(妖刀)'는 '요괴 칼'로 손질해 줍니다. '도(刀)'와 '검(劍)'과 '칼'은 모두 다르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이 대목에서는 요괴가 쓰는 칼이라는 뜻으로 '요괴 칼'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이와 같이 적바림한다면 따로 묶음표를 치며 한자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 원래(元來/原來)

 │  [명사] = 본디

 │    - 원래의 가격보다 훨씬 싸다 / 계획은 원래대로 진행되었다 /

 │      원래부터 흰머리가 많던 / 다시 원래의 그것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  [부사] = 본디

 │    - 그는 원래 서울 사람이다 / 원래 네 물건이던 것을 /

 │      원래 기술 좋은 장인은 연장 탓하지 않는 법이다

 │

 ├ 원래 어머님을 지키기 위해 만든 요도요

 │→ 처음에 어머님을 지키려고 만든 요괴 칼이요

 │→ 처음부터 어머님을 지키려고 만든 요괴 칼이요

 │→ 무릇 어머님을 지키려고 만든 요괴 칼이요

 │→ 다름아닌 어머님을 지키려고 만든 요괴 칼이요

 │→ 워낙에 어머님을 지키려고 만든 요괴 칼이요

 └ …

 

'본디(本-)'를 뜻할 뿐, 다른 아무런 뜻이 없다고 하는 한자말 '원래'입니다. '본디'란 "사물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이나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곧, '원래'가 되든 '본디'가 되든 '처음'이나 '뿌리'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런 말이나 저런 말이란 부질없고, '처음'이나 '뿌리'라는 낱말을 쓰면 넉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처음부터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말이며 글을 알맞고 싱그러이 가다듬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배움터에서나 말을 말다이 다루거나 글을 글다이 가르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글로 되어 있는 책이요, 말로 이루어지는 가르침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들은 말을 나누거나 글을 주고받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는 말과 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말과 글을 제대로 배우는 데에는 정작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말과 글에 앞서 한자이니 영어이니 시험공부이니 하는 지식 주워섬기기에 밀려납니다. 갖가지 과외이니 학원이니 하는 소용돌이에 휘둘립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말다운 말을 배우기 앞서 우리가 배울 대목이 있습니다. 첫째, 착한 마음입니다. 둘째, 참된 삶입니다. 셋째, 고운 몸가짐입니다. 이 세 가지를 밑바탕으로 삼으며 말글을 배울 노릇입니다.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삶자락을 일구면서 말다운 말을 익히고 글다운 글을 배울 노릇입니다. 우리 말을 배우든 한자를 배우든 영어를 배우든 맨 먼저 우리 마음밭은 착함과 참됨과 고움이 뿌리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말을 다루는 마음이 착하지 않으니 자꾸자꾸 얄딱구리한 말에 젖어듭니다. 말을 살피는 매무새가 참되지 않으니 그예 딱딱하거나 어렵거나 메마른 말마디에 물듭니다. 말을 보듬는 결이 곱지 않으니 끝끝내 굴레에 갇히거나 겉만 번드레한 채 따스함과 넉넉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원래의 가격보다 훨씬 싸다 → 제값보다 훨씬 싸다

 ├ 계획은 원래대로 진행되었다 → 일은 처음대로 이루어졌다

 ├ 원래부터 흰머리가 많던 → 워낙에 흰머리가 많던 / 예전부터 흰머리가 많던

 └ 다시 원래의 그것으로 되돌아가 →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정치꾼한테 늘 되풀이하는 이야기는 '처음처럼'입니다. '처음처럼'을 한자말로 옮기면 '초심(初心)'입니다. '처음처럼'이란 '첫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글쓰든 '처음' 품은 마음이 착하고 참되고 고와야 하며, 이 착하고 참되고 고운 결을 끝까지 잘 이어야 합니다.

 

정치꾼뿐 아니라 회사를 꾸리는 일꾼이든 땅을 일구는 일꾼이든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이든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든 '처음처럼'이라는 마음결을 다스려야 합니다. 처음에 얄궂은 마음을 품었다면 이러한 처음처럼은 지킬 까닭이 없습니다. 맑고 밝은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품어야 할 뿐입니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처음과 같이 언제나 길이 건사할 노릇입니다.

 

 ┌ 그는 원래 서울 사람이다

 │→ 그는 처음부터 서울 사람이다

 │→ 그는 워낙에 서울 사람이다

 ├ 원래 네 물건이던 것을

 │→ 처음부터 네 물건이던 것을

 │→ 예전부터 네 물건이던 것을

 ├ 원래 탓하지 않는 법이다

 │→ 워낙에 탓하지 않는 법이다

 │→ 무릇 탓하지 않는 법이다

 └ …

 

국어사전에 실린 '원래' 쓰임새를 이모저모 돌아봅니다. 웬만한 자리는 '처음'이라는 낱말로 갈음하면 잘 어울립니다. 이밖에 '워낙'이나 '무릇'이나 '예전' 같은 낱말을 알맞게 넣으며 갈음할 수 있습니다. "원래의 가격"은 "예전 값"이나 "처음 값"으로 고쳐쓸 글월인데, 말쓰임을 살피면 '제값'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우리 말과 글을 알맞게 가누지 않은 탓에 때와 곳에 따라 다 달리 넣을 말마디가 밀려나고 글줄이 꺾이는 셈입니다. 우리 말 밑뿌리는 사람들이 씁쓸하고 얄궂게 보여주는 매무새 탓에 일그러지거나 뒤틀리는 셈입니다.

 

써야 할 말을 쓰지 못하고, 주고받아야 할 말을 주고받지 못하는 셈입니다. 알맞지 않은 말이 자꾸 쓰이는 가운데 알맞지 않은 말버릇에 길들고 마는 셈입니다. 슬기롭게 가꾸는 말이란 가뭇없이 사라지고, 아름다이 추스를 글이란 간데없이 자취를 감춥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한자말#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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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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